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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거버넌스의 혁파 없이 규제개혁 성공 어렵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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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12월12일 17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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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6월 27일 대통령 참석 예정인 규제혁신점검회의가 준비 부족을 이유로 전격 연기되었는데, 아직까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과연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이번 정부에서도 집권 초기부터 규제개혁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태산동명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태산을 울리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움직이는데 나타난 것은 고작 쥐 한 마리)격이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어느 정부나 마찬가지로 천신만고 끝에 집권에 성공하고 나서 의욕적으로 일을 해 보려 하지만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발목이 잡히면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곤 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에 대비하여 야심찬 비전과 포부를 펼쳐보고자 했지만 고질적인 규제의 덫에 걸리기 일쑤였다. “속도가 뒷받침 되지 않는 규제혁신은 구호에 불과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신정부 출범 후 지난 1년 반의 기간 동안 규제개혁의 황금기에 허송세월만 한 셈이라고 평가하면 지나칠까.

 

  그동안 정부가 규제혁파에 아예 손을 놓은 것은 아니고, 신산업을 가로막는 고질적인 규제를 타파하기 위해 여러 기구를 운영하고 있다는 게 정부의 변명이다. 대통령 직속으로 ‘규제개혁위원회’가 활동하고 있고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새로 설치하여 운영 중이다.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에서는 민·관 합동 ‘규제개선추진단’ 및 ‘신산업규제혁신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금년 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4차산업혁명 시대의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며 ‘사필귀정 TF’(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사항을 귀 기울여 바로 잡는 TF)를 설치하였다. 또 금년 7월에는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지방자치단체들과 함께 충북 오송, 경북 구미 등 6개 국가산업단지와 드론 및 스마트공장 관련 업체들을 방문하는 ‘투자지원 카라반’(현장방문단)을 가동하였다.

 

  규제혁신을 위해 경쟁적으로 기구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필자의 소견으로는 바로 ‘그 자체’가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 1년 반을 허송세월로 보낸 대표적 요인으로 규제혁신을 하는 척만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정부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업현장에서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규제개혁이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규제개혁의 맥(脈)을 제대로 집었는지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전개와 더불어 데이터가 (자본, 노동, 기술 등과 함께) 하나의 중요한 생산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 사회는 데이터 관련 규제 및 제도의 정비에 얼마나 진척이 있었는가. 

 

  규제개혁에 대한 정책우선순위가 높은데 그 실행이 어렵다면 근본적인 접근 틀을 바꾸어야 마땅하다. 진정 실효성 있는 규제개혁을 위해서라면 규제 그 자체보다 규제를 둘러싼 ‘거버넌스의 개편’이 더 긴요하다.

  규제개혁이 부진한 근본적인 이유는 규제를 재설계하고자 하는 집권자와 기존의 규제 틀을 유지하면서 미세조정을 통해 규제를 운용하고자 하는 규제자의 힘겨루기에서 집권자들이 늘 패배했기 때문이다.

 

 통상 집권자들은 규제개혁에 대한 의욕은 앞서나, 규제의 디테일에 대한 이해 부족과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규제개혁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에는 무능한 편이다.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전봇대’니 ‘손톱 밑 가시’니 하는 발언을 하는 순간, 프로 규제자들은 아마추어 집권자들이 규제를 잘 모른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채고 회피할 수단의 궁리에 몰두한다. 집권 초기에 신정부가 힘이 있을 때, 국민의 지지도가 높을 때 규제개혁이 실효적으로 진행될 수 있으나, 규제집행자들은 어떻든 이 시기를 넘기려 안간힘을 쓰곤 한다. 집권자와 규제자의 힘겨루기 와중에서 피규제자는 사실상 안중에도 없다는 현실이 더 큰 문제인 셈이다.

 

  따라서 규제 그 자체보다도 규제개혁을 접근하는 방식 즉, 규제를 집행하는 체계를 개편하는 일이야말로 규제개혁의 첩경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벌써부터 규제혁신특별법들의 집행기구가 제각각이어서 파편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일면 타당하다. 그렇다고 해서 컨트롤타워를 강화하기보다는 코디네이팅(협업)시스템의 구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본다. 컨트롤타워 체제 하에서는 규제 운용의 유연성보다 또 다른 경직성을 초래할 가능성이 오히려 크기 때문이다. 

