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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렉시트의 가장 큰 국제정치적 파급효과는 불확실성의 증폭이다. 브렉시트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출과 맞물리면서 국제정치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난 수십 년간 국제사회의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의 근간이 돼 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자유무역의 퇴조가 점쳐지고 있고, 다자주의적 글로벌 거버넌스가 도전받고 있다. 

 

  브렉시트는 민족주의의 귀환(new nationalism)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 러시아의 공격적 외교정책, 중국의 중화주의적 행태, 일본의 가속적인 정상국가화 등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각국 대외정책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화되고 있으며 그 결과 국제정치가 다시 현실주의로 회귀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군비경쟁이 격화되고 보호주의가 다시 글로벌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브렉시트는 유럽 차원은 물론이요 글로벌 차원에서 국제정치적 지각변동을 불러오고 있다. 그 변화의 방향, 속도, 규모 등이 불투명할 따름이다. 브렉시트의 충격으로 EU의 해체 가능성이 제기되는가 하면 오히려 결속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극우세력의 확산이 점쳐지는가 하면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오히려 극우파의 신장세가 내리막길에 접어들리라는 예상도 있다. 어느 방향이든 유럽의 정치지형은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브렉시트는 미-유럽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할 것이며, 이는 곧 글로벌 차원에서 중대한 파급효과를 수반할 것으로 보인다. EU 멤버십과 미국과의 ‘특수관계’(special relationship)를 외교적 자산으로 갖고 있던 영국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유럽 사이의 불화를 무마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중재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 영국이 EU를 떠나면서 그 역할을 계속 수행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에서 2차 대전 이후 공고하게 유지됐던 대서양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것임을 예상케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맞물려 대러정책, 중동정책, 기후변화, 이민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과 유럽 간의 갈등관계가 증폭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브렉시트는 미국과 유럽 사이의 가교가 부재한 상황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유럽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NATO를 ‘낡아빠진’(obsolete) 존재로 비하하고 있으며, EU는 ‘독일의 이익을 위한 도구’(vehicle for Germany)에 불과할 따름이라는 견해를 공공연히 밝히는가 하면, 영국의 EU 탈퇴 결정을 열렬히 지지함으로써 유럽 국가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에 따라 도날드 투스크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은 미국을 러시아, 중국, IS와 함께 유럽에 대한 중대한 위협요인으로 지목한 바 있으며,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 또한 트럼프 대통령을 ‘반란자’(insurgent)로 지칭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경색된 관계는 지난 3월 17일 메르켈 수상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워싱턴 정상회담의 냉랭한 분위기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EU와 미국 간의 관계가 앞으로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한편 브렉시트는 글로벌 무대에서 EU의 역량과 위상의 하락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브렉시트는 곧 영국의 탁월한 외교력과 유럽 최강의 군사력이 EU로부터 빠져 나가는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그만큼 EU의 외교안보 자산에 공백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브렉시트는 유럽의 소프트파워를 잠식하는 효과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모던 시대 새로운 국제정치 모델을 보여주던 EU가 지역통합체로서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라는 점, 그리고 유럽 전역에서 극우세력의 확산을 촉발함으로써 유럽이 더 이상 관용과 진보의 땅이 아닐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에 따라 보편적 규범을 포함한 각종 글로벌 스탠다드 설정에 있어 이른바 ‘규범세력’(normative power)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해 온 유럽의 위상이 전과 같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더욱이 트럼프 행정부와의 마찰로 인해 양자 간 협력관계가 더 이상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게 된다면 유럽의 가치중심적 외교정책은 자칫 공허한 구호가 되고 말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EU는 하드파워까지 갖춘 행위자로 거듭남으로써 국제적 위상이 강화될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영국의 EU 탈퇴와 트럼프 행정부에 의한 미국의 유럽으로부터의 퇴각이 현실화된다면 EU의 자체적 외교안보역량 강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돼 오히려 EU 하드파워의 빠른 증가를 추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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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가 EU 외교안보정책의 초국가화 및 역량 강화로 이어지고 있는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6일 개최된 EU 외무장관 및 국방장관 연석이사회에서는 군사훈련을 위한 통합사령부(가칭 Military Planning and Conduct Capability office) 설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이번 합의는 원래 군사안보 분야의 통합의 심화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일관적으로 보여 온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택한 후 EU 내 의사결정과정에서의 다이나믹스가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예다. 영국의 반대가 없는 상태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의사가 관철된 것이다. EU는 통합사령부 설치가 NATO와 경쟁하는 유럽방위군(European Army)의 창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폴란드와 발트해 국가들처럼 NATO의 억지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나라들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제스처이며, 장기적으로는 EU의 독자적 안보역량의 강화로 이어질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EU의 이번 합의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국방예산을 대폭 증액함으로써 군비경쟁의 상승곡선이 그려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EU 또한 부분적으로나마 현실주의적 외교정책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관측도 가능하다. 

 

  우리에게 있어 브렉시트 이후 국제정세 변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글로벌 문제 해결의 우선순위, 목표, 방식에 있어 미국과 유럽의 디커플링 현상이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 이민, 테러, 교역, 인권 등과 같은 주요 글로벌 쟁점에 있어 그간 큰 틀에서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던 미국과 유럽은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양자 간 의견불일치 확대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브렉시트는 양자 간 의견 조율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글로벌 쟁점의 해결 방식 또한 지금까지의 다자주의적 접근 방법 또한 약화될 우려가 있다. 그 동안 많은 문제들이 G-7, G-20, UN, WTO, UNFCCC 등의 틀 안에서 논의되고 해결책이 모색됐으나 향후 당분간은 미국의 외교정책이 미국우선주의와 일방주의적 경향을 보이면서 미국과 유럽의 협력을 전제로 한 다자주의적 질서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그러한 상황이 전개된다면 중견국가로서 다자주의적 질서의 수혜자인 우리로서는 글로벌 의사결정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 수 있다. 만일 다자주의가 약화된다면 당연히 그 대안으로 양자관계의 강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미국 신행정부와 의회의 외교안보라인 및 대외경제정책라인에 대한 접근 채널 확보가 시급하며, 유럽과도 기존의 한-EU 전략적 동반자 관계 유지 및 강화를 위한 노력이 요청된다. 우리에게 있어 미국은 안보이익 수호를 위한 불가결한 동맹이며, 유럽 또한 글로벌 차원의 연성 이슈에 있어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소중한 가치동맹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유럽은 북한 문제를 다룸에 있어 잠재적 효용성이 크다. 사실 유럽은 북한 문제에 있어 미국 못지않게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핵, 미사일, 인권 문제에 대해 사건이 있을 때마다 신속하게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있으며 UN에서 대북 결의안 채택에 있어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UN 제재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으며 강도 높은 독자제재를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유럽은 북한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여러 NGO가 북한 내에서의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북한문제에 있어 미국과 유럽 모두 단호한 입장이지만 각론에서 약간의 차이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미국과 유럽 양쪽 모두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미국과 함께 북한에 대해 강한 압박을 가하면서도 유럽을 활용해 대화와 접촉의 통로를 열어두는 유연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카드를 확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브렉시트로 시작된 국제정치 지형의 지각변동은 트럼프 현상과 맞물려 우리에게도 크나큰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미-유럽 간의 갈등관계 심화로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고, 보호주의적 국제경제환경, 현실주의적 국제정치환경이 대두될 가능성이 농후하며, 다자주의적 국제질서가 퇴조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우리나라는 양자관계의 발전에 외교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며, 중장기적으로는 다자주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최대한 기여할 필요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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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05 1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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