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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토즈쿠리로 산업정체 타개 모색하는 일본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11월15일 17시00분

작성자

  • 이지평
  • 한국외국어대학교 특임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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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의 회복세와 함께 우리경제의 성장세도 단기 순환적으로 회복 국면을 맞이하고 있으나 장기 구조적 측면에서는 저성장 기조가 여전히 우려되고 있다. 한국의 산업별 성장률의 추이를 보면 제조업과 함께 농림어업, 서비스업의 성장률이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제조업의 평균성장률을 보면 1970~1990년의 14%에서 1990~2010년에는 7.8%, 2010~2016년에는 3.3%로 하락세를 보여 왔다(이지평, 모노즈쿠리 & 코토즈쿠리, 산업 정체 타개를 위한 일본의 선택, 2017.10, LG경제연구원). 

 

선진 각국도 제조업 등 2차산업의 성장이 피크에 도달한 시점에서 전반적으로 산업 및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는 패턴을 보여 왔다. 이 단계에서 선진국은 1인당 소득의 확대와 함께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비제조업의 비중이 높아지고 제조업은 신흥국의 도전을 받는 패턴을 보였다.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된 1980년대 이후에는 일본의 도전을 받았으며,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이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의 도전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중국 제조업의 도전을 받는 입장에 있다. 

 

제조업을 일으키고 선진경제 대열에 오른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산업의 정체 및 고도화의 한계 현상을 극복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로서는 선진국의 대처 사례 등을 다양하게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한 시점일 것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산업발전 패턴이나 사회적 특성에 유사성이 많기 때문에 참고가 될 수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의 장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제조를 의미하는 '모노즈쿠리'를 강조하는 전략을 꾸준히 강화해 왔다. 예를 들면 소재산업의 범용품은 공개적인 프로세스의 표준화된 제조공정을 설계하여 생산하는 모듈형 분야인 반면, 기능성 첨단 소재는 특수 약제나 촉매제를 활용하는 등 공정설계 과정에서 차별화된 노하우로 계속 개선하는 통합관리형 분야이다. 일본은 이러한 통합관리 분야에서의 강점을 더욱 강화하는 전략으로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의 소재 및 부품 산업의 경우 장기적으로 꾸준히 기술개발에 주력하면서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제품의 개발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만, 고부가가치 소재 및 부품 분야만으로 전체 산업의 활력을 제고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며, 일본 산업계는 신흥국의 도전, 서비스업의 비중확대, IT 혁명의 파급 효과 확대에 대응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일본 산업계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코토즈쿠리(체험 창조)'라는 용어로 신흥국 제품과 차별화할 수 있는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전략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코토즈쿠리 전략은 제조업체가 고객과 맺는 관계를 중시한다. 제조업체와 고객 사이의 관계는 제품을 판매한 직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는 사이에 계속되는 것이라는 점이 중시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비스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을 제조업의 서비스화, 코토즈쿠리라고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코토즈쿠리는 고객이 해당 상품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감성에 입각해서 고민하고 진심으로 요구되고 있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며, 기업은 고객 이상으로 깊게 생각함으로써 고객이 미처 알지 못하는 플러스알파의 감동이나 즐거움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되고 있다. 

 

예를 들면 에어컨 공조기기 시장에서 아시아 기업의 추격에도 불구하고 호조를 보이고 있는 다이킨의 경우 공조기기를 단순히 온도를 관리하는 하드웨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쾌적함을 추구하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동사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쾌적한 공간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초연구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미쓰비시전기의 경우도 AI와 센서로 고객의 행동패턴이나 실내외의 환경을 분석하면서 고객의 체감온도의 변화를 예측하고 기계가 미리 가동을 조절해 항상 쾌적한 실내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에어컨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코토즈쿠리 전략은 IoT, AI 등 IT혁명을 활용하면서 강화되고 있다. 예를 들면 미래 자동차 비즈니스에서는 라이드 셰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우버나 구글의 약진이 예상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도 도요타는 이들 플랫폼 기업을 생략하여 각 자동차 오너와 탑승 희망자가 직거래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각종 거래 관계의 신뢰성을 높이는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하면서 플랫폼 기업의 서비스에 의존하지 않아도 소비자가 셰어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자율주행이 일반화될 경우 현재의 자동차회사들은 자동차 판매가 아니라 자동차를 활용한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서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질 것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중소형 기업에서도 IT기술을 활용한 코토즈쿠리 전략이 강화되고 있다. 지난 11월 초에 개최된 도쿄 모터쇼에 출품한 세이렌이라는 섬유 기업은 고객이 모니터로 자동차 내부의 소재, 색상, 모양을 바꾸면서 1억 7,000만 개의 조합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전시해 호평을 받았다. 내장재를 그냥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자신만의 차량 인테리어 공간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서비스 기능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침구 제조기업인 니시카와산업은 금년 3월부터 ‘수면상담소’를 개설해 고객의 수면을 개선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고객에게 센서를 제공해 수면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수면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고객 맞춤형 수면 환경의 구축을 조언하고 침구를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수면의 질은 건강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소비자의 호응을 얻고 있다. 기계 산업에서는 센서를 통해 고객 공장에서 자사 제품의 가동 상황을 모니터링 하여 고장이 발생하기 전에 소모품을 교체해 고객 공장의 가동 중단을 억제하는 한편 보수 서비스 요원의 긴급 호출로 인한 불규칙적 업무를 줄여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기업들이 확대되고 있다.   

 

코토즈쿠리 전략은 인프라 산업에서도 모색되고 있다. 전자, 화학, 기계, 소재 등 각 산업분야에서 일본기업은 신흥국기업의 추격을 받고 있어서 높은 기술력으로 차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인프라 분야에서의 세밀한 서비스 연계전략을 강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프라 분야에서 일본기업은 고객의 요구에 철저하게 대응할 뿐만 아니라 고객의 고민을 미리 발견하면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본정부도 기업에 의한 패키지형 인프라 수출을 촉진하는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내각부에 '경제협력 인프라 전략회의'를 설치해, 관민일체형 전략, 자금지원 정책 수단의 개발(2013년) 등을 추진해 왔으며 아베 정권은 장비 등을 포함한 인프라 수주액을 2010년의 10조엔에서 2020년 30조엔으로 확대할 계획으로 있으며, 2015년 실적은 20조엔을 돌파했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는 일본 방식의 통관 IT 시스템, 교통 시스템, 전력시스템 등이 운영 노하우와 함께 각종 장비 및 부품이 패키지로 수출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일본은 각종 설비, 부품, 토목공사, EPC(인프라 시스템 설계, 조달, 건설), 인프라 IT시스템 등의 수출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인프라 운영 및 보수·관리 기술도 있으나 이들 전체를 패키지로 수출하는 것이 부가가치 제고에 기여하기 때문에 패키지화 역량 강화에 주력 중이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흥국의 추격과 IT혁명의 가속화로 인해 단순히 범용품을 제조하는 것만으로는 우리 제조업도 생존하기가 어려운 분야가 점점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제조업이 기술적 강점을 유지하고 있을 때 핵심 기술 강점의 강화와 함께 IT기술을 활용하면서 서비스를 포함한 제조업의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우리 제조업이 피크에 도달하고 일시적으로 수익도 축적되고 있으나 이 시점에서 자본을 낭비하지 않고 차세대 전략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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