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과세·감면 축소, 어떻게 봐야 하나?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8월24일 17시44분

작성자

  • 박기백
  •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

메타정보

  • 29

본문

 

 

  2017년도 세제개편안의 맨 처음 항목은 ‘고용증대 세제’를 신설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투자가 있어야만 고용에 대한 지원을 하였지만 앞으로는 투자가 없어도 고용을 늘리면 정부가 기업이 내야할 세금을 깍아 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부가 세금을 줄여주는 것이 바로 비과세·감면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정부가 세금을 포기하면서까지 조세감면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함이다. 과거에는 중화학공업의 육성, 중소기업 지원 등이 주요한 정부의 정책목표이었으나 2017년도 세제개편안에서는 일자리 창출이 주요한 정책목표로 제시되고 있다. 출산율 제고, 지역간 균형발전, R&D 투자 확대 등도 여전히 정부의 주요한 정책목표이다. 다시 말하면, 조세 수입이 감소하는 규모보다 세금을 낮추어 달성되는 정책목표의 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비과세·감면을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명목세율을 설정하여 먼저 받을 수 있는 세금의 한도를 설정한 다음에 국가의 정책목표 달성에 필요한 분야에 대해 비과세·감면을 한다. 명목세율이 먼저이고, 다음에 비과세·감면을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인세의 명목세율을 높이기에 앞서서 법인세 실효세율을 높이자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 법인세 실효세율을 높이자는 주장은 비과세·감면을 줄이자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비과세·감면을 먼저 조정하고, 다음에 명목세율을 결정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방식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업소득이 1조 원인 기업이 세금을 2천억 원을 내는 반면 기업소득이 10억 원인 기업이 2억 원의 세금을 부담한다면 세금을 소득으로 나누어 계산하는 실효세율은 두 기업 모두 20%가 된다. 만약 기업소득이 1조원인 기업이 R&D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많이 하여 추가적으로 5백억 원의 세금 감면이 있다면 해당 기업의 실효세율은 15%가 된다. 

 

 이러한 경우에 기업소득이 더 많은 기업의 실효세율이 상대적으로 낮으니 법인세 제도에 결함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효세율의 조정은 결과적으로 R&D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지 말라는 의미가 된다. 진정으로 R&D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실효세율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된다. 중복해서 말하는 것이지만, 명목세율에 대한 논의와 비과세·감면에 대한 논의는 분리되어야 한다.

 

  비과세·감면의 축소를 세입 증대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도 자제하여야 한다.  새 정부의 국정자문기획위원회는 국정과제를 이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재원의 규모를 총 178조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연간으로 하면 35.5조원에 해당한다. 재원조달계획을 보면 세입 확충으로 82.6조원, 세출 절감으로 95.4조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비과세·감면을 정비하여 조달하겠다는 규모는 11.4조원이다. 

 

  위와 같은 재원조달계획은 박근혜 정부의 공약가계부와 유사하다. 공약가계부에서도 지출을 절감하여 84.1조원을 마련하고, 세입을 확충하여 50.7조원을 조달할 계획이었다. 비과세·감면을 정비하여 조달하는 재원의 규모는 무려 18.0조원에 달했다. 이를 위하여 비과세·감면의 일몰 시점이 도래하면 비과세․감면을 원칙대로 종료하고, 조세감면을 상시적으로 평가한다는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렇지만 조세감면액의 규모는 2011년 29.6조원에서 2013년 33.8조원, 2015년 35.9조원, 2016년에는 36.5조원에 이르렀다. 다시 말하면, 조세감면을 축소한다는 계획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았다. 2017년 세제개편안에서도 일몰이 도래한 50개 항목 중 일몰이 종료된 항목은 5개에 불과하고, 세수 효과가 미미한 것뿐이다. 고용증대세제 신설, 근로․자녀장려금 지급 확대 등으로 비과세·감면은 오히려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확대된 항목이 일자리 창출 등 국정과제와 연관은 있다.  

 

  이렇듯 비과세·감면의 축소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과세·감면을 정비하여 재원을 조달한다는 내용은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조달계획의 단골손님이다. 물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겠다는 것이나 탈루세금을 축소하겠다는 것도 빠지지 않는 내용이긴 하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것이 당연하고, 세금 탈루를 억제하자는 주장에 논리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비과세·감면은 불필요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목표 달성에 필수적인 수단이다. 오히려 정권에 따라 특정 비과세·감면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오락가락하는 것이 더 문제다. 녹색성장, 창조경제, 일자리 창출이 대표적인 정부의 모토가 되고 관련성이 있으면 새로운 조세감면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폐기되는 조세감면의 운영 방식이 오히려 문제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불합리한 비과세·감면을 줄이고, 국가의 바람직한 정책목표에 부합하는 비과세·감면은 늘리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더 나아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등 전문연구기관이 보통 3년을 주기로 조세감면을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평가가 나쁘면 폐지하고, 좋으면 유지하면 된다. 새롭게 도입되는 조세감면도 유사한 절차를 거치고 있다. 따라서 무조건 비과세·감면을 줄이기보다는 전문가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좋다. 유죄 여부를 일반인이 왈가왈부하기 보다는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부와 정치권이 전문가들의 평가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ifs POST>  

 

29
  • 기사입력 2017년08월24일 17시44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