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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탄력적 노동시간 단축과 ‘일하는 방식개혁’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8년07월17일 17시36분
  • 최종수정 2018년07월17일 16시40분

작성자

  • 이지평
  • 한국외국어대학교 특임강의교수

메타정보

  • 23

본문

 

저출산 인구고령화와 성장위축에 대응한 생산성 향상

 

일본정부가 가장 중요 법안으로서 수년 동안 공을 들여왔던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고용대책법, 고용기준법, 노동시간등설정개선법 등 8개의 노동관련법을 개정 하는 법률의 통칭임)이 지난 6월 29일에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잔업시간의 상한규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대우 격차를 해소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제’, 고소득의 일부 전문직을 노동시간의 규제에서 제외하는 ‘탈 시간급제도(고도프로페셔널 제도)’ 등이 도입되고 일본 노동시장에도 향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저출산 인구고령화가 진행되면서 15세에서 64세의 생산가능 인구가 해마다 50만~100만명 정도 감소해 극심한 노동력 부족 현상에 고민하는 일본에서는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으면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최근 외국인 노동력의 확대 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일하는 방식을 정착하는 데 주력하게 된 것이다. 

 

새로 도입된 고도프로페셔널 제도의 경우 잔업수당이나 휴일근무 수당을 받지 않고 업무의 성과로 평가를 받는 탈 시간급 제도이며, 근로자의 창의에 의해 생산성을 높이기로 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노동관련 법률은 공장 노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사무직이나 서비스업 근로자가 중심이 되는 노동시장 환경에 맞게 제도를 고칠 필요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노동시장 환경의 변화를 고려해서 근로자들이 노동시간의 구애를 받는 것보다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지향해 나가려는 것이다. 

 

이러한 고도프로페셔널 제도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는 연봉 1,075만 엔 이상의 전문가 집단이며, 금융 딜러, 컨설턴트, 애널리스트 등 소수에 불과하지만 향후 대상자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종업원 수 5천명 이상 사업장에서 연봉 1천만 엔을 초과하는 근로자는 남성 근로자의 13.9%, 여성근로자의 1.2%, 전체 사업장 기준으로는 남성 6.2%, 여성 1%임, 2013년 국세청통계 기준, 미즈호총합연구소 집계). 

일본기업으로서는 노동력 부족과 함께 노동시간 규제의 강화로 인해 앞으로 단순 업무를 더욱 합리화하는 투자에 주력할 방침으로 있다. 작년 이후 일본기업들은 사무직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는 RPA(Robot Process Automation)을 도입하여 소프트웨어가 고객의 주문 메일 등을 자동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기업들이 잔업을 줄이려는 노력을 강화하면서 부분적으로 근로 시간 단축 성과가 나오고 임금이 줄어드는 근로자도 나타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앞으로는 정형화된 업무는 자동화되면서 인간 근로자는 보다 창조적인 업무로 전환해 노하우를 축적하고 획기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업무를 인정받는 것이 과제가 될 것이다. 높은 생산성을 인정받고 노동시간이 줄더라도 많은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확대되어야 국가적으로 생산성 향상과 내수 진작이 가능한 것이다. 

 

탄력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이고 과로사 억제

 

이번의 노동시장 개혁에서는 잔업을 제한하는 등 노동시간의 단축이 초점이 되고 있는데, 자세한 정책에서 일본정부는 인력부족 문제를 고려해서 산업계의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시간외 근무의 상한선에 관해서 월간 45시간, 연간 360시간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월간 100시간미만, 연간 720시간이라는 상당히 장시간의 초과근로가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기존 제도에서도 월간 45시간, 연간 360시간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으나 특별 조항으로 노사가 합의할 경우(소위 36조항 협정) 연간 6개월은 사실상 제한 없이 초과근로가 가능했다. 

