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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드 보복, 미국에도 ‘피안(彼岸)의 불’ 아니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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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3월29일 16시48분

작성자

  • 김태우
  • 前 통일연구원 원장, 前 국방선진화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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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직후인 2016년 2월 7일 한미 양국이 주한미군에 사드(THAAD)를 배치할 것을 결정한 이후 중국의 ‘한국 때리기’가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한국 연예인 중국 TV 출연 금지, 한류행사 금지, 한국 드러마 방영 제한 등의 ‘한한령(限韓令)’으로 시작된 중국의 사드 보복은 정부 및 민간차원 대화 제한, 한국인 비자발급 절차 강화 등을 넘어 한국에 대한 포괄적인 경제제재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은 한국 상품에 대한 반덤핑 규제 및 검역 강화, 한국산 배터리 탑재 중국의 전기자동차들에 대한 보조금 폐지, 전세기 한국 운항 금지, 한국산 화장품 수입금지, 한국 단체여행 전면 금지 등 나날이 새로운 제재를 내놓고 있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은 중국내 매장 대부분이  폐점되었고, 페리를 타고 한국 항구에 들어온 중국 승객들이 상륙을 거부하고 있으며, 중국 도시들의 길거리에서는 한국산 자동차들이 벽돌 세례를 받고 있다.

 

  물론, 중국 내에는 일부 자성론도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3월 15일 폐막 된 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에서 자칭궈 정협 상무위원(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은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는 중국에게도 큰 피해를 초래하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민족주의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통제가 어렵고 중국의 정치안정에 충격을 줄 수 있으므로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 목소리일 뿐이다. 공산당 일당체제라는 중국의 특성상 모든 신문, 방송, 전문가 등이 일사불란하게(?) 중국정부에 동조하여 ‘한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사드는 중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주장을 빈복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중국의 일방적 사드 보복이 ‘비합리적이고 모순스럽다. 

첫째, 문제의 근원은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위협이며 사드는 그에 대한 대응일 뿐이다. 

둘째, 사드는 북한 미사일로부터 한국과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하는 파괴살상용 탄두를 탑재하지 않은 방어무기일 뿐이다. 

셋째, 사드는 대중(對中)용이 아닌 대북(對北)용이며, 사드가 운용하는 TPY-2 TM 레이더는 이스라엘과 일본에 배치된 것과 같은 조기경보용 전진배치모드(forward-based mode)가 아닌 적 미사일을 식별‧추적하는 종말모드(terminal mode)로 유효 탐지거리는 최대 800km에 불과하며 탐지 각도도 120도로 제한되어 있다. 넷째, 설령 대북 감시를 포기하고 사드 레이더를 중국 방향으로 배치하여 탐색거리가 중국영토의 일부에 닿는다 하더라도 흑룡강성, 산동반도 등에 한반도와 일본은 물론 서태평양까지 감시하는 대형 레이더들을 배치하고 수십 개의 군사위성까지 운용하는 우주강국이자 수백기의 핵미사일을 실전 배치하고 있는 핵강국인 중국이 사드 레이더를 ‘중국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 황당한 주장이다. 

