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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보호 장치는 필요한가? -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중심으로-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2월23일 19시54분
  • 최종수정 2017년02월23일 19시54분

작성자

  • 이상빈
  •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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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자본주의의 근간은 경쟁을 통한 효율의 극대화이다. 이는 기업경영권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현 경영진의 경영성과가 나쁘면 주인인 주주들이 이들을 교체해야 한다. 그러나 뿔뿔이 흩어진 주주들로서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적대적 인수합병이라는 제도가 존재한다. 여기서 적대적이란 현 경영진의 의사에 반해 인수합병이 시도된다는 의미이고 주주입장에서는 주주 친화적 인수합병이다.

 

삼성물산과 엘리엇의 사태를 지켜 본 사회일각에서는 투기적 국제자본에 대항해 알토란같은 한국기업을 방어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즉 외국에도 있는 차등의결권 내지 포이즌 필과 같은 경영권보호 장치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구글과 같은 일류기업에도 차등의결권이 있고 일본 및 유럽국가에도 보편화된 경영권보호 장치가 한국에만 없다고 하니 일반국민들도 의아해 하는 분위기이다. 만일 경영권보호 장치가 국제 표준이라면 우리는 이를 당연히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도입하기 전에 왜 외국에 존재하고 있는 지 우리는 그 배경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외국에서는 이사회가 주주들의 이익을 충실하게 대변하고 있다.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한 이사들은 어김없이 주주로부터 손해배상소송을 당한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재벌 전체의 의사결정을 지배하는 재벌총수가 있고 재벌총수들은 전체 주주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경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이익상충의 대표적인 유형이 자기거래로 계열회사가 다른 계열회사를 위해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는 경우이다. 총수의 입장에서는 다 같은 계열회사이니까 문제가 없지만 경제적 불이익을 당한 계열회사의 소액주주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셈이다.

 

또 다른 이해상충의 경우는 재벌총수의 의사결정에 의한 계열회사 간 합병이다. 이는 독립된 당사자 사이의 진정한 교섭에 의한 합병이 아닐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계열회사 간 합병은 소액주주의 이익 희생 위에 재벌총수의 사익추구 행위로 볼 수 있다. 계열회사 사이에 직접거래가 부당하게 일어나면 우리나라 법인세법은 이를 처벌하기 위해 부당행위계산부인 규정을 두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계열회사 간 합병은 독립된 회사 간의 합병과 구별되어야 한다. 

 

또 외국에서 경영권 보호 장치를 두는 목적은 현 경영진이 자신들을 위해 참호를 구축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적대적 인수합병이라도 주주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현 경영진이 이를 방해해서는 아니 되고 포이즌 필과 같은 경영권 보호 장치를 통해 더 큰 협상력을 가진다. 즉 포이즌 필과 같은 보호 장치가 있으면 주주에게 유리한 인수합병조건을 정할 수 있고 이러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포이즌 필을 제거해 인수합병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주주 친화적 경영이 정착하지 못한 사례로 우리나라의 낮은 배당성향을 들 수 있다. 기업의 적정배당에 대한 이론은 없다. 다만 원칙이 있다면 기업이 가지고 있는 투자기회의 존재여부에 따라 배당이 달라져야 하다는 것이다. 투자기회가 많다면 배당금 대신 투자해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이를 통해 주가가 상승되고 주주가치는 극대화된다. 그러나 투자기회가 없다면 이를 주주들에게 배당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주가가 주당자산가치보다 작은 기업이 다수 존재한다. 이런 기업들은 배당을 늘리면 주가가 주당 자산 가치만큼 상승할 여지는 많다. 

 

경영권보호 장치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이사회가 얼마나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또 우리나라의 독특한 재벌구조도 고려해야 한다. 외국에 있으니 우리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양복 입고 갓 쓰는 모습에 비유할 수 있다. 기업 가치를 높이지 못하는 경영진을 법으로 보호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경쟁의 물꼬는 터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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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상법개정안이 뜨거운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액주주가 찬밥신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법개정은 만시지탄이라는 주장과 상법개정이 이루어지면 투기자본의 독무대가 된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가장 바람직한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정답은 없다. 이는 마치 국가권력구조를 대통령제 또는 내각책임제 중 무엇이 좋은지에 대해 답이 없는 것과 같다. 미국과 영국 모두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모범국가이지만 미국은 대통령중심제 그리고 영국은 내각책임제를 택하고 있다. 제도  라는 형식이 민주주의라는 실질을 결정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 중심제 또는 내각책임제를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결정하듯이 기업지배구조도 기업의 주인인 주주가 결정하면 된다. 국민이 모여 구성된 국가인 경우 1인 1표제의 원칙이 적용된다. 그러나 물적 자본에 기초한 기업인 경우에는 1주 1의결권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볼 때 전자투표제의 의무화는 바람직하다. 지금까지 기업지배구조가 왜곡된 이유는 기업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주주총회의 무력화에 있다. 주주들이 기업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이유는 시간적 및 공간적 제약 때문이다. 주주총회가 같은 시간에 열리는 경우도 있고 또 다른 시간에 열린다 해도 현실적으로 모든 주주들이 참여할 수 없었다. 주주들이 모두 참여할 수 없으니 1% 내지 2%를 가진 대주주들이 경영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었다.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면 시간적 또는 공간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 굳이 주총에 나가지 않아도 전자투표로 주주들이 기업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주주들이 소액주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마치 대통령선거에서 후보자들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공약을 발표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대주주들이 경영을 잘못하면 이들을 해임하고 새로운 경영진을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 주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재벌 총수가 독단으로 경영진을 구성하면 경영진들이 총수를 위해 일감 몰아주기 등 각종 비리에 협조하지 소액주주는 안중에 없다.

 

재계는 전자투표 의무화로 소액주주들이 활발하게 주총에 참여하면 의사결정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소액주주는 우매하다는 생각이 배경에 깔려 있다. 이는 마치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 개개인이 한 표씩 행사하면 좋은 대통령을 선출할 수 없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기업경영이 대주주의 전유물이 아니고 주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쟁에 의해 결정된다면 기업지배구조는 확연히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국회가 법을 통해 기업지배구조에 간여하는 경우도 없어진다. 이런 점에서 국회는 소액주주들이 기업의사결정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정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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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2월23일 19시54분
  • 최종수정 2017년02월23일 19시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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