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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경제협력, 10년 전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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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6월17일 17시02분
  • 최종수정 2018년06월18일 14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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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경제협력이 본격화될 모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평화와 번영이라는 시대정신을 표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미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경제적 번영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번영의 방법은 하나다. 남북경협이다. 남과 북,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국은 성숙 경제 단계에서 겪고 있는 정체의 늪에서 벗어날 계기를 찾을 수 있다. 북한은 번영을 도모하고 대중국 종속에서 벗어날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당장 떠오르는 건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10년간 남북경협이 활발했지만 실패했다는 점이다. 물론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때문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10년간 삼성과 현대, 대우 등 재벌기업들이 북한과 합작 또는 합영 형태로 공장을 가동했지만 불과 몇 년 못갔다. 노무현 정부 때의 일이다. 포스코 등 북한 자원을 개발하거나 수입한 기업들도 상당수였지만 모두 한두 번 거래해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냐? 남북경협이 성공하려면 그 요체는 정부와 기업의 협력이다. 하지만 당시엔 이러한 협력이 없었다. 정부는 기업의 팔을 비틀어 협력을 강요했다. 기업은 시늉만 했지 진심은 아니었다. 수지가 맞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투자한 돈이 크지 않았기에 매몰비용으로 처리했다. 조만간 본격화될 남북경협에서 경계해야할 점이다. 10년 전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북한을 두 번 다녀왔다. 신문 기자 시절이었던 2006년과 2007년이었다. 북한 경제 취재를 위해서였다. 기업과 공장, 농장을 방문했고, 기업인과 경제 관료들을 인터뷰했다. 그 때 느낀 소감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불쌍함이다. 취재를 허용한 기업들은 북한이 대외적으로 내세울 만한 공장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공장들의 제품조차 품질이 매우 조악했다. 예컨대 평양화장품공장은 치약과 비누, 화장품 등을 생산하는 북한 최고 기업이다. 하지만 은하수란 브랜드 명의 이 회사 제품은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에는 도저히 팔 수 없을 정도의 품질이었다.  전선과 케이블 생산이 북한 최대인 평양 3.26 전선공장의 제품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우리나라의 1960년대 수준이었다. 심지어 자기 제품이라며  전시해놓은 일부 전선에는 KS마크가 찍혀 있었다. 한국의 중소기업 제품을 자신들이 만든 것이라 자랑한 거였다. 

전력과 도로, 철도 등도 태부족이다. 송·배전설비는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도로 사정도 형편없다. 한국 기업이 청천강 유역에서 골재를 채취하려고 했지만 수송이 어려워 포기했을 정도다.  이런 기술과 인프라 상황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도와줄 게 별로 없다. 그래도 진출하겠다면 설비와 기술, 원·부자재 등을 몽땅 갖고 가야할 판이다. 북한과 경제협력을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할 대목이다.

 

둘째는 뻔뻔함이다. 그들은 한국이 도와주는 걸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했다. ‘잘 사는 큰집’이 ‘가난한 작은 집’을 도와야 한다는 식이다. 선풍기와 전기시계 등을 생산하는 평양자동화기구공장을 방문했을 때다. 선풍기 등은 생산하지 않고 삼성전자와 2000년 합영 형태로 설립한 완구용 녹음기만 생산하고 있는 듯했다. 삼성전자가 중국 해주공장에서 생산한 부품을 보내면 여기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시작할 때만 해도 삼성전자 직원들이 와서 기술 지도를 했다. 또 처음엔 전화기도 생산했지만 삼성전자가 중단했고, 녹음기도 당초 월 2만대씩 가져가기로 했지만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공장 경영진은 섭섭해 했다. 돈 잘 버는 삼성전자가 왜  ‘화끈하게’ 도와주지 않느냐고.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정치 문제다. 당시 삼성, 대우, 현대 등 대기업들이 북한에 진출한 건 우리 정부의 강권 때문이 가장 컸다. 북한을 지원하라고 기업들을 닦달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진출했으니 애착도 적었을 게다. 수지라도 맞으면 진출한 건 지속할 수 있겠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당시 포스코는 북한에서 석탄을 수입했다. 하지만 남포항에서 실어 광양까지 옮기는데 하루면 될 일을 15일이나 걸리자 중단했다. 그런데도 북한 사람들은 자기 탓은 않는다. 한국이 도와주지 않는 걸 불평할 뿐이다.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 게 중국이다. 북한 기업이 쓰는 원자재와 설비, 기술자들은 물론 설계도면까지 중국에서 들여왔다. 평양 3.26 전선공장의 경우 기계 설비와 주요 원부자재는 모두 중국제였다. 어림잡아도 중국에의 산업의존도가 90% 이상 되는 듯했다. 당시에도 그랬는데 남북경협이 중단된 지난 10년 동안에야 더 말할 나위도 없겠다. 결국 북한은 중국의 하청생산기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컸다. 한국에는 딜레마다. 도와주자니 여의치 않고, 손을 떼자니 중국 의존도가 걱정이다. 북한과 협력할 때 고려해야할 또 다른 대목이다.

