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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청구서 유감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6월28일 16시22분

작성자

  • 황희만
  •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 前 MBC 부사장,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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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王侯將相(왕후장상)이 何爲種(하위종)이오.”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단 말인가.”

고려 무신정권시절 일어난 만적(萬積)의 난(亂) 캐치프레이즈(catch phrase)다.

누구라도 王도 되고 諸侯도 되고 將軍과 宰相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시대는 한때 정중부(鄭仲夫)의 난(亂), 최충헌(崔忠獻)의 난(亂) 등 무신(武臣)들이 난을 일으켜 권력을 잡고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린 무신정권을 만들곤 했다.

이렇다 보니 드디어 노비(奴婢)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기득권자들만 정권을 잡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느냐며 노비(奴婢)인 만적(萬積)을 중심으로 천민(賤民)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신분해방을 외치는 일종의 계급투쟁이었다.

 

만적의 난은 비록 실패했지만 우리역사에서 민란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기득권 세력들이 자기들끼리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자기들 배만 채우면 억압당하는 민초들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분연히 일어서곤 했다. 

 

지금 우리는 시민(市民)들이 일어선 촛불시위로 폐쇄적인 박근혜정권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로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켰다. 막힘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대통령 스스로도 국민 앞에 스스럼없이 나오고 국민들도 거리감을 느끼지 않고 의견을 표출하고 주장을 내세운다. 더구나 지금은 SNS의 발달로 소통이 자유로워지고 심지어 1인 미디어의 활성화로 누구나 가슴에 담은 말을 다 밝힌다.

 

대통령도 이제는 SNS를 통해 생각을 밝히며 국민과 소통하고 있고 국민들도 자신들의 주장과 요구를 당당히 밝히고 있다.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 국민들이 참여하는 기회가 만들어지는 환경이 조성됐다. 논란이 되고 있는 고리 원자력 5,6기 건설도 일단 중단하고 국민들과의 공론과정을 거친 뒤에 공사 재개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대의 민주주의를 넘어 이제는 직접민주주의 시대를 가히 방불케 한다. 

어떤 시민들은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어느 후보자에 대해 시비 걸지 말고 좋게 보라며 응원인지 협박인지 모를 스티커를  의원회관에 까지 붙이며 국회청문회에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가 하면 청문회 과정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후보자의 좋지 못한 경력을 밝혀내면 해당의원에게 말할 권리가 있다며 저질의 문자폭탄을 날리기도 한다. 

 

이런 사회분위기를 타고 이익집단은 더더욱 자신들의 집단 이익을 위해 더욱 활발히 말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정권에 대해 이런 저런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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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時給)을 1만원으로 올려라.” “외국인 노동자를 사용하지 마라.” “자사고(自私高)를 폐지하자 마라.” “ 비정규직을 없애라.” “노인들 일자리도 만들어라.” 다양한 집단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집단 시위도 불사하고 있다. 

여기에다 노동조합은 또 여러 요구 조건을 내걸고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왜 이렇게 요구가 많은 것인가.

 

돌이켜 보면 우리는 한 번 잘살아 보자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계획을 기점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척박했고 그래서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북한에 가로막혀 쉽게 나갈 수 있는 대륙으로는 길이 막혔다. 북한 때문에 우리역사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중국대륙과 이어질 수 없었던 것이 어찌 보면 역설적으로 기회가 되었다. 

 

이제는 바다건너 저 멀리 미국과 유럽으로 나갔다. 사막도 마다하지 않고 중동으로 일하러  갔다. 수출만이 살길이었고 이를 위해 국가의 모든 정책은 수출기업을 육성하는 것이었고 압축성장을 위해 특히 대기업에 여러 특혜를 베풀어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성공했다. 세계 일류 기업이 탄생했고 국가의 부(富)도 쌓였다. 그러나 대기업중심의 경제구조가 되어버렸다.

 

경제성장과정에서 독재정권에 기반 한 재벌,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못지않게 제반 사회 

권력도 일부계층 일부 세력만이 누리는 현상이 심화돼 왔다. 

성장했지만 빈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말았다. 소위 갑(甲)질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상대적 소외계층, 상대적 취약계층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제는 이런 격차문제를 전 사회적으로 한 번 심도 있게 살펴보아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선진국 진입은 물론 삶의 질 향상도 요원하다.

 

이제 이런 저런 국민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더구나 시민혁명으로 새 정권이 탄생했다. 그렇다 보니 촛불 청구서가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이 나오고 있다. 

국민이 선택한 정권인데 정권을 향해 왜 말을 못하겠는가. 

국민이 선택한 정부는 또 당연히 국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의 바람대로 나라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시대정신에 따라 문재인 정권은 적폐청산과 함께 복지정책을 약속했다.

경제에서는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검찰 등 권력기관은 개혁을 통해 기득권 세력이 좌지우지하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것이다.

 

상대적 취약계층을 위해서는 이제는 시설투자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보다는 사람을 위한 

투자를 통해 복지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정말 뜨거운 가슴으로 국민 앞에 다가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해가 엇갈릴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뜨거운 가슴만으로 복잡다단(複雜多端)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정권담당자들이 뜨거운 가슴만으로 대처한다면 불행한 사태가 오지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가슴만 갖고 우선은 문제를 풀어가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현실의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종국에 실패하고 만다면, 좀 더 긴 안목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 나라를 이끌지 못한다면, 뜨거운 가슴으로 국민의 환심을 사서 권력의 맛만 보는 사람들로 전락한다면, 왕후 장상 자리나 탐하는 속물로 역사는 평가할 것이다.

 

차가운 이성으로 현실을 직시하며 이해충돌을 조절하고 먼 장래를 위해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갈 방향을 정하고 나갈 길을 관리할 사람과 조직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를 이끌기 위해서는 대통령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 문재인 정권의 성공과 바람직한 나라 발전을 위해서는  한 발 뒤에서 전체를 조망하며 국정운영에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조언해줄  좀 더 냉정한 사람과 조직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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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6월28일 16시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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