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경제 문맥을 모르는 영혼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8년05월28일 17시32분
  • 최종수정 2018년05월29일 17시16분

작성자

  • 조장옥
  •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메타정보

  • 45

본문

 

모든 경제는 변동하면서 성장한다. 이를 연구하는 거시경제학은 연구주제를 크게 경제성장과 경기변동으로 구분한다. 경제성장이론은 잠재성장률이 장기적으로 증가하는 요인과 경로를 연구하는 거시경제학의 분야이다. 그리고 경기변동은 단기적으로 실제 GDP가 잠재 GDP를 중심으로 때로 증가하고 때로 감소하는 현상을 일컫는데, 경기변동이론은 그와 같은 단기변동의 원인, 전파경로, 주기와 진폭을 연구하는 거시경제학의 분야이다. 그러나 지난 50여 연간 한국경제의 성장을 돌이켜 보면 경제성장의 문제가 경기변동의 문제보다 훨씬 중차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동안 겪었던 경기변동은 1997~1998년의 외환 위기나 2008년 세계금융 위기 등을 제외하면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단기적인 현상인 경기변동은 흘러가고 나면 대부분 잊히지만 경제성장은 항구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이러한 상대적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보다 경기변동에 관한 연구논문이 훨씬 많이 출간되었고 아직도 그렇다. 그만큼 경제성장보다는 경기변동의 문제가 훨씬 어려운 문제이다. 요즈음 학자들과 경제관료 사이에 전개되고 있는 불황논쟁도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경기변동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경제학자들은 모두 거시경제학자가 아닌지 착각할 때가 있다. 그들은, 심지어 경제학의 배경이 전무한 일반인까지, 거시경제에 관하여 한 말씀씩을 하고 수시로 자기 의견을 피력한다. 그러나 그들의 의견 가운데는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맞지 않는 것도 적지 않다. 그러한 인사들 가운데에는 경제 문맥을 전혀 모르는 것으로 생각되는 영혼들도 존재한다. 

 

경기변동의 원인은 무엇인가? 

 

경기변동을 연구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여야 하는 것은 그 원인인데 이를 최초충격(impulse)이라고 한다. 실제 경제에서 최초충격은 매우 다양하나 크게 나누어 수요와 공급, 정책 그리고 일반대중의 기대(예상)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경제와 같이 개방화의 정도가 큰 경우 수요충격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해외충격일 것이다. 즉 외국의 경기가 나빠져서 우리의 수출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한다든가 트럼프 미행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보호무역주의는 대표적인 해외충격이다. 이와 같은 충격이 주어지면 수출이 감소하고 수출산업의 고용과 투자, 생산이 감소한다. 수요충격으로 선호(preference)에 주어지는 충격 또한 존재한다. 즉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소비와 여가에 대한 선호도가 자주 변한다. 그와 같은 변화는 소비와 노동공급에 영향을 미치고 경기변동을 유발한다.    

 

최근의 경기변동이론으로 실물경기변동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와 같은 이론에서는 생산성충격을 경기변동의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다. 생산성 충격이란 그야말로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의 생산성에 주어지는 충격이다. 생산 활동에서 노동자들이 항상 같은 생산성을 유지하는 것은 아마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새로운 기술혁신이 빠르게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공급충격이다. 이 이외에도 다양한 공급충격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요사이 이란과의 핵 합의를 트럼프 미대통령이 파괴함으로써 원유가격이 치솟고 있는 것은 생산원가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공급충격의 하나이고 지진,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 또한 공급충격이다. 나아가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파업을 일으킨다든가, 정치적 소요가 일어나면 공급에 차질생김으로 공급충격이다. 

 

교과서적인 경기변동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정책이다. 특히 잘못된 정책은 가장 중요한 경기변동의 원인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1930년대 초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휩쓴 대공황은 잘못된 정책대응이 초래한 재앙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주지하다시피 대공황은 1929년 10월 미국 주식시장의 폭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초래된 위기는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인 연준이 적절히 대응하였다면 2008년의 위기보다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불황의 한 가운데에서 미국의 통화량은 크게 감소하였고 급속한 물가하락 곧 디플레이션이 나타났다. 많은 은행의 파산과 당시 미국이 택하고 있던 금본위제도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시장의 자유방임과 자동조정기능에 맡긴 정책당국의 오판이 크게 작용하였다. 디플레이션은 채무자의 채무부담을 가중시킴으로 가속적으로 경기를 침체시킨다. 이와 같이 정책이 경기변동의 원인이 되거나 변동을 확대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마지막으로 경기변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인반 대중의 기대(예상)이다. 예를 들어 미래에 쌀값이 오르리라고 기대되면 가격이 오르기 전에 미리 쌀을 구입함으로 현재의 쌀값이 상승한다. 반대로 쌀값이 하락하리라고 기대하면 현재 쌀을 구매하지 않고 미래로 이연한다. 따라서 현재의 가격이 하락한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미래에 호황이 기대되면 미리 투자가 이루어지고 반대로 불황이 기대되면 투자를 미루게 된다. 경제에서 거의 모든 거래는 기대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기대되면 실제로 가격이 상승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하락하는 현상, 이를 거시경제학에서는 자기실현적 기대(self fulfilling expectations)라고 부른다. 경기변동에는 자기실현적인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당국자들은 정책행위가 대중의 기대에 미치는 효과를 상고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신중함을 지녀야만 한다. 

