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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난국을 풀어낼 마법(魔法)의 공식?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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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9월12일 17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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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이면 정부의 경제정책 효과가 가시화되니 지켜봐 달란다. 확신에 찬 그에게는 경제난국을 푸는 마법(魔法)의 게임 체인저가 있는 듯하다. 소득주도성장이라고 하던가.

 

 풀이하면, 최저임금인상과 근로 장려금 지급으로 돈을 푸는 시동을 걸면 고용, 생산 그리고 지출로 돈이 연속적으로 돌며 소득이 증가하고 저성장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경제 성장률 4.1%, 실업률 3.9%의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경제는 호황을 구가하는데, 한국경제는 고작 2.8%의 성장률과 25%의 체감 청년 실업률에 허덕이고 있다. 과거정권은 왜 이렇게 간명한 마법 공식을 간과했나, 경제 관료들은 직무를 태만했나, 경제학계는 바보 집단이었나, 대기업 등 “적폐”세력들과 음모라도 있었던가, 의문이 꼬리를 문다.

 

현 정부 발탁 인사 가운데는 소액주주권익, 공정거래 등 시민운동의 여러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 수재형 인물들이 있다. 도덕적 우월감도 강하고 그만큼 자신감도 충만하다. 재계에게 그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우려되는 것은, 당면과제의 미시적 국면에 매몰되며 자기 진영 논리를 앞세우는 반면, 과거의 준거(準據)는 무시하고 중립적 인사들의 충고도 묵살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전쟁터도 아닌 토론의 자리에서도 임전무퇴이고, 언론보도에서도 오기(傲氣)부림도 정책일관성으로 착각함이 엿보인다.

 

현 정부 등장 이전에 왜 소득주도성장 담론이 없었을까? 우선, 소득주도성장의 성공 사례가 전무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용어는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의 ‘임금주도성장’에서 비롯된 것인데, 일정한 전제조건하에서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성공하려면 1950년대 경제개발 이전 한국경제처럼 대외 교역 비중이 미미한 미개방 경제이거나, 개방 경제라면 다른 경쟁 상대국들이 보조를 맞추어 동률 이상으로 임금을 인상해주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처럼 대외 교역 비중이 높은 나라가 독자적으로 임금을 올리는 것은 자국이익 제일주의 국제경쟁에서 자해행위가 된다. 

 

소득주도성장이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재원 고갈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근로장려금 등은 “소득”이 아니고, 따지고 보면 생산이라는 소득창출 활동이 수반되지 아니하는 일방적 금전수수이다. 그 돈의 원천은 정부자금, 다시 말해서 조세이거나 정부부채이다. ‘소득주도’는 궁극적으로 재정파탄과 국가부도로 인도된다.

 

업종 차별 없는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어떠했나? 한편으로는 서비스업종 임시직 중심으로 일자리가 줄고, 근무시간 단축되어 명목 소득이 감소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재 가격인상으로 지출이 늘어 소득이 실질적으로 감소했다. 저소득계층에게는 더블 펀치가 아닐 수 없다. 최저임금인상 조치 이전에 예측 가능했었을 고용주들의 반응을 소홀히 한 탓이다.

 

경제의 수레는 당근과 채찍에 반응하는 말(馬)들의 힘으로 달린다. 시장은 주로 유인(誘因)으로 이끌고, 정부부문은 주로 반유인(反誘因)으로 몰고 간다. 잘 나아가는 경제는 시장과 정부, 두 부문이 적절히 역할을 분담하여 서로의 ‘실패’를 보완해 가며 발전한다. 서로 힘겨루기를 자랑하지 아니한다. “정부 이기는 시장이 없다”는 발언은 우매하다.

 

현 정부의 중심에는 시장을 “적폐”의 온상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시장경쟁에 승리한 기업에게 공정거래 위반 혐의의 눈초리로 보고, 기업 규모에 정비례하여 적폐의 의혹이 짙다고 의심한다. 국제경쟁시장에 수출실적이 좋은 대기업의 경우, 일단 최고경영인을 출국정지 시켜 족쇄를 걸고 본다. 신상필벌(信賞必罰) 잣대가 비정상적이다. 기업인도 기(氣)를 살려줘야 뛴다.

