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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겁나지만 존경하지는 않는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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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2월24일 01시29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5시03분

작성자

  • 김동률
  • 서강대학교 교수. 매체경영. 전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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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날 미국으로 상징되는 서양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 못지 않게, 중국으로 대변되는 동양의 가치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서양의 진취적이고 합리적인 면도 좋지만 한국인이다 보니 동양의 무위자연적인 면이 가슴에 와 닿는다. 미국이 자존심으로 여기는 월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The Sound of Fury) 의 난해함 보다는, 양귀비를 잃은 당 현종이 배개닛을 적시며 연리지정(連理枝情)을 노래한 백낙천의 장한가(長恨歌)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비프 스테이크보다 중국집 짜장면, 짬뽕이 편한 것과 같은 이치다.
 
뜬금없이 사사로운 얘기를 늘어 놓은 까닭은 한반도 사드배치와 관련한 중국의 모습 때문이다. 지난 한달간 온 국민을 뒤숭숭하게 한 중국 당국의 태도의 본질은 도대체 무엇일까. 중국이 동아시아, 나아가 전체 지구촌을 향해 패권국가의 길로 가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이다.
 
실제로 중국의 태도를 보면 한마디로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한반도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가 배치되면 한·중 관계가 파괴될 수도 있다고 최근 드러내 놓고 '공개 경고'한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 대사의 발언은 도를 한참 넘었다. 외교 전문가들은 ‘제국이 망해가던 구한말 내정간섭을 하던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를 연상시킨다’며 우려하고 있다. 더구나 야당을 창구로 활용해 협박에 가까운 비외교적 언사를 쏟아낸 것은 주한 대사로서 자국의 우려를 전달하는 통상적인 외교 활동을 넘어선 행동이다. 과연 한국이 주권국가인가 하는 의구심까지 갖게 하는 무례한 태도다.
 
구매력을 감안한 국내총생산(GDP)은 물론이고 군사력, 교역규모 등등을 보더라도 중국은 이제 명실공히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초대형 거대 국가이다. 일부 미래학자들은 머잖아 중국 경제 규모가 미국을 앞질러 세계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0년 뒤에는 중국이 많은 분야에서 아예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스스로도 이제 세계 최강국이라는 자부심이 곳곳에 넘쳐 보인다. 군사대국, 경제대국으로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화교를 포함한 13억 인구의 힘 또한 누구도 두렵지 않은 무기가 된다.
 
문제는 경제다. 사드 배치 문제를 두고 무역관계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보복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우리 수출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5% 안팎이다. 보복이 가시화될 경우 가뜩이나 가파른 감소세인 수출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물론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을 위반하면서까지 경제 보복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G2 국가로 부상해 국제적 책임이 커진 데다 보복할 명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 마늘파동 때처럼 중국이 우리 경제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은 많다. ‘보이지 않는 손’을 동원해 수출에 제동을 거는 식이다. 정경 분리 원칙이 민감한 사드와 관련해서는 흐트러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통관 절차를 강화하거나 국산 농축수산물의 위생기준을 까다롭게 적용하는 방법 등이 거론된다. 독립적이지 않은 언론도 문제다. 한국 제품의 조그만 실수를 과장한 뒤 이를 지속적으로 보도해 중국 소비자의 선택을 돌려세우는 것이다. 한류 드라마의 방영 편수를 제한해 한류 흥행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카드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몇 년전에 북경의 자금성내 스타벅스 매점이 개점한지 꼭 7년 만에 문을 닫았다. 관영 중앙방송 유명 앵커가 스타벅스 고궁점이 중국의 존엄과 문화를 훼손하고 있다는 글을 뜬금없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지 불과 몇 달만의 일이다. “중국문화도 세계문화와 공존하고 융합해야 한다”는 일부의 스타벅스를 편드는 주장은 “중국의 전통문화가 침식당했다”, “서양은 중국문화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거센 목소리에 묻혀 버렸다.
 
개점이래 아무 탈없이 영업해 왔고 임대 기간을 연장한 합법적인 계약서가 있었지만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스타벅스 고궁점 폐점에 대해 중국인들은 ‘스타벅스 구축(驅逐·쫓아냄)’이라는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언론은 전한다. 스타벅스뿐만 아니다. 중국에 진출한 나이키, 구글, 소니, 카르푸 등등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도 거대해진 중국의 무례 앞에서 양들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중국의 힘은 이제 두려울 만큼 커졌다. 중국산 김치에 기생충이 발견되고, 만두에 농약성분이 검출돼도 정당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문제 삼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동북공정도 그렇고 백두산 공정도 그렇다. 정말이지, 작금의 사드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태도는 한마디로 안하무인격이다. 나는 중국이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고 대국으로 굴기하는 것에 대해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을 믿고 군림하려는 중화 패권주의 보다는 세계 시민으로 공존해야 함을 중국은 알아야 한다. 중국의 한 성 크기도 안 되는 한반도에 사는 나는 중국이 초강국이 된다는 엄연한 현실이 두렵고도 무섭다. 한국은 중화우월주의에 빠진 덩치 큰 이웃을 원하지 않는다. 이제 성장한 덩치만큼 교양있는 세계국가로 거듭 나야한다.
 
나의 오랜 이웃 중국인들은 알아야 한다. 많은 세계인들이 중국을 겁내고 있긴 하지만 존경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엄연한 현실을. 대륙 동쪽 끝에서 한 때는 동이(東夷. 동쪽 오랑캐)로 취급 받으며 오천 년 동안 열강에 시달리며 가까스로 생존해 온 물강스럽고도 작은 나라를 조국으로 둔 나는 힘 센 이웃 국가 중국이 좀더 도덕적이고 품위있는 국가가 되기를 간곡하게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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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5시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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