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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해는 예술인들에게 거의 빙하기에 준하는 차갑고 견디기 힘든 시기였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은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을 것이라는 정부의 안일한 예측과는 달리 공연현장을 초토화 시켰다. 협찬사를 유치하지 못한 대형공연들이 취소되었고 반도 차지 않은 객석을 바라보는 제작자들의 한숨소리도 커져가기만 했다.

 “김영란법이 전반적인 공연 티켓 가격을 낮추는데 기여해 다수의 국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라며 ‘김영란법’ 장기적으로 공연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한 문화부 관계자의 인터뷰는 문화예술인들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이는 문화예술 현장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한 소리다. 공연현장도 공산품 제조현장과 다를 바 없다. 생산비에 따라 공급 가격도 결정되는 것이다. 즉 티켓 가격은 공연 제작비에 비례해서 형성 된다는 것이다. 한사람이 하는 독창회와 300~400명이 투입되는 대형공연 즉 오페라, 뮤지컬 등에 드는 제작비용은 전혀 다르다. 그리고 작은 반도체 칩이 크기와 상관없이 고가인 것처럼 예술가들의 게런티도 천차만별이다. 모든 공연의 제작비가 다를 진데 모든 공연의 가격을 한데 묶어 낮추어 진다고 생각한다면 마치 아이스크림 한 개와 자동차 한 대 가격을 같이 받으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현장에 대해 그토록 무지한데 어떻게 문화예술 정책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최순실 국정 농단사건까지 연이어 터지자 온 국민들의 관심은 온종일 TV에서 쏟아지는 각종 의혹들과 제보들에 쏠렸고 공연계는 거의 빈사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문화 정책은 90년대 이후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제도가 폐지되면서 급격히 확대되고 예산도 확충되어 국민의 정부에 들어서는 정부 예산 1% 이상의 문화예산 확보하게 되었다. 그 후 꾸준히 증가하여 2016년에는 6조 6천억으로 정부 총 지출대비 1.72%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국가재정 16개 분류 부분 중 13위로 전체 예산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사회복지(29.2%), 일반·지방행정(15.4%), 교육(13.8%) 3개 분야에 비해 턱없이 적으며 예비비를 제외한 국토 및 지역개발(1%), 외교⋅통일(1.2%) 다음으로 적은 규모다.

 그러나 문화재정이 소규모이긴 하나 2016년(6조 6천억 원)은 전년대비 7.7% 증가하였고 최근 10년 동안(2007년~2016년) 연평균 9.8% 대폭 확대되어 국가재정부분 중 가장 증가세가 크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다. 

또한 2016~202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문화·체육·관광 분야 지출을 총지출 대비 2%인 8조 1천억 원을 달성하고 2020년까지 5년 동안 연평균 6.8%로 문화·체육·관광 분야 지출을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문화재정은 OECD국가의 평균이하로 2014년 기준으로 볼 때 정부 총지출 대비 문화재정은 일반정부가 2.2%로 OECD국가 중 19위이고, 중앙정부는 1.4%로 OECD국가 중 24위이다. 그런데 GDP 대비 문화재정은 일반정부가 0.7%로 OECD국가 중 27위이고, 중앙정부는 OECD국가 0.3%로 22위에 그친다. <참고, 표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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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나라와 경제 수준이 유사한 1인당 GDP 3만 달러 그룹들과 GDP 대비 문화재정을 비교해 본다면 어떨까? 우리나라의 GDP 대비 문화재정 비율은 GDP 3만 달러 그룹 8개 국가의 평균인 1.1%에 훨씬 못 미치는 0.68%로 우리나라보다 문화재정 비율이 낮은 국가는 일본뿐이다.<참고, 표3>

하지만 각 국가마다 사회적 역사적 환경이 다른 상황에서 이러한 단순 비교로 우리의 문화 정책을 폄하 할 수는 없다. 아직 남북이 대치된 분단 상황에서 어쩌면 문화재정이 꾸준한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 감사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정부는 1999년 ‘문화산업발전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제정하였다. 이에 발맞추어 게임산업개발원('99), 영화진흥위원회('00)와 문화콘텐츠진흥원('01)이 잇따라 설립되었다. 

