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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변호인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10월22일 17시13분
  • 최종수정 2017년10월23일 17시01분

작성자

  • 나승철
  • 법률사무소 리만 대표변호사, 前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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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기간이 연장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 연장 여부는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순수하게 법리적인 면에서도 관심을 끌었던 쟁점이었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제92조에서 1심에서는 최장 6개월까지 구속을 할 수 있고, 2심과 3심에서는 각각 4개월씩 구속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1심에서 이 6개월의 기간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재판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자 검사는 처음 구속영장 청구 당시에는 빠져있던 SK, 롯데 관련 뇌물죄로 구속기간의 연장을 청구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구속영장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은 다른 범죄사실로 구속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에 대해 대법원은 과거 아래와 같이 판단을 한 적이 있다.

 

“구속의 효력은 원칙적으로 위 방식에 따라 작성된 구속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에만 미치는 것이므로, 구속기간이 만료될 무렵에 종전 구속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과 다른 범죄사실로 피고인을 구속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피고인에 대한 구속이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00. 11. 10. 자 2000모134 결정)

 

여기까지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SK, 롯데 관련 뇌물죄로 구속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위 대법원 판례는 판결문 전체를 읽어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과는 사실관계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위 대법원 판례에서 문제된 사건은 피고인의 구속기간 만료가 다가오자 구속영장에도 기재되지 않았고, 공소제기도 되지 않았던 무고죄로 다시 구속이 되어 구속기간이 연장된 경우이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SK, 롯데 관련 뇌물죄는 구속영장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미 공소제기가 되어 법원에서 심리 중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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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공소가 제기되어 법원이 심리 중인 경우에는 증거도 확보되어 있고, 6개월의 구속기간이 끝나갈 정도면 심리도 어느 정도 마쳐진 상태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SK, 롯데 관련 뇌물죄로 구속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는 얼마든지 법리적으로는 논쟁이 가능한 사안인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SK, 롯데 관련 뇌물죄는 검찰에서 이미 증거도 확보해 놓았고, 법원에서 이미 심리 중이었기 때문에 구속사유인 주거부정, 증거인멸 우려, 도주우려가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고, 아무리 SK, 롯데 관련 뇌물에 대해 심리가 이루어졌어도 그 동안의 재판태도에 비추어 볼 때 얼마든지 추가증거를 인멸할 수 있기 때문에 구속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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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원은 결국 SK, 롯데 관련 뇌물죄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계속 구속하기로 결론을 냈다. 이 같은 법원의 결정에 불만이 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변호인들의 할 일은 형사소송법 제402조에 의해 항고를 하는 것이 맞다. 자신들의 주장이 법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하면 항고를 통해 다시 한 번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변호인들이 택한 길은 놀랍게도 항고를 포기하고 변호인을 사임하는 것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살기 가득 찬 이 법정에 피고인을 홀로 두고 떠난다.”고 했지만, 법정이 살기로 가득 차 있다고 하면서도 변호사가 피고인을 보호하거나 변호하지 않고 그런 법정에 피고인을 홀로 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다. 이는 한바탕 ‘정치 쇼’일 뿐 변호인의 변론수행의 관점에서 볼 때는 자해행위에 불과하다. 대한변호사협회도 변호인들의 사퇴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오히려 항고를 하게 되면 ‘살기로 가득 찬 법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판부로부터 구속 여부의 판단을 받게 되는데, 변호인들은 왜 가장 합리적인 불복수단을 포기한 채 ‘정치 쇼’에 의지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린 재판부에 대해 시원스레 불만을 터뜨렸으니 속은 시원할지 모르겠으나, 변호사로서는 최악의 변론이었다. 정치적인 사건을 변론하다보면 때로 과장된 행위가 필요할 수 있으나 그것도 일단 가능한 법적인 조치는 모두 시도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탄핵 재판 때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측 대리인들이 법리에 입각한 주장보다는 막말에 가까운 정치적 주장에만 의존했던 것이 오히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독이 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이번 재판의 결과를 알 수는 없지만,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중형이 선고된다면, 변호인들은 과연 자신들의 변론이 의뢰인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진지하게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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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10월22일 17시13분
  • 최종수정 2017년10월23일 17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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