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법관에 대한 비난과 표현의 자유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12월19일 17시35분

작성자

  • 나승철
  • 법률사무소 리만 대표변호사, 前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메타정보

  • 40

본문

 

얼마 전 신광렬 판사가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온라인 여론조작’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을 구속적부심을 통해 석방했다. 그러자 여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신광렬 판사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까지 신광렬 판사에 대한 비난의 대열에 합류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신광렬 판사를 해임시켜달라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반면에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이처럼 과도한 비난은 ‘여론살인’이라고 맞섰다. 판사의 판결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8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2009년 강기갑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국회사무총장실 책상에 올라가 펄쩍 펄쩍 뛰었던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강기갑 의원 ‘공중부양’ 사건이었다. 이 일로 강기갑의 의원은 기소가 되었으나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자 보수단체들이 무죄판결을 내린 이동연 판사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당시 한나라당은 이 판결을 정치판결이라며 맹비난을 했다. 이동연 판사는 신변위협을 느낀 나머지 휴가를 내야했고, 남부지검은 이동연 판사에 대해 신변보호 조치를 취해야 했다. 물론 당시 민주노동당은 이 판결을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정치적 논란이 쟁점인 판결에 대해 자신의 입맛에 맞으면 환호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비난을 하는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9월 22일 퇴임식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상충하는 가치관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갈수록 격화돼 거의 위험수준에 이르고 있고, 이로 인해 재판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면 도를 넘는 비난이 다반사로 일고 있다"면서 "이는 사법부가 당면한 큰 위기이자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의 기본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필자는 생각을 좀 달리한다. 우리나라 법관은 헌법에 의해 임기와 신분이 보장되고 있으므로, 법관에 대한 비난과 재판의 독립은 거의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이 아무리 정치판사를 파면하라고 요구해도, 죄도 짓지 않은 판사를 임기 중에 파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법관들은 오히려 여론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법관들은 자신의 재임용과 승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대법원장만을 신경 쓸 뿐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법관들은 국민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자신들의 지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원세훈 댓글 판결에서 원세훈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부분을 무죄로 선고한 이범균 부장판사는 진보언론에 의해 비난의 십자포화를 맞았으나, 무난히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가장 큰 것은 인터넷상의 비난 댓글이 아니라 오히려 법관의 인사권을 쥐고 흔드는 대법원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대법원에서는 고등부장 승진제도를 없애고,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제한하는 개혁안들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법관들은 국민들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고,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무력하다. 

 

필자는 미국에서는 판사를 선거로 선출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할 판사를 선거로 선출하면 정치적 중립을 어떻게 담보한다는 말인가? 필자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일본의 최고재판소 재판관에 대한 ‘국민심사제’였다. 일본은 최고재판소 재판관을 임명하면, 임명 후 첫 번째 열리는 전국선거에서 그 재판관의 가부 여부를 투표에 부친다고 한다. 이러한 제도들은 모두 사법권력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제도이다. 법관들도 어느 정도는 국민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관들은 국민들에 대해 아무런 정치적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나라 사법의 문제점인 것이다. 사법권력 역시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인데 국민에 대해 아무런 정치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문제다. 이제 우리나라 법관들도 조금은 국민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있다.

 

물론 법관에 대한 도를 넘은 비난이 명예훼손이나 폭력, 협박 등 범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법관에 대한 비난도 그것이 별도로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한,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것이다. 원래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법이다. 법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것도 그만큼 우리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법원이 판결을 내릴 때에는 어차피 어느 한쪽으로부터는 반드시 욕을 먹게 되어 있다. 정치적 사건에 대해 판결을 내릴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것이 재판의 본질이요 법관의 숙명인 듯하다.

 

40
  • 기사입력 2017년12월19일 17시35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