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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비리를 넘어 패거리 문화를 청산하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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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2월18일 17시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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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거리 자본주의는 계속 되고 있다

  채용 비리는 취업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은 물론 국민들을 분노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채용비리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 낯’의 일부로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각종 청탁 관행의 한 부분이며, 청탁 그 뒤에는 더 심각한 패거리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외국 언론들은 위기의 원인으로  “패거리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를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채용 비리는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가 패거리 자본주의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채용 비리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문화와 구조적 문제를 고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공공기관들은 엄격한 채용규정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무 처리는 내부의 감사는 물론 감사원 등 외부 기관의 감사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특별점검 결과 1,190개 대상기관 중 80%에 해당하는 946개 기관에서 채용 비리가 있다는 사실은 채용 청탁에 대한 국민들의 막연한 예상을 크게 뛰어 넘는 것이다. 

  하물며 제도적으로 외부의 감시를 받지 않는 민간 기업의 채용 비리는 물을 필요도 없어 보인다. 민간 기업들은 각종 법규에 묶여 있어 사업의 인허가는 물론 법규 위반 여부에 대하여 행정 당국의 묵시적  위협을 벗어나기 어려우며, 특히 대기업들은 국회 상임위원회에 불려 나갈 수도 있다. 따라서 민간 기업들은 사실 청탁에 더 약할 수밖에 없다.   

  주목해야 할 문제는 청탁의 범위가 채용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공기관의 기관장이나 임원에 채용 청탁을 할 수 있는 힘이라면, 그 힘은 채용만 아니라 승진과 전보 등 인사 전반에 미쳤을 것이라고 보더라도 결코 지나친 억측이 아닐 것이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청탁의 범위가 인사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각종 공공기관 비리의 상당 부분은 청탁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빗어진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웬만한 자리에 있는 사람치고 청탁을 해 본 적이 없거나 받아 본 적은 없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라고 할 만 하다. 청탁에 관한 한 “미 투(me too)”는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특히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소위 힘 있는 기관의 사람들일수록 청탁의 요구를 많이 받는 한편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청탁을 행사한다.  

  

청탁금지법이 작용하기 어려운 이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약칭: 청탁금지법) 제5조는 “누구든지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하여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 등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부정청탁을 해서는 아니 된다”고 되어 있으며, ‘다음 각 호’ 중 ‘3호’로 “채용·승진·전보 등 공직자등의 인사에 관하여 법령을 위반하여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로 규정하고 있다. 또 “제7조(부정청탁의 신고 및 처리)  ① 공직자등은 부정청탁을 받았을 때에는 부정청탁을 한 자에게 부정청탁임을 알리고 이를 거절하는 의사를 명확히 표시하여야 한다. ② 공직자등은 제1항에 따른 조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부정청탁을 다시 받을 경우에는 이를 소속기관장에게 서면(전자문서를 포함한다)으로 신고하여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청탁금지법에 “부정청탁을 해서는 아니 된다”고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청탁을 하는 사람이 있고, 부정청탁을 받은 경우 부정청탁임을 알리고 거절하는 의사표시를 명확히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데 있다. 굳이 따져 본다면 다음 네 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혈연·지연·학연: “우리가 남”이 아니기 때문에

  첫째, 혈연·지연·학연으로 인하여 소위 “우리가 남”이 아니기 때문에 청탁이라기보다는 ‘아는 사이에 상부상조’하는 인정(人情)으로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청탁을 거절하는 것도 인정이 통하기 때문에 섭섭하기는 해도 설득이 가능하다. 더구나 청탁금지법이 생기고 나서는 ‘안 되는 이유’를 납득시키기 훨씬 쉬워졌다. 따라서 청탁을 거절하는 부담도 크지 않다. 가장 근절되기 어려운 청탁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청탁금지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효과가 충분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구체적인 이해관계로 묶여 있는 ‘패거리’의 유력자가 청탁을 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정부 부처 현직 직원과 산하 공공기관 임직원의 관계 또는 특정 부처의 공무원 선후배로 연결된 관계로 소위 ‘모피아’(Mopia)를 비롯한 각종 ‘~ pia’를 들 수 있다. 대부분의 ‘~ pia’들은 현직에서 선배가 후배를 돌봐 주고, 선배가 퇴직하면 현직의 후배가 선배 뒤를 봐 주고, 그 후배가 퇴직하면 먼저 퇴직하여 자리 잡은 선배가 옷을 벗은 후배를 돌봐주는 “돌봄‘의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 경우는 앞서의 혈연·지연·학연으로 인한 청탁을 거절하는 경우와는 달리 청탁을 거절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부처의 현직 공무원과 산하 각종 협회 임원의 관계에서는  구체적인 이해관계로 엮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거절한다면, 이해관계에 곧 문제가 생길 수 있거나, 선후배 관계의 의리를 지키지 않은 ‘왕따’가 되어 패거리 집단의 보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각종 ‘따뜻한 밥’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쨰, 청탁이 아니라 압력인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청탁을 거절하는 것은 소위 법보다 더 무섭다는 ‘괘씸죄’를 힘 있는 사람에게 짓는 것이고, 그 결과로 ‘두고 보자’식의 보복 위협에 떨어야 할 수도  있다. 특히 국회의원과 같은 외부에서 산하 기관이나 기업에 대한 청탁을 중앙부처의 공무원을 통해 우회하는 경우는 ‘괘씸죄’가 중첩되기 때문에 더욱 거절하기 어렵고 정리가 복잡하다. 

