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첫 과제이자 시험대... 안보와 교육에 대한 불안감 해소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7월12일 17시01분

작성자

메타정보

  • 43

본문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2개월이 됐다. 출범 초의 환호와 덕담을 뒤로 하고, 청와대도 국민도, 이제 ‘현실’과 마주해야 하는 시점이다. 

지난달 칼럼에서 20여 일 지난 문재인 정부가 소통의 ‘형식’은 갖추었으니, 이제 ‘내용’을 겸손한 자세로 채워가야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 전에 먼저 해결해야할 과제가 눈에 보인다. 안보와 교육에 대한 중도와 보수 유권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일이 그것이다. 휘발성이 강한 이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다수의 환호가 불신과 불만으로 급변하는 것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항상 그래왔다.

 

잠시 문재인 청와대의 ‘소통의 형식’을 언급하고 싶다. 출범 2개월째이지만 형식의 신선함은 여전히 합격점이다. 한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청와대가 공개한 ‘워싱턴의 B급 사진‘만 봐도 그렇다. 대중의 감성에 어필할 줄 아는 프로의 냄새가 물씬 난다. 딱딱한 공식 행사 사진, 즉 ’A급 사진‘만 볼 수 있었던 지난 정부와는 달리, 새 정부는 소탈하고 친근해 보이는 대통령의 사진을 국민들에게 공개했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의 ’사진 정치‘를 보는 듯했다. 현재의 한국 보수 우파 정치인들은 시도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이는, 세련된 ’소통의 형식‘이다. 이래서야 보수 우파가 재집권은커녕, 문재인 정부를 제대로 견제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다.

 

하지만 ’소통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우선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몇몇 후보자들의 거액의 전관예우, 음주운전 등 ‘현실’이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지지층의 옹호는 여전하지만, “전 정권과 뭐가 다른가?”라는 말이 국민들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새 정부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경제라는 복잡하고 민감한 분야의 내용을 채워가야 한다. 어느 정권도 쉽지 않은 일인데, 요즘 ‘과도한 자신감’과 ‘편 가르기’ 시도가 언뜻언뜻 보인다. 소득, 일자리, 집값, 세금 같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달린 경제 분야에서 내용을 현명하게 채워가지 못하면 민심은 언제든 요동칠 수 있다. 

 

이런 인사나 경제 문제도 중요하지만, 사실 문재인 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분야는 지금으로서는 따로 있어 보인다. 안보와 교육 문제다. 생존과 자녀의 미래에 대해 중도 유권자들이 느끼고 있는 ‘불안감’에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할 것인가의 문제다. 오늘 얘기하고 싶은 게 이것이다. 

보수건 진보건, 정권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중도층의 민심이다. 그들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정권에 실망해 문재인 후보에 투표했고, 지금은 안보(=생존)와 교육(=자녀)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맞닥뜨린 첫 번째 과제이자 시험대가 될 것이다.

 

교육 문제부터 보자. 국민들에게 교육 문제는 ‘내 아이’의 문제이다. 한국사회에서 자녀 문제와 연관이 되면 휘발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보수를 궤멸시켰던 최순실 사태도 “돈도 실력... 부모를 원망해라”라는 정유라의 SNS 글이 국민들의 마음에 분노의 불을 붙인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었다. 2개월 전의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지지율에서 문재인 후보에 역전하는데 성공하는 듯 했다가 다시 급락세로 돌아선 것도 이 ‘내 아이’ 문제에 대한 불안감이 계기가 됐다. 병설-단설 유치원 논란과 5-5-2 학제개편 공약이 촉발한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안 후보의 지지율 급락으로 이어졌다. “혹시 내 아이 유치원 가기가 더 힘들어지는 건 아닌가?”, “학제를 갑자기 바꾼다는데, 제도 개편의 과도기에서 특정 학년에 학생 수가 겹치면 내 아이가 불이익을 받게 되는 건 아닌가?” 같은 ‘불안감’이 안철수 후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지금 ‘김상곤표 교육부’는 ‘수능 절대평가’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한 때는 ‘내신 절대평가’ 계획까지 나왔었다. 그래서 요즘 초 중학생 학부모들 중에는 “대학 신입생을 도대체 무엇으로 뽑겠다는 거냐? 뭘 준비해야 하는 거냐?”며 ‘불안’해하는 이들이 많다. 