 

소득주도정책이 앞으로 보도 자료 상 성공으로 포장될 수도 있다. 나쁜 소식의 메신저 통계청장을 경질하는 솜씨를 보면 향후 보도 자료의 경향성을 짐작할 수 있다. 채찍질 소리가 드높은 탓인가. 지레 겁먹어 면피하려는 듯 요즘 대기업, 금융회사들이 앞 다투어 대규모 신규채용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일자리 늘이기는 좋으나,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와 맞물리는지 의문이다. OECD 국가 중 일인당 노동 생산성이 최하위권이 아니던가.

 

경제 시스템을 리세트(re-set) 하려면 전면적으로 철저해야 한다. 정부의 채찍질은 “적폐”라는 구호로 울린다. 오랫동안 쌓인 폐단이란 뜻의 적폐(積弊)가 어찌 기업 경영 측에만 있겠나, 생산요소시장의 공급측면의 독과점에 대해 개혁의지가 실종돼 있다. 노동자 10% 내외의 조직노조가 나머지 90% 노동자 권익을 짓누르고 있다. 대기업에서 하청기업으로 내려갈 소득 낙수 효과 통로를 차단하는 주범이 누구인가, 특히 금속노조 등 귀족노조의 상습적 파업, 일자리 세습에 대해서 정부는 왜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는가. 나머지 90% 노동자도 국민이다. 지지세력에 가중치를 주고도 평등을 말하는가. 적폐가 남의 폐단, 적폐(敵弊)로 오인되는 한, 국내기업의 해외탈출, 산업공동화를 피할 수 없고, 일자리 늘리기는 공염불이다.

 

다행히 경제동향을 보면 아직은 최악을 면하고 있다. 건설업 침체, 서비스업 악화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기술(ICT)부문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특히 반도체가 견조세이다. 7월의 경상수지 흑자는 87억 7천만 달러로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것도 반도체의 약진 때문이다. 이래저래 반도체로 먹고 사는 경제인 셈이다. 극소수 품종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은 위험도가 높다는 뜻이다. 선진경제 호황의 막장, 미·중간 무역 분쟁, ‘제조업 2025’ 중국의 꿈, 우리의 과거 “적폐”타령, 아슬아슬한 형국이 아닐 수 없다. 내년 전망이 매우 어둡다.

 

경제에 마법의 공식은 없다. 정책당국은 거시적 안목을 길러 경제변수 간의 상호연관을 읽어내야 한다. 정석을 많이 익히고 상대의 응수를 몇 수 앞서 읽어내는 것이 바둑 고수 이듯이 시장 반응을 익히 알고 수를 두어야 정책 고수이다. 직업 관료가 장애물이 아니고 경제학 문헌이 쓰레기가 아니다. 정책고수는 제 뜻대로 반응하지 아니하는 민간 부문을 상대로 투정하는 발언일랑 수치(羞恥)로 여겨 자제한다.

 

한때 소수의 대기업 경영진을 전율케 하며 기업지배구조 개선, 공정거래 질서 등 복음을 전하던 맑은 목소리가 요즘에는 다수의 자영업자, 알바지망생 등 다수 국민에게 절망의 탁음으로 들린다. 부문별 미시적 시각에서 거시적 관점으로의 전환이 미흡한 탓인가, 갑을(甲乙)의 자리 바뀜에 따른 일시적 고소 현기증인가.

 

내년, 아니 내내년을 기다린들 소기의 정책 효과가 나타나거나, 정통의 경제논리가 녹슬 것 같지 않다. 앙샹레짐의 구악에 대해 대중에게 분노하라고 독려하기는 쉬운 일이지만, 현 정부의 출범 이후 불거진 문제에 대해서는 밖에서 마땅한 분노의 대상을 찾기 어렵다. 지혜로운 자는 자문자답한다. 적폐는 점진적으로 치우기로 하고, 우선 나라 경제를 굴러가게 해야 한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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