 넷째, 날로 엄중해지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위협을 감안하면, 중국의 사드 때리기는 지나치게 한국의 안보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집권 5년 동안 세 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했고, 총 28회에 걸쳐 46발을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으며, 현재에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및 대륙간탄도탄(ICBM) 개발, 고래급(2,000톤급) 잠수함 개발, 미사일 고체연료 개발, 신형 미사일 엔진 개발 등에 광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일본에 배치된 X-밴드 레이더에는 침묵하면서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길들이기’를 시도하는 것을 보면, 시대착오적인 ‘종주국 마인드’도 일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정부와 전문가들이 이런 사실들을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중국을 설득하고 있지만 베이징 정부는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으며, 현재까지도 중국은 사드 배치를 야기한 원인인 북핵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유엔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비공식적으로는 북한정권의 생존을 돕는 자기모순적인 이중 플레이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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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 한국에게는 딜레마를 그리고 미국에게는 새로운 과제를 부여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생존과 번영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웃 대국이어서 한국은 지금까지 중국과의 ‘비적대적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한국으로서는 우선 중국이 사드에 민감한 이유들을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중 간 첨예한 세 대결이 펼쳐지는 신냉전 구도에서 사드를 둘러싼 한중 갈등은 어차피 피할 수 없다. 날로 고도화되는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한국이 사드 배치를 통해 생존을 도모하는 것은 안보주권의 문제인 반면, 중화질서(中華秩序)의 시대를 열고자 미국에 도전하는 중국은 사드를 미국의 대중(對中) 포위망으로 인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안정적인 한중관계를 위해 최대한 설득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국의 안보주권을 침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한국도 이제는 보유한 지렛대들을 활용하여 맞대응에 나서야 하며, 이는 한국의 무제한적 인내와 양보가 중국의 더 강한 한국 때리기를 초래하여 한중관계를 더욱 심하게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언론 그리고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되어 진행되는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한국 국민은 ‘민주주주의적 성숙함’으로 대처해야 한다. 800만 유커의 방한이 끊긴다면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450만 한국인도 중국행을 자제해야 하고, 중국에서 한국 상품이 불매운동에 시달린다면 중국 상품도 한국에서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장기적 차원에서는 대중(對中) 경제의존도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줄여나가야 한다. 중국의 대한(對韓) 경제의존도보다 한국의 대중(對中) 의존도가 더 큰 상황에서 이러한 조정은 한국에게 더 큰 고통을 강요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그동안 중국에 대해 가졌던 과도한 기대를 접고 지속가능한 ‘한중 간 비적대적 우호관계’를 정착시키는 길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역시 한중 간 사드 갈등을 ‘강건너 불’로 간주하고 구경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당사국이다. 현재 미국은 중동에서 발사되는 탄도미사일로부터 나토 동맹국들을 보호하기 위한 미사일방어 체계를 구축 중이다. 미국은 2012년에 터키에 탐지거리가 1,800km 이상인 X-밴드 조기경보 레이더를 배치했고, 스페인에는 이지스 구축함들을 배치했다. 2016년에는 루마니아에 미사일방어 기지를 가동했고, 폴란드에는 2018년 가동을 목표로 기지를 건설 중이며, 독일에는 지휘통제센터를 건설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이를 나토의 동진(東進)으로 간주하여 2013년 최신형 단거리 미사일인 ‘이스칸데르(사거리 500km)’를 서부 국경지대 및 역외영토인 칼라린그라드에 배치했으며, ‘보레이급’ 최신형 핵잠수함(24,000톤급)과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 ‘불라바’를 개발하는 등 핵군사력의 현대화를 서두르고 있다. 즉, 미러 간에도 ‘작은 신냉전’이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미국의 미사일방어 체계를 수용했다는 이유로 독일, 스페인, 터키, 폴란드 등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거나 자국민의 단체여행을 금지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미국이 NATO 동맹조약에 의거하여 유럽에 군사기지들을 건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군사장비들을 반입하거나 철수하는 것도 주권국 간에 서명된 한미 동맹조약(1954)과 주한미군지위협정(1967)에 따른 일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는 “상호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 그리고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許與)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제2조 제1항은 “미합중국은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따라 대한민국 안의 시설과 구역의 사용을 공여 받는다“고 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러시아가 나토조약에 의거한 주유럽 미 군사력을 조정하는 것에 간섭하지 않듯, 중국도 한미동맹이나 미일동맹에 따라 아시아에 군사력을 주둔시키는 것에 간섭해서는 안 되며, 이는 중국이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서부에 주둔하던 대륙간탄도탄들을 흑룡강성으로 이동시키거나 한반도와 일본을 감시하는 레이더들을 배치함에 있어 주변국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 것과 같은 안보주권 사안들이다. 때문에,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국 때리기’에 나선 것은 미국의 동맹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간섭이자 도전이기도 하다. 

 

  한미동맹은 한국안보에 있어 사활적인 존재이며, 북핵 위협이 가중될수록 동맹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한국은 중요한 이웃인 중국과도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발전시키기를 희망하지만, 한중관계는 사드 갈등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훼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국민은 한미동맹의 한 축인 미국이 중국의 ‘사드 때리기’에 대해 외교적 수사가 아닌 행동으로 대응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2017년 3월 17일 한국을 방문한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윤병세 외교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비이성적이고 부적절한 대한(對韓) 사드 보복”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지만, 이 정도로 중국이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이 한국에 대한 중국의 일방적 행동들을 방치한다면, 이는 한미동맹의 약화를 가져옴은 물론 전 세계에 대한 미국 동맹정책의 신뢰성을 실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 국민은 4월초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의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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