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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정책방향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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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4월11일 16시08분
  • 최종수정 2017년04월11일 16시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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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여기서

 

정치권력이 대규모기업집단에게 경제발전의 주도적 역할을 맡기면서 공적 자본을 우선적으로 배분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대규모기업집단으로부터 정치자금을 공급받는 과거의 경제운용모델은 정치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대규모기업집단이 이미 우리 경제시스템의 골격으로 자리잡은 이상 이들을 갑작스럽게 해체하거나 국유화할 수도 없다.  따라서, 대규모기업집단이 그 체질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동시에 기업정신에 기초한 새로운 도전적 기업들의 출현을 촉진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들에 대한 경제정책의 시간적 배분과 강도의 문제가 중요하다.  

 

창업자의 가족들이 지배주주로 대규모기업집단 전체의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주주의 투자가지증진과 회사제도의 장래에 바람직한 것 인지, 아니면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넘기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의 문제는 당분간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해결할 문제로 남겨두기로 한다.  효율에 대한 확실한 입증이 어려운 뿐더러 효과적인 정책수단도 고안하기 쉽지 않을 것같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기업가치의 지속적 성장과 단기적 이익실현을 위한 주주행동주의의 충돌에 관한 논의도 마찬가지 이유로 장기적 과제로 맡기자.  다만, 주주행동주의가 언제나 외국의 헷지펀드로부터 국내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정책목표와 상반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주주의 권리나 이익보호를 위한 장치를 강제하는 것이 곧 외국의 헷지펀드의 이익추구에 동조하는 것으로 또는 국내기업의 보호가 필요없다는 주장과 동일한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아니된다.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지배구조의 개선이나 계열사거래에 대한 규율 때문에 이들이 보다 손쉬운 해외 투기적 자본의 경영권 공격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 자체도 과학적인 입증자료에 기초하여야만 할 것이다.

 

기업규제의 완화가 즉 우리 기업의 경쟁력 강화방안이라고 하는 논의,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새로운 규율시스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규모기업집단을 새로이 만들어 내기 위한 방안이 중요하다는 논의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문제의 한 가지 측면만을 강조하기 위한 구호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기업규제의 완화가 필요한 분야가 아직도 우리경제 전반에 걸쳐 있으며 이는 단순히 산업일반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규제산업인 금융이나 보건의료분야에도 적용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기업규제의 완화가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기업정신의 진작을 위한 수단의 하나에 불과하며 완화될 규제와 더불어 기업활동에 적용되어야 할 많은 새로운 규제도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기업이 국민경제경제에서 나아가 세계경제에서 이렇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시대는 인류역사상 없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기업제도와 자본주의는 너무나 단시간내에 사회전체의 부의 증진과 국제무역을 통한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한 휼륭한 제도인 것도 사실이다.  지금 여기에서의 논의대상은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국가의 공권력은 대규모기업집단을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국가적으로 다음의 세대에 중요하고 동시에 우리가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산업분야는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육성할지, 기업정신 일반을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진작할지 등 한국경제와 정치에 필요한 정책적 목표를 열거하자면 끝이 보이지 않지만 다음 행정부의 경제정책목표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은 대규모기업집단의 순기능을 최대화하는 동시에 독과점산업구조를 공정한 경쟁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이 글은 대규모기업집단에 초점을 맞추어서 다음 행정부의 정책적 과제와 방안을 살펴 보고자 한다.

 

대규모기업집단의 실체인정

 

현행법상 대규모기업집단은 상법상 지극히 간단한 몇 개의 모자회사간 규정들로 규율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들 규율체계가 대부분 회사 하나만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들만으로 대규모기업집단의 이해관계인을 보호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미약하다.  현실은 모든 기업이 커다란 집단을 이루어 활동하고 있으니 이제는 이들의 실체를 인정하고 상법에서 포괄적인 하나의 장으로 규율하는 것이 필요하다.  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 중인 이중대표소송을 포함하여 계열회사간 거래를 포함한 이해상충과 지배구조에 관한 일관된 규제, 자본의 공동화를 막기 위한 자본적 규제를 모두 포괄하여야 한다.  현재 공정거래법상의 대규모기업집단에 관한 공시나 지배구조관련규정도 상법으로 옮겨서 계열회사 공시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이사회의 기능을 더욱 강화하여 지배주주의 이사회 지배를 배제하여야 한다.  