 

2000년 이후에 들어서면서 문화콘텐츠가 경제 성장 동력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나아가 창작영역과 소외계층의 문화향유에 이르기까지 문화 정책이 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는 문화융성’을 국정기조 중 하나로 제시하며 문화를 ‘산업적 가치로의 전환’ 시켰고 한류라는 이름으로 영화, 드라마, 가요 등이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인기를 끌며 관광 분야에 파급되어 가시적 경제적인 효과가 어느 정도 증명되기도 하였다.<참고, 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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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정국이 대선모드로 전격 전환되자 문화 예술인들의 차기정부의 문화 정책에 기대와 관심도 커지고 있다. 며칠 전 한 대선 후보는 예술인들과 만나서 문화예술정책에 대해 발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매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장밋빛 정책들을 내 놓았지만 정작 예술 현장에서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는 크지 않다. 어떤 성향의 정부가 오는 선거에서 정권을 잡을지는 모르겠지만 예술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 차기 정부에 바라는 문화정책에 대해 몇 가지로 요약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 문화는 정권에 따라 출렁거려서는 안 된다.

지난해 10월, 설마 설마 하던 얘기가 실체가 있음이 밝혀졌다. 정부가 문화 예술가의 성향을 분석하여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이는 불순한 정치적 계산으로 문화계를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 문화예술계는 적잖은 충격에 휩싸였다. 분단의 역사 속에서 예술은 끊임없이 이데올로기에 휩쓸려 왔다. 전후 다른 이데올로기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예술가들은 남과 북에서 핍박받거나 피해를 받았다. 그런데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뿌리가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순수문화예술성향의 한국예총과 진보성향이 서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그 예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두 단체에 대한 지원액의 추이가 달라지면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들어서 회원이 백이십만 명에 이르는 예총에 대한 지원금은 점점 줄이고 상대적으로 회원 수가 십만으로 훨씬 적은 민예총에 대한 지원금은 증가해 예총의 반발이 심했었다. 순수예술을 추구하든 민족주의 예술을 추구하든 그것은 헌법이 보장한 예술의 자유이고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 중 하나다. 차기 정부는 더 이상 이념적인 잣대로 보수와 진보로 일도양단하여 이념적으로 더 가까운 세력들에게 이권을 주거나 그들을 정권의 전위대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문화는 천년의 지혜를 담는 그릇이라 했다. 차기정부는 제발 이념에 휩싸이지 말고 냉정하고 공정한 잣대로 예술계를 지원해 더 이상 문화가 정치에 구류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정치와 이념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둘째, 코드 인사는 이제 그만,  현장을 아는 분야의 전문가들을 영입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인사 논란이 항상 제기 된다. 차기 정부는 정치권을 어슬렁거리는 사이비 예술가들에게 현혹되지 말고 현장을 아는 전문성 있는 인사들을 과감하게 영입하여야 한다. 문화관련 기관장들은 문화예술을 알고 행정능력을 겸비해야 한다. 거기에 정권이나 좌우 이념갈등에 흔들림이 없는 인사가 맡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행정 능력을 겸비한 예술가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기관 내부에라도 전문들을 영입해 일관성 있는 문화정책을 입안하고 문화예술인과 국민의 공감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문화 예술은 그 분야가 너무 넓고, 분야별로 너무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분야보다도 전문성을 지닌 인물들이 필요하다. 특히 문화부 내부에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과감하게 투입시켜야 한다. 모르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으며 제대로 된 지원정책을 펼 수 있겠는가. 

 서두에서 언급했던 모 문화부 직원처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발효되면 전반적으로 공연 티켓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는 경직되고 안일한 공무원스러운(예술인들이 공무원을 바라보는 시각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발상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예술 현장의 다양성과 차별성을 충분히 인지하는 전문 인력들을 투입하여 새로운 정부는 더 이상 구시대적인 코드인사로 빈축을 사지 않기를 바란다.  

 

셋째, 취약계층·취약지역으로 국한되어 있는 문화향유 정책을 중산층까지 확대시켜야 한다.

대선이 있을 때마다 앞 다투어 나오는 복지정책에 관련된 공약이 문화예술부분에서도 문화 복지라는 이름으로 소외계층이나 소외 지역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공약으로 나온다. 이번 대선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전 정부들의 문화 복지정책 대상이 소외지역과 계층으로 국한되는 경향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중산층을 위한 문화 복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가장 큰 축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 바로 중산층이기 때문이다. 중산층도 문화가 필요하다. 그들의 문화감수성 향상과 문화 활동이 생활권 안에서 가능하도록 문화 복지정책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 보다 효율적인 문화예술 서비스와 지원을 위해서는 중앙 정부 차원의 제도와 그를 밑받침 할 수 있는 수요자들의 요구를 다양하게 수렴한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지원과 혜택은 오히려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 예를 들면 1000원짜리 음악회 등이다. 소외지역을 찾아가는 음악회 등이야 그 목적이 문화를 향유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문화 복지정책의 차원이라 하겠지만 대도시 한복판에서 시립예술단이나 구립예술단들이 내놓는 1000원짜리 음악회는 결국 예술의 가치를 저평가하고 시민들이 다양한 예술을 즐기고 선택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러면서 문화예술을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본다는 것은 지극히 이율배반적이다. 예술의 가치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예술가들을 존중하는 사회 문화와 인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넷째, 문예진흥기금의 안정적인 확충을 위해 복권수익금의 배분 확대해야 한다. 

