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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저(低) 3고(高)시대와 음악과 춤 사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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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10월30일 18시04분

작성자

  • 최성환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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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은 이달 초 내놓은 세계경제전망에서 우리 경제의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하향조정했다. 우리나라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4월 전망치 3.0%에서 2.8%로, 내년 성장률은 2.9%에서 2.6%로 낮춰 잡았다. 올해의 경우 정부가 3%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추경예산 투입 등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결국 2.7%에 그칠 것이라는 게 한국은행의 최근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내외 예측기관들의 전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좀 더 멀리 내다봐도 전망이 어둡기는 마찬가지이다. IMF는 2020년과 2021년에는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2.8%를 유지하겠지만 2022년에는 2.7%, 2023년에는 2.6%로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2%대 성장이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9년 0.7%로 급락했던 성장률이 2010년에는 6.5%로 반등했지만 2011년 이후 2~3%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3%대는커녕 2%대 성장도 버거울 만큼 우리 경제의 동력이 떨어지면서 본격적인 저성장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게 IMF의 진단이자 전망인 셈이다.

 

5저(低)는 저성장·저고용·저금리·저물가·저자산가치

 

이렇게 성장률이 낮아지기 시작하면 기업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특히 국내투자와 고용에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해외로 눈을 돌리는 기업들이 많아질 것이다. 어느 나라건 국내 성장률이 낮아지면 새로운 시장과 공장을 찾아 떠나는 게 기업들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취업자 증가 수를 보면 2014년 59만 8,000명을 고점으로 이후에는 20~30만 명대로 줄어드는 흐름이다. 더욱이 올해는 정부가 고용을 늘리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남은 4분기(10~12월)에 선방을 해야 간신히 10만 명 정도가 늘어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연령대별 취업자 증감현황을 보면 생산현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30~40대가 수년째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청년층(15~29세)도 들쭉날쭉하기는 해도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다. 반면 3D 직종 등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50~60대 이상에서는 취업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러다보니 실업률도 야금야금 늘어나 2013년 3.1%에서 작년 3.7%에 이어 올해는 9월까지 4%대를 5개월이나 기록했다. 당장에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하는 청년층의 실업률은 10%를 오르내리고 있다. 우리 주력산업들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청년층의 취업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s)를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여기다 구직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장기실업자는 15만 2,000명으로 외환위기의 여파가 남아있던 200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50~60대 취업자가 늘어나고는 있다지만 집집마다 들여다보면 은퇴한 부모와 자녀들이 서로 취업난을 겪고 있다. 특히 이들 50~60대가 자영업으로 내몰리면서 고용으로 잡히고는 있지만 더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금리와 물가가 낮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연 1~2%대의 저금리가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작년을 저점으로 조금씩 금리가 오르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있고 한국은행에서도 인상시기를 저울질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금리가 당분간 크게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저성장과 저고용이 지속되면서 투자와 소비가 부진한 가운데 한국은행이 금리를 크게 올리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시중 자금수요도 크게 늘어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저금리를 유지하기 위해 시중에 풀려나간 엄청난 양의 돈이 수도권 등 부동산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은 장기간의 저금리가 가져오는 폐해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국제유가가 크게 올랐던 2011년 4.0%, 2012년 2.2%를 기록한 이후 2013년부터 작년까지 0~1%대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들어 국제유가 상승에다 채소 등 농산물 가격의 상승으로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에 육박하고 있다. 물론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를 넘어설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제유가 또는 가뭄이나 무더위와 같은 외부적 요인을 제외하면 물가가 크게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저성장·저고용하에서 투자와 소비가 활발하지 않은데도 물가가 오르는 스테그플레이션(stagflation)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저성장·저고용·저금리·저물가에 이어 5저(低)의 마지막 현상은 저(低)자산가치, 즉 낮은 자산가치의 지속이다. 자산을 크게 2가지로 구분하면 실물자산과 금융자산이다. 실물자산은 아파트와 단독주택이나 오피스텔, 땅과 같은 부동산과 자동차·귀금속·골동품과 같은 기타실물자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융자산은 현금과 예금, 보험·연금, 채권 및 주식과 펀드 등을 말한다. 이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 가격 변동의 위험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 자산은 부동산과 주식(펀드 포함)이다. 저자산가치의 지속은 바로 부동산과 주식 가격의 하향안정화를 의미한다. 

 

부동산의 경우 저출산과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 등 고령화의 지속과 인구증가율의 정체, 저성장과 저고용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을 것이다. 최근 서울 등 일부지역의 부동산 급등세로 정부가 작년에 이어 안정화대책(9·13 대책)을 내놓았다. 향후 흐름을 보기는 해야겠지만 예전과 같은 급등세를 더 이상 이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울산에서부터 군산까지 자동차·조선·철강 등 전통적 주력산업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특별한 호재가 없는 한 대다수 지방의 부동산은 침체를 면치 못할 것이다.  