이와 더불어서 대규모기업집단 자체의 이익을 위한 집단내 부실회사의 구조조정조치에 대하여도 일정한 요건하에 구조조정을 둘러싼 법적인 책임에 대한 우려를 미리 불식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대규모기업집단에서 부실기업이 당연히 발생할 수 있고 이를 대규모기업집단 단위에서 신규자본의 투입이나 자금조달에 대한 지원이 필요할 경우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걸핏하면 기업단위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대규모기업집단의 회장이나 임원들을 배임으로 구속하는 것은 이들이 사전에 충분한 절차적 실체적 검토를 게을리하였거나 준법경영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죄는 있을지언정 우리 사회 전체의 한정된 자원을 유효하게 배분하여 법의 집행에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기준의 자의성이나 이에 따른 기업의사결정의 어려움이라는 측면에서 법치주의의 가치를 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시스템을 채택할 경우 우선 떠오르는 우려는 대규모기업집단의 공시규정이나 지배구조관련규정의 위반에 대한 행정적 제재가 불가능하다는 것인바, 상법상으로도 형사벌이 가능한 만큼 심각한 집행상의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더불어 위법행위를 저지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사후적 엄격처벌주의나 공권력우선주의도 중요하지만 사전적인 의식의 전환이나 가장 이해관계가 큰 자들의 민사적 구제수단을 활성화하는 것도 법집행의 보조적 수단으로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배주주나 경영진이 위법한 의사결정으로 회사 내지 대규모기업집단에 손해를 초래한 경우 주주들의 적극적인 소송으로서 이들 규정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원고적격이나 소송요건, 나아가 가장 중요한 소송비용의 산정과 분배에 관한 보다 실질적인 논의와 개선책이 필요하다. 

 

결국 주주의 이익은 주주가 보호하여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도 자본주의의 중요한 교훈이다.  주주는 집단행동의 비용효용분석에 따르면 소극적일 수밖에 없으니 기관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하지만, 우리 경제의 기관투자자들은 대규모기업집단의 이익에 반하여 사업을 할 수 없는 현실적 먹이사슬구조에서 이들의 적극적 활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민연금이나 여타 공익적 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중요한 레버리지로서 작동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정치세력과 결탁할 위험이 있으니 결국 개인투자자들의 권리의식과 경제적 보상에 기대하여야만 한다.  경제적 보상이란 주주들에게 적어도 합리적 소송비용을 보상받을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소송비용제도는 대폭적으로 개선할 여지가 있음을 별론으로 하고.    

 

대규모기업집단과 시스템리스크

 

대규모기업집단은 그 크기와 다른 경제주체와의 연결성 때문에 그 부실화가 국민경제 내 다른 경제주체, 나아가 경제체제전반의 건전성 내지 신뢰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다른 경제주체는 자신의 경제상황과 무관하게 대규모기업집단의 부실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은 공권력의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규율필요성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대규모기업집단의 지배주주 내지 경영인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  금융기업집단과는 달리 대규모기업집단은 그 위험의 정도에 있어서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논의도 가능하지만 과거 우리의 대규모기업집단이 우리 경제 전체에 미쳤던 영향 즉 대규모기업집단내 하나의 회사가 문제가 되면 온통 국민경제 전체가 흔들거리고 나아가 정치권과 관료들의 끝없는 책임공방이 이어지는 현실을 고려할 때 과연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에서 그러한 논의가 설득력을 가지는지는 의문이다.

 

현재 공정거래법은 자본의 측면에서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특수한 규율을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써는 불충분하며 경제제체에의 위험 내지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일정 규모 이상의 대규모기업집단의 경우 주기적인 스트레스 테스트와 대규모기업집단의 자생계획 제출을 의무하화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분명히 대규모기업집단에 경제적 하중을 부과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여 보면 대규모기업집단의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측면도 있다.  금융기업집단의 경우 미국에서 보수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의무부과의 필요성 여부에 관하여 정치적인 논란이 일는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경제규모와 대규모기업집단의 경제적 비중으로  보아서 이러한 추가적 의무부과가 정치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어야 할지는 의문이다.  