2017년 복권 기금사업 총 지출 예상액은 1,155,488,000,000원이다. 그 중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책정된 비용은 37,193,000,000에 불과하여 전체 예산중에서 극히 소액으로 책정되었다. 이 역시 공연나눔, 창작나눔 등 저소득층 대상 문화향유 사업에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제 단순 복지뿐만 아니라 예술 활동과 창작영역에도 확대해 볼 필요가 있다. 문화 예술 활동의 지원 금액의 현실화를 위해서 복권수익금 배분을 확대하여 문예진흥기금을 확충하고 이를 문화나눔사업 즉 저소득층을 위한 문화향유 사업에만 국한 시키지 말고 창작을 포함한 예술 활동 부분에도 확대하여 예술인들의 안정적인 예술 활동을 장려하여야 한다.

 

다섯째, 한류는 영원하지 않다.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겨울 연가를 시작으로 불기 시작한 한류 열풍은 이제 드라마를 넘어 영화, K-POP, 화장품, 음식 심지어는 성형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 여러 국가에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문화 예술이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지만 자칫 장기 전략이 없는  한탕주의와 얄팍한 상술로 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염려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콘텐츠들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정부는 이러한 한류 콘텐츠 계발에 많은 지원을 해오고 있다. 이에 부응하듯 여러 가지 문제점이 대두되기는 하지만 한류가 여전히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불러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 정책은 이런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을 적절히 안배하여 지원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대중예술은 상업성을 띄기 때문에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지만 순수예술은 정부차원에서의 지원이 없으면 자생하기 어렵다.

 문화 예술 사업은 공산품처럼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사업을 접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수백 년, 천년을 바라보는 장기 사업이다. 배고픔에 못 이겨 빵 한 조각, 우유 한잔에 팔아치웠던 그림 한편이, 한곡의 음악이 오늘날 세계적인 명화가 되어 수십억의 가치를 올리고 세계적인 명곡이 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을 세기며 그들을 낳은 조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예술은 그런 것이다. 바로 효과가 보이지 않더라고 후세에 지대하고 막대한 영향을 주고 한 나라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는 단기적 성과나 이익에 집착한다. 적어도 문화예술은 그런 잣대로 보아서는 안 된다. 천년을 넘어 수백 년이 흘러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를 발하는 것이 순수예술이다. 루브르박물과 구겐하임 미술관, 오르세미술관 등에 전시된 그림들이,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이, 베르디와 푸치니의 오페라를 보라. 수백 년을 거스르며 그 예술품들이 올리는 경제적 파급력과 문화적 가치는 실로 엄청나다. 가까이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쇼팽콩쿨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공연 티켓이 단 두 시간에 매진되고 CD가 발매되자 말자 완판 된 예가 순수예술도 제도적으로 잘 지원하고 육성한다면 충분히 경제유발효과를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한명의 아티스트가 국가의 위상과 가치에 주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리고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를수록 더 큰 빛을 발하게 된다. 그런 위대한 예술가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전제적으로 학교 예술교육의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예술가는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거니와 예술을 향유는 느껴본 사람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는 대중예술과 상업예술의 긴 안목으로 바라보고 형평성에 맞는 지원과 육성책을 내어 놓길 바란다.  

 

21C에 이르러서 문화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대두되며 문화가 국가 경쟁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문화예술이라고들 말한다. 청소년 시절 읽었던 시 한 구절이  인생행로의 좌표가 되기도 하고 어릴 적 배웠던 가곡 한곡이 그 사람의 평생 감성의 텃밭이 되기도 한다. 차기 정부가 자율성과 창의성, 다양성이 보장되는 백년대계가 아닌 천년대계의 문화 예술정책을 세워주길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써 진심으로 바란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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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17 16:42:09 최종수정 2017-04-19 11: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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