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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가 황금알을 낳을 수 있을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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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5월14일 17시49분
  • 최종수정 2018년05월14일 17시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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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조 투자와 20만개 일자리 만들기가 그렇게 쉬울까?​

 

  산업통상자원부는 3대 경제단체(상의・무역협회・중견연합회 부회장)와 컨설팅・학계 전문가 및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 등 30여명이 모여「산업혁신 플랫폼 2020」을 구성하고 2022년까지 「신산업 프로젝트 투자·일자리 로드맵」을 논의했으며, 민간 주도로 신산업 분야에서 향후 5년간 최대 160조 원의 민・관 투자와 함께 약 2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금년에만 약 2만 7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청년에게 희망을 주는 양질의 일터를 만들어 가기로 다짐했다고 11일 발표했다.

 

  이 보도를 본 필자의 느낌은 160조원의 투자와 20만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 이렇게 쉬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모임에는 대기업 대표 9명과 중견기업 대표 4명, 중소기업 대표 7명 등 20명의 기업인이 참여했다. 과연 현재 탈세조사를 받고 있거나 공정거래법 위반 또는 노동법 위반 등으로 정부와의 관계에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기업인들이 모처럼의 산업통상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만난 자리에서 진정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신산업 프로젝트에 160조 투자와 2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기업 투자를 촉진하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해야 할 일은 기업대표들을 모아서 ‘다짐’하는  행사가 아니라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 증대를 실질적으로 격려하고 촉진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조세를 낮추는 일이다. 과연 기업들이 신산업을 개발하기 위해 160조를 투자하고 20만개 일자리를 만드는데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  ​정부 당국자들도 다만 ‘다짐’만 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온 이후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친화적인 정책을 전개하는 동안 과연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업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국회가 법인세 상한을 인상할 때 산업통상자원부는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이런 정부 당국자들의 신산업 정책을 믿고 과연 “기업들이 160조를 투자하고 2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는 부담을 이행할 것인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미운 오리’, 스스로 ‘미운 털’을 뽑아라!

 

  지금 대한민국에서 대기업들은 ‘미운 오리’와 같다. 대표적으로 삼성그룹은 특검이 기소한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뇌물 제공 혐의 재판을 비롯하여 반도체 생산공정의 산업재해 문제, 노조 파괴 공작 혐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혐의,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 주식 문제 등  10여 건의 재판과 조사 등 정부와 불편한 현안들이 진행 중에 있다. 

 

​  ​한 신문의 칼럼(중앙일보, 5월 11일자, 「서소문 포럼」 ‘삼성은 견딜 수 있을까’, 김동호)은 “지금 삼성그룹은 한국에서 ‘공공의 적’인 양 집단 배싱을 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LG그룹·포스코·한진가는 탈세 조사를 받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대기업그룹들은 공통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재벌개혁’을 대표하는 정책과제로 재벌그룹들의 주력기업 외 자회사들에 대한 출자 정리 압박을 받고 있다.  필자는 재벌들이‘공공의 적’으로 취급받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삼성그룹을 비롯한 재벌들이 한국 사회에서 ‘미운 오리’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미운 오리’도 부족해서 ‘갑질’까지 드러남으로 인하여 ‘밉고 추한 오리’가 된 재벌가도 있다.

 

  정부는 ‘재벌개혁’을 한다고 닦달을 하고, 여론은 날로 ‘미운 오리’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높아지는 실정이다. 물론 이런 환경을 맞아 대기업 집단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도 변화가 필요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우선 개방경제의 확대로 인하여 글로벌 경쟁력의 확보 없이 내수시장 보호의 편익을 누리는 재벌은 더 이상 지속생존을 확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자신의 생존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그룹 내부거래나 총수 일가 기업에 일감 몰아주기 등 비경쟁적이고 효율성을 저해하는 거래관행은 근절할 필요가 있다. 

 

​  ​정치사회적인 환경 변화로 인하여 그동안 투자와 고용이라는 국민경제의 목줄을 쥐고 있다는 특권을 이용하여 정부로부터 암묵적으로 묵인되어 왔던 편법 승계를 비롯한 일체의 부당한 편익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한마디로 ‘미운 오리’가 살기 위해서도 ‘미운 털’을 스스로 뽑아야 한다.   