 

대규모기업집단과 경제력 집중의 억제

 

공정거래법상 대규모기업집단은 경제력집중의 억제라는 장하에 규율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본과 지배구조에 관한 규율 및 공시의무가 왜 경제력 집중과 연결되는지는 명확하지 아니하다.  규율을 정한 만큼 이를 준수하기 위한 비용이 들 것이고 따라서 비용절감을 위하여 기업이 대규모집단요건이 적용되는 상황을 지연하는 결정을 하게 만드는 것이 경제력 집중 억제의 수단이라고 인식할 수도 있고 지난해 대규모기업집단의 규모를 조정한 것도 이러한 단순한 인식에 기초한 것 일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력 집중억제의 기본적 정책수단은 기업결합에 대한 심사이므로 앞으로 기업결합에 대한 심사기준을 강화하여 대규모기업집단의 형성이나 확산을 저지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기업결합 이후의 행태적 규제에서 한걸음 나아가서 그 이전단계인 승인단계에서의 엄격한 스크린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하여야 핳 것이다.  나아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범위를 확대하며 이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 규율이 필요하다.  불공정행위의 유형으로서 부당지원이나 일감몰아주기를 정의하여 다소 자의적인 행정적 기준으로 대규모기업집단의 행태를 규율하는 시스템은 더 이상 현재 공정위의 능력으로 집행하기에는 무리이며 따라서 보다 광범위한 틀을 가지고 산업별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여 보인다.  다만, 금융이나 정보통신과 같이 특정 산업의 육성에 관한 별도의 주무부처가 있는 경우 이들 산업의 공정경쟁적책은 이들 부처에 과감하게 위임하는 것이 대규모기업집단의 규율방향설정에 효과적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공정거래법상의 지부회사와 금융지주회사법상이 금융지주회사간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일반적인 금산분리 내지 은산분리의 논거가 반드시 모든 금융회사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경제의 규모와 우리 사회의 페쇄성을 감안할 때 금산분리는 전 금융산업에 확대하여야 할 것이며 따라서 일정한 규모 이상의 대규모기업집단의 경우 시간적 목표를 정하여 금융지주회사시스템 내지 지주회사 체계로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이 둘을 모두 가지는 대규모기업집단의 경우 하나의 선택을 강요할 수도 있으나 현재 우리의 자본시장 체제하에서 단기간에 흡수할 수 없는 충격을 초래할 것이니 중간지주회사의 설립을 허용하여 금융은 금융지주회사로 묶는 것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정책적 대안의 탐구가 언제나 특정회사에 대한 특혜로 인식하여서는 아니되며 현실에 기초한 점진적 개혁만이 가능하다면 이를 고려하여야 하는 것은 행정관료와 정치권의 책임이다.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정책과 소위 보수/진보의 구분

 

우리나라의 역대 정권중 개혁을, 특히 경제개혁을 주장하지 아니한 정권은 없다.  경제계획에 따라서 경제운용을 한 정권부터 규제개혁을 주장한 정권까지 모든 보수정권이었다.  통상적으로 보수라 함은 국가라는 집단의 공권력을 이용한 개혁에 회의적이며 개인의 창의성과 시장의 자율성을 믿는데, 우리의 보수는 언제나 개인의 창의성보다는 국가의 공권력을 통한 개혁을 주장하여 왔고 또한 실행하여 왔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시장의 자율성 역시 보수정권이 공정위를 통하여 가격결정에 개입한 때가 불과 몇년전 일이다.  따라서, 경제체제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개혁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될 수는 없을 듯하다.  

