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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제에 대한 기대와 우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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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5월30일 17시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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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근로제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 오면서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기대가 있지만 우려도 크다. 특히 우선 적용대상인 300인 이상 기업들은 대응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개정 근로기준법에서 노선버스가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서 경기도내 34개 버스업체들이 공동으로 3,000여명의 버스기사를 채용할 예정이다. 격일제 근무에서 1일 2교대로 근무형태가 바뀌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1만6천여 명의 버스기사가 부족할 것으로 추정된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1만 6천개의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나 현실 상황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대부분의 도시의 버스회사들은 정부가 세금으로 적자를 보존하여 주는 준공영제를 실시하는 서울, 인천 등 특별광역도시의 버스회사로의 인력 유출을 걱정하고 있다. 준정공영제 버스기사의 월급여가 다른 버스 기사보다 20% 정도 높기 때문이다. 

근로시간이 줄어들면서 임금도 최대 30% 정도 줄어들기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보전이 올해 버스회사의 임금협상에서 최대 쟁점사안이 될 전망이다.

경기도는 2020년까지 200억 원을 들여 8,000명의 버스 기사를 양성할 계획인데, 당분간은 노선 축소 등으로 시민들의 불편이 불가피할 것이다. 박근혜정부 초기 법질서 및 안전 확보 차원에서 고속도로 등에서 버스 입석을 금지하였는데, 출근대란이 일어나서 서둘러 취소한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

 

선도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한 신세계그룹의 사례를 보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고용증가는 기대치 이하일 가능성이 크다. 이마트는 전자가격표시기를  활용해 상품입고 소요시간을 5시간에서 2.5시간으로 줄였고, 자동김밥 형성기를 도입하여 업무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식당 등 매장에서 고객이 직접 기계를 통해 주문하는 시스템이 확산되었듯이 기업들은 자동화 등을 통해 인력을 절감할 여러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노조에 의해 보호받고 여력이 있는 공공기관이나 재벌 대기업 근로자들은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지만 많은 근로자들이 ‘돈 없는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우려가 크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생계가 막막해진다는 목소리가 매일 올라오고 있다.

 

주52시간을 조기 시행하는 대기업들의 근로자들도 휴일근무와 야간 근로가 줄어들면서 임금이 줄어들어 불만이라고 한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하락 분을 보전하여 줄 수 있는 중소기업들이 많지는 않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377개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건비 부담(37.1%)이 예상되는 경영상의 최대 애로요인이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급격한 노동정책 변화에 대해 조사 대상 기업의 절반 정도(44.6%)가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응답하였고 나머지는 자회사 등으로 인력재배치, 시간제 근로자 확대, 생산 임시직 활용 등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최저임금의 지속적인 인상이 예상되고 구조적 인력난에 대한 근본 처방이 없이 근로시간 단축을 하여야 하니, 사업장 쪼개기, 휴식시간 일부 축소, 30분 일찍 출근하기, 퇴근카드 미리 찍기 등 편법을 쓰는 상황으로 기업들이 몰리게 될 것이다.

30시간 이상 소요되는 남미 등 장거리 지역으로 장기 출장을 가면 주 근로시간을 어떻게 처리하여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지침이나 관행이 없이 주52시간이 강제되고, 주52시간이상 근로를 시키면 형사처벌을 받기 때문에 노조, 직원 심지어는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이 경영진을 고발 신고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김영란법 시행 초기 1,000원짜리 음료수를 선물 받은 교수가 고발당하는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발생할 것이다. 회사가 경비를 지원하는 회식은 급격히 줄어 들 것이다.

 

준비 안 된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은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이다. 전 세계에 지사나 공장 그리고 협력 업체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은 지구 다른 지역의 공장이나 협력회사들과의 협조나 고객 대응 능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다.  애플,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들과 일하여야 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체의 연구개발 인력, 시간이 생명인 제약업계 들은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하여야 할지 대책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중견기업연합회의 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기업들이 유연근무제 실시요건 완화. 20% 가까운 기업들이 노사합의 시 특별연장근로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주35시간제를 도입한 신세계그룹이 준비하는데 2년이 걸렸다. 

근로시간단축 정부위원회의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특례업종 10개를 5개로 축소하면서 전격적으로 실시되는 주52시간제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현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제도 개선은 2022년까지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도록 법에 명시되어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조속히 확대하는 것이다. 

최장 68시간의 근로시간이 허용되던 개정 전 근로기준법 하에서의 2주간, 노사 서면합의가 있으면 3개월 단위의 현재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주52시간제에 맞추어 바꾸어야 한다.

 

독일은 6개월내지 24주, 단체협약시 1년 단위, 프랑스는 4주, 단체협약 시 1년, 미국은 26주 이내, 단체협약시 52주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운용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연장근로시간의 상한이 360시간이나 노사합의시 무제한 가능하고 도요타, 닛산 등 대기업은 노사합의로 연 700내지 900시간의 연장근로를 하고 있다. 일본도 연장근로시간의 연간 상한을 720시간으로 제한하는 법을 의회에서 논의하고 있으나 우리보다 유연하게 접근하고 있다. 우리보다 연장근로시간 상한도 높지만 월45시간이 넘은 연장근로를 계절적 사유, 납품마감 등의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1년에 6개월까지 할 수 있다.

산별교섭체계를 기본으로 하는 프랑스는 2017년 노동개혁을 통해 50인 미만 기업은 노조를 거치지 않고 사내근로자 대표와 협상이 가능하도록, 20인 미만 기업은 개별근로자가 각각 근로시간 협상을 가능하도록 하였다.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확대되면 특히 연구개발 분야, IT 업계, 성수기와 비수기 구분이 뚜렷한 빙과업계 등에서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의 부작용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노사합의로 무제한 연장 근로가 가능한 일본이 우리보다 연 근로시간이 400시간 짧은 것은 강제적인 근로시간 단축이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일터 혁신을 통한 생산성 제고,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시장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 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근무시간에 웹 서핑을 하거나 제조업 생산라인에서 생산직 근로자가 책을 읽거나 컴퓨터로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은 근로시간이 우리 보다 짧은 구미 선진국이나 일본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평균의 70%, 일본의 80%이다. 업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스템과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500대 기업의 43.1%가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 장기근속자를 우대하는 호봉제에서 성과가 중시되고 직무급이나 직능급으로 임금체계가 바뀌어야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하여 일하는 방식을 혁신할 기반이 구축될 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노동시장의 양극화도 더욱 심화될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정규직 집배원의 토요근무를 폐지하고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정규직이 소화하지 못한 택배 물량을 개인사업자 신분인 위탁택배원에게 넘기고 있다. 위탁택배원의 근무강도가 높아지고, 정규직 52시간제 준수를 위해 비정규직의 고용이 더 늘어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기업은행이 준공공기관으로서 금융권에서 최초로 7월1일부터 주52일시간제 시간제 시행을 예정하고 있는 가운데,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주5일 이하’ 근무제도를 올해의 교섭의제로 제시하였다. 임금삭감이 없는 주4일 근무제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최고수준인 금융권 근로자의 급여 및 복지와 다른 부분과의 차이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끝으로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이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긴 것은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고 파트타임 근로자의 비중이 낮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의 비중은 26.8%이나 일본은 11.5%, 독일은 11.0%이다. 우리나라의 파트타임 근로자의 비중은 36개 OECD국가 중 28위이다. 파트타임 근로자에 대한 적절한 보호와 사회적 인식의 개선을 통해 파트타임 근로를 활성화하고 주52시간제 적용대상이 아닌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및 자영업자의 근로시간도 줄이는 방안을 고민하여야 한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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