 

경기변동은 어떻게 전파되는가?                   

 

원인이 그 자리에서 소멸하면 경기변동은 일어나지 않거나 작은 규모에서 그친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원인 곧 충격일지라도 경제전체로 퍼져 나가는 것이 거시경제의 특징이다. 즉 한 경제는 크고 작은 선택들의 연속이며 모든 시장은 다양한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한 시장 또는 한 유형의 경제주체에 발생한 충격 곧 경기변동의 원인은 다른 시장에서의 변동으로 전이된다. 때로는 작은 변동이 상상 이상의 큰 변동을 야기하는데 이를 나비효과라 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경기변동의 충격(원인)이 경제전체로 퍼져나가는 경로를 전파경로(transmission mechanism)라고 한다. 지금 각종 학술지에 발표되고 있는 많은 경기변동에 관한 논문들은 대부분 전파경로에 관한 것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경기변동의 전파경로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예를 들어 원유가격이 상승하였다고 하자. 원유는 많은 산업과 기업의 생산요소이므로 생산비를 증가시킨다. 생산비의 증가는 가격을 상승시키고 가격의 상승은 제품의 판매량을 감소시킨다. 이는 다시 고용의 감소를 초래하고 경기는 침체되기 시작한다. 경기침체와 고용감소는 소득, 소비와 투자의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제품 판매량의 감소를 초래한다. 이와 같은 연쇄반응은 소득과 수요의 감소를 통해 원유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기업이나 산업의 제품 판매량이 감소한다. 따라서 고용과 소득, 소비와 투자는 더욱 감소한다. 이와 같은 경기변동의 심화는 정책당국이 적절한 정책을 시행하거나 일반 대중의 기대가 비관론에서 낙관론으로 전환될 때 멈추고 경기는 다시 회복된다. 물론 이때 어떤 정책이 최적인가는 일반적으로 말해 경기변동의 원인과 크기 그리고 경제구조에 따라 다르다. 특히 경직적이거나 노쇠한 경제구조를 가진 경제에서는 불황을 쉽게 극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음에 유의하여야만 한다.  

 

경기변동은 어떻게 진단하나?  

 

경기변동을 미리 예측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여러 정부 및 민간 연구기관들이 경기변동을 예측하지만 들어맞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예측은 틀리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경제학연구를 위한 순수 민간연구기관인 NBER(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에서 경기변동의 시점을 발표하고 있다. 경기가 고점(peak)에서 저점(trough)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불황(recession), 저점에서 고점으로 상승하는 과정을 경기팽창(expansion)이라고 정의한다. 물론 불황 중에서 잠깐의 반등이 있은 다음 더 깊은 불황으로 빠져들기도 하고 경기팽창 중에서도 잠깐의 불황이 있은 다음 더 큰 팽창이 일어나기도 한다. 따라서 NBER의 경우에도 확정적인 경기변동의 정의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경기변동 시점의 진단은 대부분 사전적인 것이 아니라 사후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근거를 가지고 불황이나 경기팽창을 진단하는 것일까? ‘NBER 경기변동시점진단위원회(the NBER Business Cycle Dating Committee)’는 각 분야의 최고권위자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공식적인 방식은 발표하지 않고 있다. 다만 경제 전체를 대표하는 지표인 GDP의 생산과 소득 측면, 고용 그리고 소득지표들을 먼저 살펴본다. 그리고 이들 지표로 경기의 고점과 저점이 잘 정의되면 그에 따라 경기변동의 시점을 결정한다. 만일 이들 지표를 이용하여 고점과 저점을 결정하는데 상충이 발견되면 분야별 지표인 실질판매(real sales)와 산업생산지수(index of industrial production)를 참조한다. 흔히 미국의 경제지들은 실질 GDP가 2분기 연속 하락하면 불황으로 진입한 것으로 보도한다. NBER의 경기진단도 많은 경우 이와 일치하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지금 불황으로 진입하고 있나?

