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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친화적 부실기업 구조조정, 마중물이 필요하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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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9월04일 16시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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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 구조조정 미뤄서는 안 된다


지난 몇 주간 경제 뉴스의 중심은 부동산 관련 정책이었다. 부동산 안정 대책은 사람중심의 경제, 일반 대중이 피부로 느끼는 삶의 질이 좋아지는 경제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당장 나설 수 밖에 없는 중요한 이슈일 것이다. 한편, 지속적인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최대의 관심사안이다. 그러다 보니 작년 만 해도 우리 경제의 2대 화약고라고 까지 불리던 가계부채 문제나 부실기업 구조조정 이슈에 관한 관심은 조금 뒷전으로 물러나 있는 인상이다.

 

하지만, 가계부채는 1,400조에 달해 그 심각성은 재론할 여지가 없고, 부실기업 이슈는 사실상 그대로 상존하고 있다. 금융시장을 포함한 경제 전체에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는 한계기업(3년 연속 영업이익이 이자비용 이하인 기업) 비중은 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14.7%까지 늘어나 있고, 그 차입금 규모 또한 240조에 달한다. 2015년말 기준 전체 한계기업 중 상장기업은 232개, 매출은 71조4000억원으로 집계되었다. 이런 한계기업 종사자 또한 9만6천여명에 이른다. 부실기업 구조 조정을 미룰 수 없는 이유이다. 

 

최근의 기업 부실은 글로벌 공급과잉, 해당 산업과 기업의 자체 경쟁력 소실이 주요 원인이라서 과거 유동성만 공급해 주면 정상화가 가능했던 상황에 비해 보면 그 대처가 매우 까다롭다. 어렵더라도 경쟁력 유무 판단에 따라 때로는 단호하게 퇴출도 시켜야 하고, 사업의 체질 개선을 위한 경영효율성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적절한 규모의 자금을 지원해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시장친화적 구조조정 시장을 만들 자본과 인재가 필요하다

과거 부실 기업의 회생을 국책은행이 주도하여 왔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냈다. 회생과 퇴출의 결정, 자금의 지원, 경영진의 선임과 보상 등 중요한 결정 들을 외부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하기에는 유관 정부기관들의 입장과 정무적 고려사항 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정책금융기관의 태생적 한계이다. 그리고 채권 금융기관들 입장에서 이자 연체나 부도처리 전에 자발적으로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선다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이를 독려하는 적극적인 기업 회생 관련 제도의 정비와 함께 민간의 자본과 회생 전문가들의 육성이 절실하다.

 

워크아웃과 회생절차에 들어간 부실채권의 경우, 은행들이 출자하여 설립한 연합자산운용(UAMCO)이 상당한 성과를 내었다. 출자해준 금융권의 부실자산 부담을 빠른 시간에 덜어 냈을 뿐 아니라 전문가 그룹의 효율적인 자산 관리와 처분으로 출자기관들은 일부 환입효과까지 향유 할 수 있었다. 나아가 UAMCO는 ‘기업회생PEF’를 조성해 기업, 사모펀드, 채권금융기관 등 시장 참가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재무적인 원인뿐 아니라 업황 침체 등으로 인한 영업적 원인의 부실 기업 투자까지 그 활동의 폭을 넓혀가며 기업구조조정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해 나가고 있다.

 

이런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UAMCO가 모험자본 공급자로서 또 민간 자본 유치의 마중물로서의 역할을 담당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UAMCO 한 곳이 우리나라 시장 전체의 기업구조조정을 감당 한다는 것은 우리 경제 규모나 부실 또는 부실 징후 기업의 수를 고려 할 때 충분치 않기에 다양한 시장의 참가자들을 유인 할 필요가 있다.  

 

부실기업 회생을 위한 일본의 관민(官民)펀드

일본 또한 경기의 장기 침체를 겪는 동안 상당 수의 부실기업이 생겨 났다. 저금리에 기대어 일본 기업들 역시 수익성을 잃었지만 정리가 되고 있지 않은 소위 ‘좀비’ 기업들이 산업별로 증가했다. 이들을 정리 하고자 해도 보수적인 일본 금융기관들은 나서지 않고 있어서 시장에 이를 감당할 자본도 구조조정 전문가도 여의치 않았다. 일본 정부는 산업재생기구법을 입안하여 이를 정리할 자본을 형성시키고 구조조정 전문가들을 양성키로 결정했다. 먼저 예금보험공사와 농림중앙금고가 출자하여 모험자본 유치를 위한 마중물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 자금을 투입하고 관리하는 임직원들은 철저하게 외부로부터 독립적인 민간전문가들로 구성하였다. 

 

각 산업 분야 별로 관민(官民)펀드를 조성하니 이를 운용해보겠다는 시장의 민간 전문가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시장에 이런 자본을 공급하면 부족한 산업재생 관련 인재 육성에도 기여 할 것이라 보았다. 재생사업 전문가를 외부위탁을 통해 육성하기도 하고, 관련 금융기관들은 산업재생기구와 함께 사업재생을 지원하면서 비교적 단기간에 사업재생 노하우(know-how)를 축적해 나갔다.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마중물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는 모험자본이 부족한 나라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아직 시장의 역사가 짧고 자본의 공급자도 제한적이기에 그렇다. 모험자본 공급의 중간 역할을 하는 PEF나 벤처캐피털 등의 자금은 주로 연금, 공제회 등의 기관투자자로부터 온다. 이런 연기금들은 그 속성상 보수적인 운용을 통해 안정적 수익을 내야 하니 모험자본 투자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아직 모험자본을 운용해 장기적으로 안정적 수익을 내었다고 검증된 운용자 또한 부족한 상황에서 억지로 모험자본 투자에 나서라는 것은 연기금 수익자의 이해에 반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도 모험자본 투자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부 운용자금을 비교적 검증된 블라인드 펀드 운용사에 배분하여 시장 초과 이익을 추구하기도 하고, 이 자금을 시드머니(seed money)로 해서 가져오는 좀 더 안정적인 중순위나 선순위 투자 기회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이런 투자금이 기업과 PEF가 M&A에 나설 때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다. 

 

구조조정이나 기업회생 관련 투자는 일반적인 PE투자 보다 위험이 더 수반되는 투자로 인식되고 있기에 아직은 연기금들이 후순위 모험자본의 공급자가 되어 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어떤 형태이건 마중물 성격의 모험자본을 공급할 구조를 만들어 제공하면, 시장의 관련 전문가 들이 이합집산을 하던 기존 PEF 운용사들이 이런 전문가들을 채용해서건 이 자금을 운용해 보겠다고 나설 것이다. 그리고 민간자본들도 이런 모험자본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해서 리스크가 경감된 선순위 투자 구조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4년 말 간접투자 자산운용법을 만들고 사모펀드를 처음 도입할 당시 자본도, 시장 전문가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65조의 자금과 200여개의 운용법인들이 들어와 있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일부 선도 금융기관과 국민연금 등의 마중물 투자가 없었다면 불가능 한 일이었다.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 시장친화적이고 상시적인 기업구조조정 시장은 꼭 필요하다. 이 시장을 만들기 위한 마중물 성격의 모험자본 조성, 지금은 정부와 시장 실패의 손실을 어차피 부담해야 하는 국책 은행들이 나서줘야 할 것 같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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