 

일본의 일반 근로자의 노동시간은 연간 2,000시간 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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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 일반 근로자는 정규직과 파트타임 근로자 이외의 비정규직 포함

                 5인 이상 사업장, 전체 산업 기준임. 2011년은 동일본대지진 

                 여파로 3~5월의 데이터 불명으로 1~2월, 6~12월 평균치 대입 

            자료 : 후생노동성    

 

 

이를 고려하면 이번 개혁으로 초과근로 시간을 단축한 의미는 삶의 질 향상에 목적이 있다기보다도 최근 일본에서 급증하기 시작한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과로사나 자살을 방지하겠다는 의미가 큰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연간 총근로시간은 1,700시간대로 감소해 왔다고는 하지만 이는 단시간 근무하는 파트타임 근로자의 비중 확대에 따른 통계상의 착시도 크다.  일본기업의 일반적인 근로자의 경우 연간 2,00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의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정규직 근로자의 경우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는 근로자의 비율은 2000년 이후 거의 변화가 없으며, 여성의 경우 그 비중이 증가세에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업무로 인해 강한 심리적인 압박을 받고 정신적 장애가 발병하고 산재(産災)를 신청한 건수가 확대 추세에 있으며, 2015년도에는 사상최고 수준인 1,515건에 달했다. 근로자의 연간 자살자 수 6,782건 중 근무문제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자살자 수는 2,159명에 달했다 (자료 : 일본학술회의 경제학위원회 워크 라이프 밸런스 연구분과회, 노동시간 규제의 올바른 방향에 관한 보고, 2017년 9월 25일). 

 

 

일본의 근로시간 규제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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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대학 출신으로 광고대행사에 입사한 신입직원이 2015년에 자살해 일본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을 보면 월간 잔업 시간이 105시간을 초과하고 있었다. 이 사건을 그대로 적용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번에 노동시장 개혁으로 월간 100시간미만의 초과근로까지만 허용된 것은 과로사 및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여건을 지키겠다는 의미도 큰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잔업에 대한 임금 할증률이 25%로 우리나라의 50%에 비해 저조하기 때문에 일본기업들이 연장근로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이나 기업의 현실에 맞게 변형근로시간제 활용

 

노동시간 정책에 관해서 일본이 중시해 왔던 것이 산업이나 기업의 현실에 맞게 1년 단위로도 조정이 가능한 변형근로시간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1947년에 노동기준법이 시행된 당초에는 4주간을 평균해서 1주 단위로 노동시간이 당시의 법정근로시간인 주당 48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특정한 주간에는 이 48시간을 초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1988년의 법률 개정으로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46시간으로 단계적으로 단축하기로 하면서 4주간 단위의 변형근로시간제를 폐지하고 새로 1주 단위, 1개월 단위, 3개월 단위의 변형근로시간제를 창설하였다. 노동시간 단축 추세와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1994년에 법정 근로시간을 주당 40시간으로 하면서 1년 단위의 변형근로시간제를 도입하였다(법률 개정은 1993년도). 

이와 같이 일본에서는 노동시간의 단축에 노사가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변형근로시간제의 활용 여건을 강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제조업에서도 계절적·비계절적 수요의 급등락이 있지만 서비스업 등의 경우 재고를 축적할 수가 없어서 훨씬 유연한 체제가 필요하다. 일본경제에서 서비스업의 비중이 확대되면서 더욱 유연한 변형근로시간제가 필요하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일본의 근로시간을 비롯한 노동시간 정책은 산업이나 기업의 특성을 감안하여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배려되고 있으며, 법률안의 작성 및 수정 과정에서 노동계 및 경영계와의 심도 있는 대화와 정보공유를 통해 무리 없는 정책이 지향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의 검토 과정에서도 경영계를 대표하는 일본 경단련은 작년 7월에 노동시간 실태 조사 결과를 집계·발표한 바 있다. 이를 보면 2016년 기준으로 연간 잔업 시간이 720시간을 초과하고 있는 근로자는 전체의 2% 정도, 비제조업에서는 4%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잔업 시간을 720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이라는 것을 일본정부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같은 조사에서는 시간외 근로시간을 정하는 노사간의 ‘36협정’을 보면 720시간 이상을 체결하는 기업이 34%에 달한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즉, 일시적으로 잔업이 많아지는 시기가 있기 때문에 일본기업들은 잔업시간 한도를 여유 있게 확보하여 변형근로시간제를 활용하면서 탄력적으로 운영해 왔던 것이며, 일본정부도 이러한 현황을 이해하면서 새로운 제도에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정책 당국, 노동자, 경영계가 서로 객관적인 데이터와 근거를 확인하고 예상되는 효과 등을 고려하면서 논의하고 무리 없는 올바른 정책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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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 2016년 기준 

         자료 : 일본 경단련

          주 : 2016년 기준 

          자료 : 일본 경단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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