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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이맘 때 겨울은 혹독했다. 우리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외환위기가 터졌다. 국내시장에서 일어난 혼란은 정부의 개입에 의해 해결될 수 있지만, 외환위기는 국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과 무려감은 당시 사회전체를 압도하였다. 사회 초년병 딱지를 뗄 무렵, IMF 실사단에 제출할 서류뭉치를 들고 남산 어귀의 호텔로 내달리던 그 새벽의 공기는 단순한 차가움 이상이었다. 

 

IMF는 구제자금을 공급하면서 그 조건으로 고금리와 긴축재정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대출조건(conditionality)이 당시 한국경제에 부합한 처방이었는지는 지금도 논란이 있지만 당시 우리로서는 선택가능성이 없었다. 고금리 정책으로 기업들은 연쇄도산하거나 헐값에 매각되었으며 일자리가 사라졌다. 

2001년 8월, 불과 4년여 남짓 만에 우리는 IMF 역사상 가장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대출프로그램을 졸업한 나라로 기록을 남긴다. 차입금의 마지막 상환 분을 보내는 서류결재를 앞두고 당시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는 서명을 위해 국산만년필을 고집했다. 그간 온 나라가 겪었던 힘든 시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재를 지켜보는 내내 감격스러웠다. 

 

위기 이후 우리사회는 어떻게 변했을까 ? 외환위기가 남긴 것은 기회로서의 명(明)과 상처로서의 암(暗) 모두였다. 긍정적 영향으로 경제체질의 개선과 사회전반의 투명성 향상을 들 수 있다. 부채비율은 눈에 띄게 줄었고 주식시장을 통한 자본조달이 늘었다.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의사결정구조와 온정주의가 위기의 원인 중 하나였다는 반성은 투명성 제고를 제도개선의 주요과제로 삼게 하였다. 

 

법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회사법제의 발전은 가히 괄목상대했다. 국제회계기준에 부합한 회계제도가 도입되었으며, 감사위원회가 설치되었고 소수주주권의 행사요건이 완화되었으며,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되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도 큰 의미가 있다. 직장을 잃은 남편을 대신하여 많은 여성들이 취업에 나섰다. 당시는 단순일용직이 대부분이었지만, 노동시장에 지속적인 여성의 진출은 점차 양질의 전문영역으로 여성의 진출을 확대하였다. 정부차원의 노력도 큰 기여를 했다. 1996년 기준으로 여성이 참여하는 정부위원회의 비율은 30%에 불과했지만 10년 후 그 비율은 97%에 달하였으며, 경력단절 여성이 다시 노동시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입법도 이루어졌다.

 

상처도 깊었다. 대표적인 것이 양극화이다. 기업의 연쇄도산으로 수많은 실업자가 양산되었으며, 중산층은 무너졌고 계층은 고착화되었다. 양극화의 현상은 비단 경제적 능력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파생되는 교육, 문화, 환경 등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문제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외환위기 당시 외국인 투자자 중에는 정말 기업을 경영하려는 사람이 아닌 소위 ‘기업사냥꾼’도 상당했다. 이들은 기업을 매입한 후 구조조정하고 다시 매각하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로서 투자의 조건으로 자유로운 해고가 가능한 노동시장을 요구하였다. 당시로서는 선택의 가능성이 없었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비정규직 고용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더 큰 문제는 사회적 연대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자산가격의 하락을 기회로 삼아 큰돈을 벌었지만, 대부분은 실업의 공포를 느끼거나, 실직으로 인한 고통을 겪었다. 극한의 생존의 위협을 경험한 사람들은 방어본능이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과거와 달리 공동체적 가치보다 각자의 생존을 위한 준비에 집중하였다. 경제적 어려움은 돈이 최고라는 믿음을 공고히 하였고, 이해의 충돌에서는 밀리면 죽는다는 강박을 낳았다. 공정하지 않더라도 이기거나 얻을 수 있다면 큰 문제의식을 갖지 않기 시작했다.

 

2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양극화를 해소하고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며, 또 다른 하나는 다시 올 수 있는 위기에 대비하는 것이다. 

양극화 해소에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그 전제로 건전한 부의 축적은 존중하되, 사회적 약자의 아픔은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인식이 정립되어야 한다. 정치권도 양극단의 문제를 정치적 정체성의 기초로 이용하는 것을 자제할 필요가 있으며, 성숙한 시민들이 숙의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데 노력해야 한다. 공론화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해결의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중국이라는 추격자에 비해 우리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디지털혁명시대에 중국의 기세는 맹렬하고 일본은 정교해지고 있다. 이미 중국은 전자상거래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네트워크안전법을 제정하여 사이버취약점을 보완해 나가고 있다. 드론의 경우는 장거리 드론개발에 착수하고 드론 정류장을 계획하는 등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제4차산업혁명이라는 요란한 구호는 없지만 조용히 내실을 다지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새로운 기술혁명사회를 맞아 사회전반으로 실패를 권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베총리는 연설에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에 실패는 당연한 것이며, 실패를 축적하여 성공으로 나가자는 취지를 밝히기도 하였다. 

 

우리는 제4차산업혁명이라는 구호는 요란하게 내걸었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으며, 치열한 노력의 흔적도 없다. 대신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도 실패에 대한 혹독한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다. 각종 산업에서 국제경쟁력은 떨어지고 있으며, 가계부채는 임계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한 소수의 산업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가져온 착시현상은 이러한 안일함에 일조한다. 지금도 별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데 그다지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술의 급격한 변화는 언제든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으며, 한번 불어 닥친 위기는 소규모 개방경제국가인 우리에게는 치명적이라는 점을 늘 경계해야 한다. 

 

규제의 개선은 기술혁명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첫 번째 단추이다. 규제는 법의 옷을 입는다. 그렇다면 우리 법은 잘 만들어지고 잘 운영되고 있는가. 좋은 입법은 이해관계자들의 이익과 의지가 모두 한곳에 담아 녹여져 만들어진다. 구체적으로는 업계와 근로자 그리고 소비자의 이익과 의지이다. 그러나 우리의 입법이 이 모두를 잘 담아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법리형성도 마찬가지이다. 학술회의에서 자유로운 토론이 사라진지는 오래되었다. 젊은 학자들의 새로운 시각은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과거 특정국가의 국가후견주의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법리가 정작 종주국에서는 비판받고 변형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별다른 수정 없이 지금도 금과옥조처럼 인용되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은 불손이요, 문제의 제기는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과 국가를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민간의 창의를 촉진․지원하는 제대로 된 규제법리가 형성되기는 어렵다.  

 

외환위기가 그랬듯이 위기는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자발적 의지와 계획에 의하지 않은 타율적인 급격한 변화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을 야기한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경제구조로 인해 일상이 위기일 수 있는 우리에게 그래서 지난 20년의 경험은 소중하다. 위기는 평시에 생각해야 할 일이다. 위기에 이르러서야 위기를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바로 지금이 새롭게 다가올 수 있는 위기를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 이 글은 필자가 쓴 한국일보 11월 26일자 『아침을 열며』칼럼인 ‘위기 후에 무엇이 왔나 - 외환위기 20년’ 의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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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2-10 17:42:00 최종수정 2017-12-08 16: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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