 

 정부-대기업 집단의 관계, 정리가 절실하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벌 총수들은 피의자 내지는 범법자가 되고, 재벌들에 대한 국민들의 ‘미운’ 눈길은 날로 엄해졌다. 더구나 일부 재벌가는 ‘갑질’로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재벌 승계과정의 탈세 문제, 공정거래법상의 부당행위, 노동법 위반 등등 ‘미운 오리’의 죄상 규명은 끝이 없어 보인다.

 

  특히 ‘촛불의 대의’를 엎고 출현한 문재인 정부는 시대정신에 걸맞게 재벌들이 투자와 고용이라는 국민경제의 목줄을 쥐고 있다는 구실로 누려왔던 구시대의 특권들을 ‘재벌들의 적폐’로 엄정하게 다루고 있으며, 그것이 ‘제대로 된 정부’가 해야 할 ‘바르고 옳은 일’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문제가 다 정리된 것은 아니다. 2015년 자료로 자산 5조원이상 대기업집단들의 매출액 합계는 1,233조원으로 통계청의 ‘경제 총조사’ 결과(2015년) 기업들의 매출 총액 5,311조원의 23%에 해당한다. 여기에 협력업체를 비롯한 생산계열 기업들의 매출액을 포함하면 실제 그 비중은 훨씬 더 클 것이다. 더구나 이 ‘미운 오리’들이 투자측면에서 차지하는 집중도는 더 높을 것이며,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핵심 투자의 비중은 보다 더 높을 것이다. 

 

 따라서 ‘미운 오리’들이 지배구조의 문제와 정부의 갈등 등으로 인하여 투자를 제대로 못하고 사업의 역동성이 손상되기 쉬운 여건에서  ‘미운 오리’들이 과연 160조원 투자와 20만개의 일자리라는 ‘황금알’을 낳을 수 있을 가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만큼 지금과 같은 ‘미운 오리 사냥’을 불확실하게 계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운 오리’를 대충 봐주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미운 오리 사냥’ 국면을 어느 선에서 정리하고 정부와 대기업집단들 간의 건강하고 국민경제에 이익이 되는 새로운 관계의 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운 오리’가 법과 국민경제 질서를 준수하는 ‘정상 오리’로 거듭 나는 것은 물론, 나아가 국민경제의 역동성을 이끌어 가는 ‘황금오리’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국면전환이 바람직하다. ‘오리’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경제의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기업 집단들은 「산업혁신 플랫폼 2020」과 같이 속내를 감추고 겉도는 한정된 ‘행사’가 아니라 현안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폭 넓고 진솔한, 보다 큰 틀의 대화의 장이 필요해 보인다. 이 대화의 성과로 정부는 재벌개혁의 범위와 일정을 확정하여 불확실성을 제거함으로써 ‘미운 오리’들의 생태계를 개선해 주고, ‘미운 오리’들은 스스로 ‘미운 털’을 제거함으로써 정부와 기업 간에 건전하고 국민경제 발전에 유익한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황금알’을 얻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을 주목해야

 

  우리 경제의 ‘미운 오리’들 문제를 정리하는 과제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또 다른 이유는 ‘시간 문제’에 있다. 지금은 세계 경제가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 또는 ‘2차 기계혁명’, ‘디지털 전환’으로 불리는 대전환기에 있으며, 이 대전환기의 대응 여하에 따라 세계 경제의 판도가 결정될 것이다.

 