 

이러한 과거행태를 고려할 때, 대규모기업집단의 우리 국민경제내 역할과 앞으로서의 개선방향에 대하여 소위 보수와 진보가 크게 의견을 달리 할지는 의문이다.  규제개혁이 지금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과는 동일하지 않으며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규율시스템을 어떻게 가져나가야만 공정하게 시장이 작동할 것인지를 논의하기 위한 시점에 규제개혁론자, 시장완벽주의자들의 주장이 공정경쟁론자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정치는 반드시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구분에 따라서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대규모기업집단의 문제를 지나치게 당파적인 이익에 따라서 논의하는 위험은 모든 이들이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법집행의 실효성 문제

 

어떤 경우에 징벌적 배상을 구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어떤 경우에 공정위와 더불어 제3의 조사기관이나 소추기관이 공정거래법상의 불공정거래행위나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남용행위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는 대규모기업집단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정치세력간 내지 부처간 의견을 모으기가 어려운 분야이다.  그 이유는 이 문제를 진보와 보수의 구별이라는 이념적 틀에서 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논의의 목표는 효과적인 법집행을 통한 실효성있는 법규범의 확립이며 수사권이나 소추권은 그 방법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찬성하는 자는 진보, 반대하는 자는 보수로 규정되어 있다.  보수란 급격한 개혁이 아닌 전통적 가치와 시스템의 점진적 개선을 주장할 것이지만 현재의 변화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며 진보 역시 무조건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자고 고집할 것도 아니다.  

 

구체적으로 징벌적 손해는 영미법적 개념이지만 효과적인 법집행을 위하여 우리 법규내에 일부 들어와 있으며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으니 체계적인 혼란야기의 문제는 없고 실제 문제는 도입시 손해를 얼마나 손쉽게 산정할 수 있을지, 그 산정이 어렵다면 도입하였다고 한들 실제 효과적인 구제책이나 억제책이 아니게 될 우려이다.  공정위의 수사권은 공정위내 책임감과 신념을 가진 공무원을 육성하느냐의 문제이며 공정위의 소추권 독점은 전술한 바와 같이 특정분야에 관하여는 다른 주무부처와 합의, 이를 사실상 위임할 수도 있으므로 전혀 문제가 없는 제도이다.  검찰이 모든 위법행위를 개인에 대한 자유형으로 처벌하여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공정위의 독점적 소추권을 부인하기 보다는 경제범죄에 대한 효과적인 저지와 처벌을 위하여 기업과 개인간 어디가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할지, 그러한 결정시 고려되어야 할 요수는 무엇인지, 경제범죄에 대한 수사능력을 구비하기 위하여는 어떠한 준비가 필요한지 등의 문제부터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공정위의 책임있는 경제관료육성과도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소신있는 경제부처의 육성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와 대기업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공권력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의문이 진작부터 제기된 바 있다.  외국에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학교와 교도소가 운영된 바 있으며 의료법인의 상황도 다름 아니다.  우리는 형식적으로는 이를 배격하고 지나치게 많은 공공기관들이 우리 경제 전반을 운용 내지 사경제를 지원하고 있다.  거래소, 예탁결제원, 무역공사, 수출보험공사,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한국전력공사, 가스공사, 토지공사, 각종 자자치의 개발공사, 광고공사 등 끝이 없다.  한편 이를 규율하고 있는 경제부처는 점차 관료화되면서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만 기다리며 정치권의 눈치만 보는 듯하다.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고 아무 것도 실패한 것이 없다.  최근의 공정위도 마찬가지 상황으로 보인다.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아무런 청사진이나 정책도 제시한 바 없으며 다만 하도급자에 대한 대금지급에 관하여 채권추심회사같은 발언을 간간히 반복하고 있는 듯하다.  공정위의 중요공무원들이 공권력을 어떻게 행사하여 어떤 정책을 집행할지에 관한 고민보다는 기업들과의 좋은 관계를 통하여 공무원으로서의 경력을 그만 둔 이후의 영리적 활동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고자 고민한다면 공정위는 공권력으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문맥에서 공정위와 관련하여 공운법상 재취업금지의 대상공직자나 기간, 이해상충기업을 대폭 확대하고 예외적인 위원회 승인절차는 폐지하여야 할 것이다.    

