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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의 한국 대통령 전 상서(前 上書) <29> 개혁은 끝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하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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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7월20일 17시36분

작성자

  • 김정수
  • 무역협회 경제통상자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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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버블 붕괴 후 ‘잃어버린 25년’ 중에 딱 한번 일본경제가 빛을 발한 때가 있었다. 거센 당내 저항을 극복하고 5년 5개월의 총체적 구조개혁으로 일본을 다시 일어서게 한 고이즈미 내각(2001~2006년) 때가 바로 그 때였다.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개혁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의 장래를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대통령에게, 고이즈미가 편지로 전하는 충언을 한번 들어보자.

 

<편지 29> 개혁은 끝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하라

 

나의 개혁 추진에 후회가 없지는 않다. 그 무엇보다, 내가 퇴진하기 전에 주요 개혁을 최종 단계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 제일 아쉽다. 시간적으로 내 내각이 모든 개혁과제를 마지막 단계까지 마무리를 하고 나올 수는 없었다는 핑계를 댈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국정을 담당했던 자로서 할 수 없는,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마무리를 제대로 해두지 않으면, 우정민영화처럼 법안을 국회통과까지 시켜놓아도 (정부지분 완전매각 하는 시기 등) 중요한 핵심사안까지 ‘개혁의 대못’을 박아놓지 않으면, 개혁저항세력이나 신 정권(민주당)에 의해 언제든 개혁 추진이 중지 되거나 되물림 당할 수 있다.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로 인해 바로 다음 아베 자민당 내각서부터 내 개혁이 왜곡되고 심하게는 되돌려지는 걸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무척 가슴 아픈 일이었다.

 

내가 마무리를 제대로 해두었어야 했던 것은 나를 잇는 총리의 선택이었다. 만일 개혁에의 심지가 곧은 인물이 총리가 되었다면, 아베 내각에서 있었듯 우정민영화 반대하여 탈당한 의원을 자민당으로 복당(復黨) 시키는 일, 파벌 영수들로 내각을 꾸미는 일, 망언과 부패를 저지르는 인물을 내각에 들이는 일, 말로만 ‘고이즈미 (경제)개혁을 계승한다’고 하고 정작 거의 대부분의 정책 자원을 평화헌법 개헌을 통한 일본의 보수화에 집중하는 일, 국민의 내각지지율 하락, 그리고 그 무엇보다 관저주도 개혁체제의 와해 등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후쿠다 내각에서처럼 고이즈미 내각과의 차별화를 명분으로 고이즈미 개혁으로부터 정책 노선을 변경하거나, 아소 내각에서처럼 드러내고 고이즈미 개혁 노선을 부정하며 ‘큰 정부’ 정책 노선으로 달려가는 일은 시작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잇는 총리 후보감에 대해 ‘고이즈미 개혁 계승’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하지 않았던 것은 중대 실책이었다. 

정치가의 일생처럼, 정책이나 내각도 뒷모습이 깔끔하고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일체감을 위해 최소한 배려심을 발휘하라 

 

내가 반성하는 것 중에 하나는, 너무 개혁 추진에 집착한 나머지 개혁으로 인한 고통과 피해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이라는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또 일본의 한 시대를 책임지는 정권으로서, 최소한의 배려심을 발휘했어야 했다. 내가 정부 예산 중 일반경비는 절대액을 삭감하면서도 사회보장비는 매해 늘렸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사회적 어려움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점이 지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적 격차 문제, 그것에 의한 개혁 피로증, 청년 실업문제 등에 더 많은 관심과 정책적 배려를 했어야 했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 크고 역동적인 시장’ 만들기, 총체적 구조개혁 등에 몰두하느라, 힘든 곳, 어두운 곳, 경제사회적 취약계층에 눈길을 돌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게 나의 구차한 변명이다.

 

개혁의 피로증, 격차 문제 등은 2007년 아베 내각으로부터 시작해 2009년 아소 내각을 마지막으로 자민당이 정권을 내놓게 된 중요한 요인이 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런 경제사회적 문제 때문에 자민당이 물러나게 되어서 아쉽다기 보다는, 격차 문제와 청년 실업문제 등에 미지근한 대응으로 나라 경제의 향방이 ‘고이즈미 개혁기조’로부터 멀어지고 종국에는 구조개혁이 더 이상 중요한 국가과제로 인식되지 않게 된 것이 안타깝다. 

 

나는 지금도 (야당이나 개혁 저항세력이 주장하듯) 나의 개혁이 경제 및 사회적 격차나 청년 실업 문제를 야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제반 문제의 해결과 나의 개혁이 서로 상충하는 정책과제라고도 믿고 있지 않다. 나는 오히려 나의 총체적 구조개혁의 추진이 격차와 실업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20년 넘게 저성장, 절대인구의 감소, 글로벌 경쟁 등에 의해 계층간, 부문간, 기업규모간 격차는 확대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근본책은 민간경제의 활성화여야 한다. 따라서 민간경제의 활성화가 제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정부가 지속 가능한 사회보장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내각에 이은 세 ‘포스트 고이즈미’ 자민당 내각은 격차 논쟁의 프레임에 포획되어 ‘격차 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고이즈미 개혁을 대폭 수정하던가 아니면 적어도 속도를 늦춰야 된다’는 분위기에 편승하고 말았다. 내가 경제적 격차 해소나 사회안전망 보강에 좀더 정책적 배려를 했더라면 세 자민당 내각이 격차에 초점이 맞춰진 사회적 논쟁에 휘말려 그토록 허망하게 무너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쉽게 ‘고이즈미 개혁’의 모멘텀도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지금까지도 후회스러운 점이다. < 제4부 끝 >

 

 <순서>

왜 지금 개혁의 리더십인가?

제 1부 제대로 된 잠룡이라면

제 2부 대권을 잡고 나면  개혁의 무대는 이렇게 꾸며라

제 3부 모두를 개혁에 동참시켜라

제 4부 논란이 많은 개혁과제를 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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