   돌이켜 보면 꼭 100년 전 전기의 산업동력화(1913년 Ford Motor, Ford system 발표)를 계기로 미국은 영국을 추월하여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G1)으로 도약했으며, 영국은 현재 5위로 추락해 있다. 전기의 산업동력화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현재 세계 각국은 ‘디지털 전환’(Digtal Transformation)을 통하여 제2차 기계혁명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백악관은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의 핵심이 중국 정부의 “Made in China 2025”를 통한 중국의 세계 제조업 주도권 장악을 막는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정작 “Made in China 2025” 프로젝트 보고서는 추월 표적이 미국의 제조업이 아니라 바로 한국의 제조업임을 밝히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계 반도체 생산의 1/3을 수입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반도체 자급률을 현재의 20%에서 2025년까지 70% 수준으로 높이기 위하여 2차로 474억 달러 규모의 투자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으며, 65나노미터 이하의 미세공정을 생산하고 150억 위안(2조5천억원)이상 투자하는 반도체 업체에 대하여 2018년 3월부터 5년간 법인세를 면제하는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정부가 불공정무역을 통해 미국의 국익과 기업의 이익을 해치고 있다고 비난하고 중국으로부터 수입에 대한 관세 부과와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 거부 등 대응조치를 취하고 있다. 중국 황금오리의 추격을 따돌리고 미국 황금오리의 황금알을 지키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는 극단적인 산업보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에는 ‘Fast follower’가 살아남을 공간이 없다. 오직 ‘First mover’로서 새로운 세상을 여는 기업만이 ‘지존의 황금오리’로서 ‘황금알’을 낳을 뿐이다. 이 ‘First mover의 황금알’이 디지털 시대의 국력을 결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자국의 ‘황금오리’들이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산업지원정책을 추진하고, 미국 정부는 세계 무역질서를 뒤흔들면서까지 산업보호정책을 취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 세기의 경쟁에서 어떤 대응을 하고 있는가? 정부와 기업이 「산업혁신 플랫폼 2020」을 조직하고 향후 5년간 160조원 투자와 20만개 일자리 창출을 다짐했으니, 기대해도 좋은가? 중국의 제조업이 기술수준에서 한국의 제조업을 추월하는 것은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거의 끝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5년 간 축소지향 산업으로 전락한 한국 제조업이 더구나 ‘미운 오리’의 위치에서  세기적인 ‘디지털 전환’의 경쟁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런 이야기는 정부 당국자의 귀를 즐겁게 하는 아부(阿附)와 다를 바 없다.

 

  * 2018년4월2일 ‘ifs POST 뉴스인사이트’에 게재된 필자의 “제조업 위기를 주목하자”참조.

  * 대중국 수출 경쟁력에 대해서는 다음 자료 참조: 국제무역연구원,      “2017년 우리 수출의 호조요인 분석”, Trade Focus 2018년 15호.

 

문재인 정부 경제, 성공이 절실한 이유

 

  과연 ‘미운 오리’들이 「산업혁신 플랫폼 2020」으로 ‘황금알’을 낳을 수 있을까?  또는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중소 밴처가 주도하는 혁신성장’으로 ‘황금알’을 얻을 수 있을까? 

 

  「산업혁신 플랫폼 2020」을 만들어 160조원의 투자와 2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기로 했다는 정부 발표는 목동이 ‘미운 오리’에게 ‘황금알’을 낳으라고 닦달을 하니, 두려운 ‘미운 오리’로서는 더 혼나는 것이 두려워서라도 알을 낳을 수 있는 척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즉 목동은 마을 사람들에게 오리가 ‘황금알’을 낳을 것이라고 자랑하는 허구의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황금알’은 ‘황금오리’가 낳는 알이다. ‘미운 오리’도 알을 낳기는 하겠지만 황금알을 낳을 수는 없다. DNA가 다른 뿐만 아니라 사료를 비롯한 사육 환경이 ‘황금오리’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운 오리’가 ‘황금알’을 낳을 것이라는 기대는 헛된 꿈일 뿐이다. 혹여‘미운 오리’에게 ‘황금알’을 낳지 못하는 죄까지 문제 삼지 않을 가 우려된다. 

 

  문제는 꿈이 깨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대가(代價)는 실로 크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허망한 꿈을 더 커지기 전에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답이다. 고령화시대와 통일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지출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강력한 경제력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 경제력은 산업 경쟁력에서 나온다. 헛된 꿈의 가장 절박한 대가는 각국들이‘디지털 전환’을 경쟁하는 절체절명의 세기적 시간을 놓치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이미 보수정권 9년의 천금 같은 시간을 허비했다. 문재인 정부도 이 세기의 시간을 잃어버린다면, 그 대가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기업들이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고령화 시대와 통일 시대에 대비하는 국력을 확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의 성공은 더욱 절실하다.

 

  ‘황금알’을 얻기 위한 필요조건은 오리에게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 주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산업지원정책이나 미국 트럼프 정부의 법인세 감세와 기업보호정책은 감히 넘볼 수도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기업 활동의 불확실성이라도 제거해 주어 기업  스스로라도 적극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여 지속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생태계 정리가 기업 차원이 아니라 국민경제 차원에서 시급하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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