 

새로운 행정부는 경제부처에 70년대부터 시작한 우리경제의 방향성 정립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회복시켜서 우리 경제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하여 새로운 산업을 지원하며 대규모기업집단의 현재 우리경제시스템에서의 득과 실을 견주어 장점을 신장하고 단점은 통제하는 정책수단을 제시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경제관료는 관료로서 정책집행의 경험을 살리고 사익을 넘어선 또는 사익의 최대공약수로서의 공익실현을 고민하면 되고 장차관은 정치적 능력이나 전문적 식견으로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정책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기초로서의 공정한 경쟁

 

전세계적으로 개인이건 국가이건 자기이익이 우선하여야 하며 자기 내지 다수와 다른 것을 배척하는 분위기이다.  물론 자아에 대한 인식이 자기와 자기가 아닌 것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며 이러한 인식을 전제로 자기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가 아닌 것에 대한 인식은 동시에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하며 상이한 다수를 통하여 공동체의 가치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또 다른 기초인 자유주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실력과 노력에 기초한 경쟁이라면 경쟁의 참여자는 경쟁의 결과인 자기와 타인간 상이한 상황을 비교적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지만, 최근에는 무슨 수저, 무슨 수저 하면서 사회적 배경이나 집안의 경제적 배경이 경쟁의 중요한 요소로 언급되고 따라서 경쟁의 결과로서의 자신과 타인간 차이를 인정하지 아니하는 경향이 보인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경쟁에서 진 자들은 무조건 국가의 지원을 요구하며 국가도 이러한 모든 요구를 수용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을 전제로 한 듯한 정책을 펴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사회분위기를 기업간 경쟁에 유추적용하여 보건대 자본주의가 공정한 경쟁질서를 제공하여 주지 못하면 그 경쟁에서 진 기업은 그 결과를 승복할 수 없고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며 나아가 경제시스템 자체가 유지될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대규모기업집단은 분명히 집단으로서의 경쟁에서의 이점이 있으며 따라서 집단화를 촉진시켜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한편 이들이 지금의 우위를 근거로 경제전체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도록 규율되어야 한다.  여기서 하나 지적할 것은 기업과 지배주주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지배주주는 대규모기업집단을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끌 막중한 책임을 국가와 사회에 지고 있다.  지배주주는 자본주의가 왜 공정한 경쟁질서에 기초하여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국민을 설득할 책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국민의 논의는 단순히 진보와 보수의 차이라기보다는 우리 경제시스템의 장래에 관한 논의이며 지금이 정치권력과 관료집단이 이 논의의 방향을 잡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의 위치회복

 

Donald Trump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많이 팔리고 있는 책으로 Richard Rorty의 ACHIEVING OUR COUNTRY라는 책이 소개된 바 있다. 그의 강의를 모은 책으로 미국내 진보주의자(Liberals)와 보수주의자(Conservatives)에 관한 역사적 설명은 별로 우리 정치와 관련성이 없을 듯하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자부심과 전망에 관한 도입부분이 인상적이다.  개인이 자신을 존중하면서 자만이나 비하에 빠지지 않을 경우에 자신의 개선에 관한 논의가 가능한 것처럼, 국가의 장래에 관한 논의 역시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때 목표설정이 가능하다면서 미국의 자부심은 과거가 없이 미래에 대한 희망만으로 독립된 국가임을 지적한다.  

 

이러한 출발점은 대한민국의 장래에 관한 논의에 관하여도 필요할 듯하다.  현재의 정치상황으로 인한 지나친 자기비하나 과거의 전쟁으로부터의 빠른 회복으로 인한 지나친 자부심을 버리고 한민족의 역사적 창의성과 대한민국의 건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그러나 여기까지 발전하는 과정상 저질렀던 모든 잘못에 대한 도덕적 죄의식을 껴안고 모든 국민들의 역량을 모을 수 있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설계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자는 “저자들이다,” “아니다, 이자들이다”라는 논의도, 우리는 아무리 바꾸어도 “이래서 안될 것같다,”“저래서 안될 것같다”라는 논의도 접어 두고, 커다란 종이위에 국내정책, 국제정책, 경제정책이라고 쓰고 그 아래에 소제목을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각각의 비중과 시간적 순서, 방법론들을 정리하여 볼 줄 알아야 한다.  끊임없이 우리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서 불러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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