 

최근 한국경제가 불황에 진입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해 먼저 실질 GDP증가율과 실업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계절변동을 제거한 실질 GDP 증가율은 2017년 4/4분기에 0.2% 감소한 다음 2018년 1/4분기에 1.1%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것만을 보고 우리가 호황에 있는지 아니면 불황에 진입하고 있는지를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경제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는 <그림 1>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한 시점까지의 4분기(예를 들어 2017년 4/4분기의 경우 2017년 1/4~4/4분기) 실질 GDP 평균증가율을 보면 유익하다. 이에 따르면 한국경제의 경기변동의 국면이 잘 나타난다. 즉 2017년 3/4분기 깜짝 성장 이외에 한국경제는 2016년 3/4분기 이래 현재까지 불황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2016년 2/4분기 이전의 호황 뒤에 우리 경제는 불황의 횡보를 거듭하고 있다. 

 

6b225cbb0f51397955d6c763b2b65a50_1527492 

        자료: 통계청 

 

6b225cbb0f51397955d6c763b2b65a50_1527492 

        자료: 통계청

 

이와 같은 사정은 실업률의 경우 너무나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림 2>에는 한 시점까지의 12개월 평균 실업률이 나타나 있다. 이 또한 우리 경제의 경기변동국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2014년 이후 우리 경제의 12개월 실업률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평균적으로 높은 실업률은 감소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과거의 불황(높은 실업률)은 비교적 단기에 끝나고 장기의 자연실업률로 회귀하는 특성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상당 기간 높은 상태에서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추세가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것은 우리경제의 구조가 높은 실업률로 고착화되는 징조라고 짐작되기 때문이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장기불황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 전체의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로서 실질 GDP나 실업률의 이와 같은 최근 추세로 미루어 볼 때 우리 경제가 불황으로 접어드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저간의 불황에서 나아지지 않는 횡보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발표된 지표들은 우리 경제가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수출증가율이 마이너스가 될 정도로 저조하고 제조업 가동률과 산업생산 증가율이 매우 저조하다는 통계청의 발표가 있었다. 경기변동을 판단하는 이와 같은 보조지표의 악화는 우리 경제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불황 논쟁으로부터 무엇을 얻어야 하나? 

 

지금의 불황논쟁은 주로 학자들이 불황진입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정부 관료, 청와대의 참모들을 비롯한 정책담당자들은 여러 논거를 들어 그와 같은 주장을 반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먼저 학자들이 그런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은 일상사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가능성을 보고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부끄러운 일이 있을 수 없다.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때로 정책담당자들은 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은가. 예를 들어 1997년 말에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 한 토론회에서 어떤 관료 왈 외환위기는 학자들의 경고가 없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당시에도 학자들의 경고가 없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책을 담당했던 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와서는 안 될 비열한 책임전가였음을 두 번 말할 필요가 없다. 

 

학자들의 문제제기에 최근 정책담당자들의 대응은 먼저 사용된 데이터가 월별자료이기 때문에 경기변동을 판단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앞에서 NBER의 경우에 경기변동의 시점을 주로 분기자료를 이용하여 판단한다고 소개하였다. 그러나 NBER의 경우에도 월별자료를 들여다보며 미국의 경우에는 심지어 월별 GDP통계를 수집·발표하는 민간연구기관까지 존재하고 이 기관이 발표한 자료 또한 참조한다. 다시 말해 월별자료에도 경기변동에 대한 유용한 정보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자료로부터 얻은 정보에 기초한 주장을 백안시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3월과 4월의 일자리 증가율이 저조하다는 데 대하여는 계절적 요인이며 6월에는 회복할 것이라는 반박이 있었다. 그러나 <그림 2>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실업과 일자리의 문제는 계절적 요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매우 절박한 추세의 문제가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최저임금의 인상이 고용을 감소시키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과한 주장이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지금의 논쟁은 얼마든지 건설적일 수 있다고 본다. 논쟁의 내용이 위에서 언급한 정도까지 비열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경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개인적인 인신공격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나라 경제의 중차대한 책임을 맡고 있는 인사들이 가져서는 안 된다고 본다. 문제의 제기는 그와 같은 문제를 들여다보라는 의미 이외에 무엇이겠는가? 지금 경제가 보다 깊은 불황으로 진입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다가오는 불황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인지, 만일 존재한다면 불황의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경제 전체로 전파될 것인지, 경기변동의 측면에서 지금 우리 경제가 직면한 문제는 장기 저성장과 얽혀 매우 복잡하다. 정책담당자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에 좀 더 귀기우려야만 할 때라는 생각이다. 남의 입을 통해 자기 의견을 듣는 우는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귀를 닫음으로써 문맥을 모르는 영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ifs POST>

45
  • 기사입력 2018년05월28일 17시32분
  • 최종수정 2018년05월29일 17시16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