  넷째,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권력 패거리의 청탁이다. 소위 ‘TK’와 ‘PK’는 물론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무슨 회’가 대표적인 권력 패거리라고 할 것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소위 “캠프”에 모이는 인사들은 선거에 명운을 함께 하는 동지로서 집권할 경우 인사와 정보를 독점하고 각종 집권의 역득을 나누는 패거리를 지어 막강한 세력을 과시해 왔다. 특히 청탁을 받은 기관장 자신도 청탁으로 그 자리를 얻은 경우, ‘누구 덕에 얻은 자리’인데 청탁금지법 운운하고 거절할 수가 없을 것이다. 유력 인사일수록 여하 간에 처리해야 할 청탁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은 패거리의 유력 인사로부터의 청탁을 거절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패거리 청산이 안 되면, 청탁 금지도 ‘도루묵’

  채용비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검찰은 반드시 채용비리의 ‘몸통’이라고 할 수 있는 ‘청탁자’를 찾아서 처벌해야 한다.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여러 가지 이유로 원하지 않는 ‘하수인’역할을 한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의 임직원만 처벌해서는 절대로 채용비리가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채용 청탁의 ‘몸통’을 찾아서 처벌하지 않는다면, 검찰은 채용비리 수사를 하는 척하는 것이며, 채용비리에 대한 대다수 국민들의 분노를 외면하는 것과 같다.  청탁의 ‘몸통’들을 처벌하여 힘 있는 ‘몸통’들이 청탁을 기피하게 해야 패거리의 청탁 문화가 근절될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선에 기여한 ‘뉴 라이트’와 ‘선진연대’출신들이 정권 실세로 자리 잡고 ‘보수 패거리’라고 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계기로 이명박 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한 집권층의 응집력이 강조되었으며, 그 결과로 보수 패거리에 힘이 집중되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박근혜 정권 초기에 소위 ‘관피아’의 공공기관 인사 독점이 공공기관의 효율성을 막는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되어 ‘관피아’가 공공기관 인사에서 크게 배제되었던 시기도 있었으나, 결국 오래 가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은 공무원 대신에 ‘문고리’와 그 패거리의 권력 전횡이 전대미문의 대통령 탄핵과 정권 붕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 왔다.

 

패거리 문화 근절이 촛불정신이다   

  이와 같이 ‘정권 패거리’가 어떤 위상과 역할을 하느냐는 그 정권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패거리 문화는 작게는 채용을 비롯한 각종 비리의 온상일 뿐만 아니라 패거리끼리만 인사와 정보와 예산을 독점함으로써 경쟁과 혁신을 차단하고 기득권의 ‘고인 물’로 경제생태계를 악화시킨다. 그 결과 패거리 문화는 사회의 공정성과 정의의 확립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어렵게 하는 그야말로 ‘적폐’다.  

  촛불의 대의를 내세워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정권 차원에서 채용 청탁을 비롯한 각종 패거리 문화의 적폐를 청산해야 마땅하다. 먼저 청와대의 인사 처리부터 패거리 낙하산이 아니라 적합하고 공정한 기준과 절차에 의해 인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국민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패거리 문화가 상존하는 한 채용 비리는 근절되지 않는다.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패거리’의 정권이 아니라 진정한 국민의 정부임을 인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패거리 문화를 청산함으로써 대한민국이 패거리 자본주의로부터 탈피하는 기틀을 세우는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 본고는 같은 주제로 필자가 한국일보 2월 14일자에 게재했던 “채용비리, 문제는 패거리 문화에 있다”를 토대로 대폭 수정·가필한 것임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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