 

주식 또한 저성장·저고용의 여파로 내수위주의 산업은 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2.4배가 넘는 일본의 예에서 보듯이 글로벌화에 성공한 기업들은 계속 잘 나가겠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들의 주식가격이 올라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함께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장기 동반하락세로 진입한 일본처럼 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향안정화로 갈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3고(高)는 고령화·고소득화·고디지털화

     

5저(低)가 저성장·저고용·저금리·저물가·저자산가치라면, 3고(高)는 고령화·고소득화·고디지털화를 의미한다. 고령화는 저출산을 포함한 개념으로 출생아는 갈수록 줄어드는 가운데 기대수명은 5년마다 1세씩 늘어나면서 우리나라 인구가 급속하게 늙어가는 현상을 말한다. 합계출산율, 즉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가 작년 1.05명으로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는 1명도 채 안 될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출생아가 작년 35만 8,000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했고 올해는 30만 명이 채 안 되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고령화율(총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은 작년에 14.2%를 기록하면서 고령화사회(Aging society·고령화율 7% 이상)에서 고령사회(Aged society·고령화율 14% 이상)로 진입했다. 세계 최고의 고령국가인 일본이 고령화사회(1970년)에서 고령사회(1994년)로 진입하는데 24년이 소요되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사회에서 17년만인 2017년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여기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6년 3631만 명을 정점으로 작년에 사상처음으로 감소세(-11만 명)로 돌아섰다. 생산을 담당할 젊은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동력이 약화되고 있음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저성장·저고용·고령화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한 가지 낙관적인 면은 우리 경제의 규모와 함께 1인당 국민소득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고성장시대만큼 큰 폭이나 비율로 늘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달러표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년에 평균 1,000달러 안팎 늘어나면서 올해 3만 달러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IMF는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작년 29,900달러(한국은행 통계는 29,744달러)에서 올해는 32,000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1994년 1만 달러, 2006년 2만 달러에 이어 올해 드디어 3만 달러시대로 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올라서는데 걸린 기간을 계산해 보면 각각 12년으로 주요 7개국(G7)의 평균 9.6년에 비해 2년 이상씩 더 걸리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못 살던 나라 중의 하나에서 1인당 소득 3만 달러의 나라로 올라서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IMF의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소득이 잘 하면 2025년을 전후해 G7 중의 하나인 이탈리아를 앞지를 수도 있다. 그 때쯤이면 우리나라의 1인당 소득은 4만 달러에 근접하거나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말 그대로 1인당 소득 1만~2만 달러시대가 아니라 3만 달러, 4만 달러의 고소득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디지털화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는 디지털화를 의미한다. 인공지능(AI), 만물인터넷(IOT), 빅데이터, 3D프린팅, 공유경제 및 플랫폼 경제(Platform economy) 등이 우리 산업과 기업, 일상생활에 보다 깊숙이 파고 드는 것은 물론 모바일화될 것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고디지털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특히 수년 내에 AI로봇, 증강현실, 자율주행차, 에어택시, 3D프린터 등을 여기저기서 목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음악이 바뀌면 춤도 바뀌어야 

 

이상의 ‘5저(저성장·저고용·저금리·저물가·저자산가치) 3고(고령화·고소득화·고디지털화)’는 새로 만들어낸 사건이나 현상이 아니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상황 또는 현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용어일 뿐이다. 5저3고 현상은 앞으로 3년, 5년 이상을 내다볼 때 우리 경제와 사회를 이끌어갈 메가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5저3고가 산발적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하나하나의 트렌드를 보면 천천히 바뀌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수의 트렌드가 한꺼번에 바뀐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의 물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메가 시프트(Mega-shift)’, 즉 메가 트렌드 또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온 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과거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경우이다. 성장률이 2%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여전히 고성장시대의 환상에 젖어있다거나 부동산 불패를 주장한다거나 하는 등이다. 소득 3만 달러 시대·디지털시대로 진입하고 있는데도 아직도 못 살던 때와 아날로그시대만 떠올리면서 과거의 성공방식이나 법칙에 목매달고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만약 기업이 5저3고 시대에 맞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해내지 못하면 결국 망하는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기업이나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도 5저 3고의 변화에 맞는 비전과 전략, 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When the music changes, so does the dance.” 음악이 바뀌면 춤도 바뀌어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이다. 춤을 잘 추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잘 들어맞는 속담이다. 그러나 속담과 달리 아프리카 사람들이 지난 수백 년 동안 변화하는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걸음 더 나가 이 속담을 아프리카를 넘어 모든 국가와 사회는 물론 산업과 기업, 개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음악이 바뀌면 춤이 바뀌어야 하는 것처럼 패러다임이 바뀌면 그에 따라 국가와 사회, 산업과 기업, 개개인의 성향과 비전, 전략, 정책 등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음악이 바뀐 줄도 모르고 출 수 있는 춤도 과거의 한두 가지밖에 없다면 그런 국가와 사회, 산업과 기업, 개인이 과연 보다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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