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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행정기관들의 독립성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 <2>독립규제위원회의 독립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8년05월22일 17시30분
  • 최종수정 2018년05월30일 08시27분

작성자

  • 최승필
  •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행정법, 금융경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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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독립성이 필수요소인 조직은 독립규제위원회(IRC)이다. 미국 독립규제위원회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주요 선진국의 독립행정위원회의 조상(祖上)에 해당한다. 미국에서 독립행정기관으로 독립규제위원회가 등장한 것은 미국의 서부개척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00년대 중반의 미국에서 행정 분야의 힘은 각 주(州)로 분산되어 있었고, 경제 분야는 철도 등 인프라와 광산, 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신흥자본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다극적 구도였다. 그 중 철도는 독립적인 규제위원회를 촉발시킨 가장 큰 계기였다. 

 

생각해보자. 서부에서 열심히 일해서 오렌지를 생산해서 동부의 뉴욕에 팔고 싶은데 철도 운송비가 너무 비싸다. 결과적으로 뉴욕 사람들은 비싼 오렌지를 먹어야 한다. 운송료가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오렌지뿐만 아니라 모든 상품, 즉 면화, 밀, 옥수수, 석탄이라고 해보자. 모든 생필품가격이 몇 개 철도회사의 맘먹기에 따라 널뛰기를 한다. 몇 개 안되는 철도회사들 끼리 담합을 하기도 하고, 정치인과 관리들에게 로비를 해서 이권을 지키고자 했다. 자연스럽게 철도회사나 결탁된 관리나 정치인으로부터 ‘독립’적인 기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철도에 연관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경제가 철도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도회사를 포함한 여러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규제할지에 대해서. 그래서 위원회형 제도를 선택한다. 

 

1887년 독립규제위원회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주간(州間)통상위원회라고 부르는 ICC가 생겨난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위원회에 독립성을 부여한다. 위원회 구성에서는 다양성을 추구하되, 위원회의 운영과 결정에서 철도사업자들의 조직적인 로비와 정치적 압력,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선 규제옹호론자들의 압력, 모두로부터 중립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세기 초반 대공황을 맞이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성을 갖춘 독립적인 규제위원회가 더 많이 만들어진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보다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의회는 이들 위원회에 많은 권한을 위임한다. 행정을 할 때 기준이 되는 규칙도 스스로 만들고, 자체적으로 분쟁이 발생하면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재판소와 비슷한 권한도 갖게 한 것이다. 몽테스키외(3권 분립)를 거스르는 조직이었다. 권한의 분점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견제와 균형이 비상시에는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이처럼 위기는 늘 새로운 모멘텀을 가지고 온다. 

 

  독립규제기구들은 대체로 위원회조직으로 원탁의 기사들로 위원회가 꾸려진다. 여기에서 ‘원탁의 기사’란 위원회 위원 간 대등한 관계라는 의미이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자리라 원탁의 기사가 되기도 어렵지만 일단 원탁의 기사가 되면 해임도 어렵다. 정해진 사유가 아니면 해임을 시킬 수 없다. 그 사람들이 잘해서 해임을 시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잘하든 못하든 함부로 해임을 시킨다면 중립적인 금융정책, 경쟁정책, 방송통신정책이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독립규제위원회가 진짜 독립적일까? 기관의 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예산에 대해서 독자적인 권한을 갖는다지만 여전히 의회의 통제 하에 있고, 분쟁에 대해서 심사·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나 종국적으로는 법원의 판단을 받는다는 점에서 사실 사법권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독립성이라는 것이 실질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나온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우리나라의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가 미국의 독립규제위원회와 같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역할은 같은 것을 하는데, 규칙을 제정하는 권한 및 방식, 그리고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이 다르다. 독립성의 면에서도 미국과는 차이가 있다. 정치적 입김에서 실제로는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에서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식은 대통령과 의회와의 긴장 속에서 이뤄진다. 대통령이 영향력을 미치려면 의회가 견제하고, 의회가 영향을 미치려면 대통령이 견제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권한이 실질적으로 의회보다 우위에 있어 이러한 견제관계가 형성되기 쉽지 않다.

 

미국에서 독립규제위원회의 독립성과 관련하여 주로 문제되는 것이 인적독립성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대통령으로부터 독립규제위원회가 자유롭지는 않다 (법률과 책에서는 자유롭다고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최대한 영향 받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며, 미국의 경우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편이다) 

오늘날 인적인 독립성에서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회전문 인사’이다. 오늘날에는 관에서 민으로 가는 순간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향유한다고 해서 ‘레드카펫’이라 하기도 한다. 이제는 독립성을 주장해야 하는 대상이 대통령이나 의회가 아니라 바로 감독을 해야 하는 업계이다. 

 

위원장이나 위원들이 해당업계에서 CEO이었거나, 규제대상 기업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이었거나, 업계에서 활약하던 투자가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90년대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장관이었던 루빈은 골드만 삭스의 경영자 출신이다. 2001년부터 4년 동안 부시행정부에서 연방통신위원장을 맡았던 마이클 파월은 업역단체인 케이블방송통신협회장이 되었다. 2015년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된 메리 조 화이트는 월가 금융회사를 변호하던 로펌 출신이다. 회전문 안의 전문가들은 규제를 받던 자리에서 규제를 하는 자리로 돌아오고, 다시 임기가 끝나면 규제를 받던 자리로 돌아가게 되면서 오히려 정책의 중립성에 대한 새로운 위협가능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언론에서 보도되는 위원장 인사만 신경 쓰고 있지만, 위원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 역시 회전문 인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해당 업역에서 활동하고 연구했던 사람만큼 전문가가 없는 현실에서 그 인력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인적자산을 낭비하는 것이 될 수 있다. 회전문 인사의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인적자산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바로 ‘유리 상자’ 가 필요하다. 선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인적 전문성을 활용하기 위해 회전문 인사를 하되 정부에 대한 로비를 막는 장치를 두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회전문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가능한 답은 전자일 것이다. 전문영역에서 전문가들이 빠진 인사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회전문 인사 자체를 배제하기는 어렵다. 대신 투명성 강화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그래서 불법로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영국은 아예 2014년에 로비스트 등록에 대한 법(Transparency of Lobbying, Non-Party Campaigning and Trade Union Administrative Act 2014, 보다 자세한 사항은 최승필, 공공행정/규제개혁, Global Legal Issues, 2015, 47-50면)을 만들었다. 아예 로비할 사람들은 등록하라는 것이다. 등록하지 않고 하는 로비는 모두 제재를 가한다. 법률의 핵심적인 사항은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으며, 언제 누구를 만났는지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독립적 기구는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서 합의제 기구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완전한 조직은 없듯이 전문영역에서의 ‘그들만의 리그’가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으며, 정치권력이 독립기구의 인적요소를 실질적으로 장악한다면 사실 그 역시 그다지 중립적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제도는 최대한의 인프라를 구성하는데 그치며, 그 내부를 채우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중립을 지키려는 의지,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정치 및 경제 권력의 자제(自制), 의회의 견제활동, 투명성을 높이려는 법적 환경의 조성, 이 모두를 감시하는 국민들의 참여가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독립의 의미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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