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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정치 지형의 변화: 영국과 프랑스의 선거 이후 정국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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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6월28일 10시13분

작성자

  • 최진우
  •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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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유럽 정치 지형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도버해협을 사이에 둔 두 나라,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적 분위기는 사뭇 대조적이다. 영국은 브렉시트에 대한 논쟁, 잇따른 테러 사건, 저소득층 거주 고층 아파트의 화재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를 경험하면서 집권 보수당 정권에 대한 불만과 저항이 고조되고 있는 반면, 프랑스는 정치 신인 에마뉘엘 마크롱의 대통령 당선과 총선에서의 압도적 승리를 계기로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꿈꾸고 있다. 비관과 분노, 낙관과 긍정이 두 나라를 가르고 있다. 유럽에 대해서도 두 나라의 행보는 서로 다르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준비하며 강경론과 온건론 간의 대립으로 내홍에 휩싸여 있고,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이 유럽통합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보내며 유럽의 중추세력으로서의 입지를 재확인하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 협상을 앞두고 집권 보수당 테레사 메이 총리의 ‘강력하고 안정된 리더십’을 구축하기 위해 조기 총선을 실시했으나 결과는 보수당의 참패였다. 제레미 코빈 당수가 이끄는 노동당에게 압도적 승리를 거둘 것으로 확신했던 총선에서 보수당은 오히려 기존 330석에서 13석을 잃어버리며 과반 정당의 지위마저 상실하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노인들에 대한 의료지원체계를 바꾸려 했던 보수당의 총선 공약이 큰 패착 중의 하나였다. 여론이 악화되면서 서둘러 공약을 철회하긴 했으나 이미 민심은 떠난 후였다. 총선 사흘 전 영국 수도 런던의 심장부 런던브리지와 버러마켓에서 벌어진 테러사건, 지난 5월 맨체스터 테러사건, 3월 의사당 앞 테러사건 등 일련의 연속적인 테러사건이 일어나면서 현 보수당 정부의 치안 능력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인식이 대두됐고 이 또한 보수당 정권에 대한 지지율을 더욱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더욱이 메이 총리가 내무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경찰관 2만 명을 감원시켰음이 알려지면서 테러의 빈발에 대한 메이 총리와 보수당의 책임론이 강력히 제기되기도 했다. 

 

  아울러 이번 총선에서는 작년도 브렉시트 투표 때와는 달리 보수당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젊은 층의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소로 향했다. 국민투표에 대한 낮은 참여율의 대가가 젊은 층이 원치 않는 하드 브렉시트라는 점에 대한 반발과 책임감에서 젊은 유권자들이 이번 총선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총선에서의 투표는 메이 정부의 브렉시트 협상전략에 대한 공개적인 항의였으며 수정 요구였다. 

 

  한편 충격적인 총선 결과에도 불구하고 사퇴 압력에 맞서던 메이 총리는 6월 14일 런던 그렌펠 타워의 화재 사건으로 정치적 입지가 더욱 좁아진다. 그렌펠 타워는 런던의 대표적 부촌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한 저소득층 주거지였다는 점에서 이 화재는 영국의 양극화 실태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으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더불어 화재의 주된 원인이 건물 소유주였던 구청이 값싼 외장재를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인명보다 비용감축에만 초점을 맞춘 긴축정책에 대한 비판이 비등했고, 메이 총리가 화재 발생 다음 날이 돼서야 현장을 방문하면서도 피해자 가족을 만나지도 않고 돌아가버리는 무신경한 태도에 거센 비난이 쏟아지면서 보수당 안팎에서 메이 총리의 리더십에 대한 회의론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금 영국 정국은 영국정부의 무능함과 무감각함에 대한 분노, 브렉시트 이후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으로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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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프랑스는 오랜만에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39세의 젊은 대통령 마크롱이 대선 승리에 이어 하원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에서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오랜 기간 미루어져 왔던 개혁을 위한 동력이 확보됐다. 마크롱의 신당은 총 577석의 하원 선거에서 무려 350석(마크롱의 ‘전진당’ 308석, 정치연대 파트너 ‘민주운동’ 42석)을 차지하면서 나머지 모든 정당을 군소정당으로 보이게끔 만들어버렸다. 특히 얼마 전까지 집권 정당으로 프랑스 정치를 책임지고 있던 사회당은 무려 200여 석 이상을 잃고 44석의 미니정당으로 쪼그라들었고, 불과 두 달 전 마크롱과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맞붙었던 국민전선(Front Nationale)은 8석을 얻는데 그쳤다. 공화당 중심의 중도우파 연합이 그나마 137석을 차지해 의미 있는 야당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되며, 극좌로 분류되는 ‘앵수미즈 프랑스’(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17석을 얻어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갖추면서 선명 야당의 이미지를 부각할 것을 벼르고 있다. 

 

  마크롱은 프랑스가 갈구하던, 그러나 지체된 변화와 개혁을 일구어 내야하는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마크롱에 대한 기대는 크다. 젊은 대통령이 보여준 집권 한 달여의 기록은 그 기대가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또 다른 기대를 낳고 있다. 유럽통합, 기후변화 등의 사안을 놓고 국제사회에 보여준 단호한 의지와 행동은 인상적이었다. 

 

  2016년 4월 만들어져 이제 창당 1년이 갓 넘은 신생정당, 또는 일종의 정치 운동이라고 여겨지던,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마크롱의 정치실험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사실 마크롱 신당의 압도적 승리는 적지 않은 부작용을 수반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거리의 정치’가 횡행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마크롱 신당이 의회에서 과반을 훌쩍 넘는 의석수를 차지하게 되면서 프랑스에는 의회에서 대표되지 못하는 집단과 계층이 많아질 것이고, 의회가 이들의 이익과 견해를 표출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지 못할 때 이들은 거리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마크롱 신당의 행보에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요인은 총선 결선투표에서의 낮은 투표율이다. 불과 43%밖에 되지 않는 역대 최저 투표율(1차 투표 48.7%도 역대 최저치였다), 그리고 그 중 득표율이 약 40%에 그치고 있어 실제 마크롱 신당에 대한 지지는 전 국민의 16%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물론 이는 과장일 수 있다. 마크롱 지지자 가운데 승리를 확신해 투표장에 나서지 않은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크롱의 독주를 경계하며 폭주를 막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세력도 만만치 않다. 특히 노동조합이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는 소식이다. 마크롱표 개혁의 첫 단추는 노동개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마크롱은 대통령으로서의 인기와 의희 다수당의 지위를 기반으로 노동유연화 정책을 대통령령으로 관철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노조가 여기에 극력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노동조합들은 이번 여름 대규모 파업과 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분위기는 마크롱 선출 이후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오랜 경제 침체, 실업률의 고공행진, 빈발하는 테러 사건, 극우정당의 준동 등으로 분노와 절망, 적대와 배제의 늪으로 빠져들던 사회적 분위기가 개혁과 희망과 통합의 분위기로 다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유럽과의 결별을 준비하는 영국과 유럽통합의 중심축임을 다시 자임하고 나선 프랑스의 미래가 어떻게 엇갈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는 원래 유럽의 병자가 프랑스였던 것이 이제 영국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는 ‘유럽’의 문제가 영국에서는 국론 분열의 요인으로, 프랑스에서는 통합의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정치실험이었던 유럽통합에 대한 두 나라의 선택이 앞으로의 미래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울지 두고 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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