 

규제를 둘러싼 정부부처 간 칸막이가 여전히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규제개혁을 위한 여러 기구나 컨트롤타워보다 규제실무자인 정부 부처 간의 협업과 코디네이팅 시스템 구축이 더 긴요하다. 칸막이 행정으로 인한 다원화된 규제 체계의 폐해를 벗어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종종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컨트롤타워를 지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컨트롤타워에 의한 규제 운용이 반드시 바람직한 일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정부 내에서 부처 간에 부서 간에 협업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사실 이번에 개정된 세 개의 규제혁신특별법에 규정된 ‘관계 행정기관 검토’ 관련 이슈가 제기되는 것도 칸막이 논란과 결코 무관하지가 않다. 세 법 모두 실증규제특례를 적용하거나 임시허가 때 관계되는 행정기관의 검토와 참여를 필요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태껏 국내 법률 상 이렇게 규정된 조항에 근거하여 인정된 사례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벌써부터 관련 법률의 시행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곤 한다. 필자는 2014년 산업융합촉진 옴부즈만 시절 산업융합촉진법을 근거로 산업용 안전모에 무선통신, 조명기능, 충격센서 등 통신 및 전자기기를 일체화시킨 융합안전모가 기존의 인증체계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시장출시가 불가능했던 애로 사례를 다뤄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관련되는 기관이 많지 않았음에도 기관과 관련 부처를 설득하기가 무척 어려웠고 따라서 기간이 오래 걸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융합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나 서비스에 다수의 법률이 적용되고 관련되는 정부부처가 다수일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정부 간 협업을 독려하기 위해 규제 샌드박스가 적용되는 분야를 소관 하는 부처 내에 협업조정관 또는 융합규제조정관의 고위공무원 직책을 신설하는 일도 생각해 볼만 하다. 현재 각 부처의 규제개혁법무담당관을 대신해 좀 더 강화된 직책을 신설하되, 여타 직위보다 선임으로 보임하는 등 유력한 직위를 보장하는 게 효과적이다. 이들은 부처를 넘어서는 정책 이슈의 규제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과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규제 및 제도의 설계자로서 역할도 수행한다. 개방형 직위나 고위공무원단의 부처 간 교류 제도를 활용하되, 분권형, 네트워크형, 개방형, 소통형, 공유형, 참여형, 자율형 등 4차 산업혁명의 특징과 부합되며 수평적 협력에 익숙한 인물을 등용한다면 금상첨화다. 이들의 활동을 주기적으로 국무총리실(정부업무평가실)과 규제개혁위원회를 통해 국무회의에 보고되도록 하면 효과가 클 것이다. 

 

또한 정부 부처 간 협업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협업 성과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고, 각 부처별로 협업 우위인가 협업 열위인지를 점검하도록 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부처 간 협업의 필요성에 대해 문제의식을 공유하는가, 협업의 과정에서 소통은 원활히 이루어지는가, 협의된 사항은 잘 이행되고 있는가 하는 것 등을 평가해 보자는 것이다. 제조업의 서비스화, 산업 및 분야의 연계와 융합, 디지털화·플랫폼화, 신산업의 출현 등으로 다 부처에 걸쳐있는 제도와 규제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전개되는 형국이다. 장차 칸막이 정부를 (원 스톱형) 플랫폼 정부로 탈바꿈시킨 뒤에야 규제개혁이 실효성 있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벤트성 행사가 아닌 상시성 규제개혁 체계를 갖추는 일도 긴요하다. 규제혁신점검회의(문재인 정부), 규제개혁민관합동회의(박근혜 정부) 등과 같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하나하나 점검하는 회의체로는 역부족이다. 대통령 직속으로 규제개혁위원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이명박 정부)에서 규제를 다루는 일도 그 성과에는 한계가 있었다. 차제에 규제개혁위원회를 각계 전문가가 아닌 행정규제 전문가 위주의 소수의 상임위원회 체제로 개편하고, 국무총리실이 아닌 명실상부한 대통령 직속의 사무국을 설치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대통령이 직속사무국을 통해 규제개혁위원회 활동을 주기적으로 보고토록 하고 각 정부부처의 규제개혁 진척 상황을 주기적으로 평가하여 보고하도록 힘을 실어주면 금상첨화다. 규제개혁위원장도 명망가보다는 행정규제에 대한 상당한 식견을 가진 자로 임명하고, 필요할 경우 규제개혁위원회 산하에 (4차산업혁명위원회와 같은) 전문위원회나 자문 조직을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규제를 집행하는 방식과 행태를 먼저 정비한 후에 규제개혁에 나서야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규제 운용의 패러다임적 변화를 위해서라면 규제 그 자체보다 규제의 거버넌스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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