“수시에 필요한 스펙을 만들기 위해 고액 컨설팅 학원에 등록할 수 있는 부모만 아이를 좋은 대학을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인가”, “학생부에 유리한 내용을 넣기 위한 치맛바람만 조장하는 것 아닌가”, “서민을 위한다더니 대학입시도 이제 ‘음서제’로 만들어 기득권층에 유리하게 바꾸는 것 아닌가”라는 ‘불신’의 목소리도 보인다.

여론은 ‘그나마 공정한’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쪽이 많은데, 정반대 방향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 중에도 교육 정책만큼은 정시확대를 공약한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고 싶다는 국민들이 많았던 것이 현실이었다. 

또 김상곤 장관은 특목고, 자사고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청문회 과정에서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자녀를 특목고, 자사고, 8학군에서 교육을 시켰고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로스쿨, 미국 유학을 보낸 사실이 밝혀졌다. 인터넷에는 “자기들은 자식들 좋은 교육 다 시켰으니, 이제 없애겠다는 거냐. 국민들은 개천에서 용꿈 꾸지 말고, 피라미나 붕어로 그냥 살아가라는 얘기냐”는 냉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교육보다 더 큰 ‘불안감’을 줄 수 있는 분야가 있다. 안보 문제다. 안보는 인간의 근원적 불안의 원천인 ‘생존’에 관한 문제이다. 그래서 파급력이 더 커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기 전,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미국에 가서 “사드 문제로 동맹이 흔들리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라고 말했다. 그 장면은 TV 화면을 타고 생생하게 전해졌고, 지난 60여 년 동안 우리의 안보를 지탱해온 ‘한미 동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국민들 사이에 생겼다. 국내외적으로 파장이 커지자 청와대가 수습에 나섰고,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문 대통령이 미 의회 지도자들과 만나 "기존 결정을 바꾸려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며 진화에 성공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걱정했던 ‘파열음’이 나오지 않자 국민들은 불안감을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배치 시기에 대해 명확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여전히 빠른 배치, 최소한 연내 배치를 원하고 있는데, 이는 환경영향 평가에 최소한 1년, 늦어지면 2년이 걸릴 것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지난 발언과는 거리가 있다. 

게다가 한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ICBM 발사에 성공하면서, 북한의 핵탄두는 미국의 본토를 직접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요 며칠 CNN 방송을 보니 하루 종일 북한의 ICBM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었다. 미국인들이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북한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사드의 배치 시기를 둘러싸고 다시 한미 간에 이견이 발생할 경우, 미국측은 문정인 특보의 발언을 떠올리며 “한국방어를 위해 주둔하고 있는 미군 기지를 보호하겠다는 방어무기도 배치하지 못하게 하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상업시설을 건설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 미사일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우리 청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건데, 1~2년을 기다리라는 건 우리가 필요 없다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동맹은 우정과 비슷하다. 감정적 서운함이 우정을 망치는 경우가 제법 된다. 친구에게 필요한 도움만 받으려 하고 그가 원하는 것은 손해를 걱정하며 주지 않으려 주저하기만 한다면, 그런 우정은 오래 가지 못한다. 우정도, 동맹도, 양쪽 모두 정성으로 가꿔가지 않으면 말라 죽기 마련이다.

북한의 핵무기가 ICBM과 결합해 우리는 물론 미국에게도 직접적인 위협이 된 민감한 상황에서 한미동맹이 사드 등의 문제로 심각하게 흔들린다면, 국민들의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것이고, 이는 우리 정치권 전체를 뒤흔드는 ‘뇌관’이 될 것이다. 새 정부를 위해서도, 중도와 보수 유권자들을 포함한 국민 전체를 위해서도 반드시 피해야하는 모습이다.

 

중요하고 민감한 시기이다. 국민들이 자신의 생존(=안보)과 자녀의 미래(=교육)에 대해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문 대통령이 상황을 현명하게 관리해 가기를 기대한다. 문 대통령의 첫 번째 과제이자 시험대이다.

안보와 교육은 ‘실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다. 안보와 교육 분야에서는 국민을 ‘안심’시켜주고 나서, 경제나 사회정책 등 다른 ‘선택의 문제들’을 놓고 보수와 멋진 경쟁을 벌이면 좋겠다. 그게 미국식, 선진국식 소통의 ‘형식’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대통령이 가야 할 ‘선진 정치의 내용’일 것이다. (끝)

 

43
  • 기사입력 2017년07월12일 17시01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