 

10년 전 취재란 지청구를 들을 것 같다. 그렇다. 10년 전에 가서 보고 느낀 것들이다. 그동안 북한은 성장했다고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5년(2012~2016년)간 연평균 1.24% 성장했다. 그 전 5년(2007~2011년)은 제로 성장(연평균 0.26%)이었던 데 비하면 꽤 괜찮은 수치다. 설령 성장한 게 사실이라고 해도 한국과의 격차는 더 커졌다. 한국 기업이 북한 기업과 협력할 게 지금도 많지 않다는 의미다. 이뿐만 아니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서 다시 또 상기된 사실이 있다. 2014년 우주비행사가 찍은 한반도의 야경이다. 이때도 북한은 10년 전과 똑같이 불빛이 전혀 없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북한은 지금도 전력이나 철도, 도로 등 인프라 사정이 열악하다는 얘기다. 10년 전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방증이다. 

 

본격적으로 재개될 남북경협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제기돼야할 문제도 마찬가지다. 관건은 한국 기업이 북한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도록 유인책을 어떻게 만드느냐다. 

북한의 발전단계를 고려할 때 한국 기업들이 북한에 진출하더라도 함께 성장하기는 매우 어려운 구조다. 또 전력과 도로 등 SOC(사회간접자본)와 인적자원, 물적 자원도 태부족하다. 제도적 인프라도 미비하다. 외국인 투자 관련 법령이나 제도가 제대로 안 돼 있다. 무엇보다 한국 기업은 여전히 북한이 보기에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을 게다. 맘에 안 들면 한국기업의 자산은 언제든 뺏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다. 한국 기업이 두려워하는 부분도 이것이다. 중국이나 미국 기업에 대해 북한이 갖고 있는 인식과 확연히 다른 점이다. 

 

우리 정부와 북한 당국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도 이것이다. 북한 투자에 대한 보장이다. 그렇지 않는 한 국내 기업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북한 SOC지원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 기업에 맡길 일 아니다. 하긴 정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의 3대 경제평화벨트의 중점 내용도 SOC건설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워낙 많은 돈이 들어가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14년에 추산한 바에 따르면 북한의 도로와 철도 건설에 투자해야할 비용이 무려 42조원이다. 도로에 23조원, 철도에 19조원 정도 들어가야 한다는 분석이다. 다른 나라나 국제기구와 분담하는 게 최선이지만 그렇더라도 우리가 부담해야할 몫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동의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 10년 전처럼 민간 기업의 팔을 비틀어 재원을 분담하도록 해선 안된다. 

 

정부가 해야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한반도 경제개발 중장기 계획의 수립일게다. 남북을 통합하는 개발모델 말이다. 마침 2년 전 북한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2016~2020년)을 발표했다. 이를 남북한이 공동으로 검토하고 더 나아가 북한 경제개발 지원 5개년 계획 등을 수립했으면 한다. 이 계획에 따라 SOC도 건설하고, 공공 지원에 의한 생산 공장도 짓는 수순을 밟았으면  한다. 북한의 각종 대외경제 및 투자관련 법령도 정비해야 함은 물론이다. 섬유와 신발 등 고용 효과가 큰 공장의 건설 지원도 필요하다. 영원무역 등은 방글라데시에 공장을 지어 수만 명을 고용했다. 하지만 제도적, 물적 인프라가 어느 정도 정비되면 국내 기업들이 북한 투자를 마다할 리가 없다. 임금 조건은 비슷하면서 인적 자원의 질은 북한이 나은 측면이 있어서다. 

 

말을 빙빙 돌려 그렇지, 요약하면 두 문장이다. 생선을 갖다 줄게 아니라 생선 잡는 법을 가르쳐 주자는 얘기다. 그래야 우리도 큰 돈 안 들이면서 북한과 상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남북경협은 이래야 한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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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6월17일 17시02분
  • 최종수정 2018년06월18일 14시48분
  • 검색어 태그 #남북경협 #한반도 경제지도 #북한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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