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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소통과 한국정치의 선진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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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2월22일 17시08분
  • 최종수정 2017년02월22일 20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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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틀’이 바뀌면 ‘소통의 내용’이 바뀐다. 조직이 그렇다. 정치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다. 내용 자체도 중요하지만, 형식이나 틀, 제도가 내용을 규정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나라의 정치가 어떤 ‘소통의 틀’을 갖고 운영되고 있는지는 중요하다.

 

헌법재판소는 당초 2월24일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변론을 종결하겠다고 밝혔다가 사흘을 연장해 27일에 종결하기로 최종 확인했다. 그러나 선고는 3월 9일이나 10일쯤 나올 가능성이 높아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 얘기는 탄핵이 인용될 경우 대선이 5월 초순쯤 치러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선 정국에 돌입한 이 시점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을 겪은 우리가 던져보아야 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우리는 한국 정치의 소통의 틀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구체적으로는 다음번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어떻게 국민과, 참모와, 야당과 소통해야 하는가. 한국 정치의 미래에 대한, 선진화에 대한 질문이다.

 

출사표를 던진 대선 후보들이 한 목소리로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부족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들이 앞으로 소통의 틀을 어떻게 바꿔가겠다는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해 보인다. 지금이 대통령의 소통의 틀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해볼 때다.

 

첫째로 ‘대통령의 공간'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세상 속‘으로 나와야 한다. 구중궁궐의 느낌을 주는 지금의 청와대 집무실이 아닌, 시민들이 오가는 ’대로변 건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참모들과 한 건물에서 일하며 대화하고 토론해야 한다. 대통령의 집무실과 비서실이 같은 건물에 있는 미국의 백악관처럼 말이다. 

사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조선왕조 시대도 아닌데, 선거를 통해 국민에게 권한을 잠시 위임받은 대통령이 구중궁궐 속에서 ‘폐쇄적으로’, ‘불투명‘하게 근무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우리가 아는 정치 선진국들 중에 이런 경우는 없다. 

 

이번에 워낙 ‘소통의 바닥’을 경험했으니,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 본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볼 수도 있겠다. 대선 후보가 참고할만한 케이스도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다. 그가 기존의 시장실 대신, ‘블룸버그의 불펜’이라고 불린 넓은 홀의 중앙에 앉아 직원 51명과 함께 일했던 것처럼, 대통령이 참모들과 한 공간에서 일하는 혁신적인 소통의 틀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개혁 의지가 있는 후보라면 한번쯤 시도해볼만 하다. 

 

뉴욕시장을 3연임(2002~2013년)한 블룸버그는 시장에 당선되자 기존의 시장실 대신 2층의 넓은 홀을 시청 직원 51명과 함께 사용했다. 블룸버그는 홀의 중앙에서 다른 직원들과 같은 크기의 책상에 앉아 일했다. 제1 부시장은 그와 1~2미터 정도 떨어져 바로 옆에 앉았다. 이 '블룸버그의 불펜'에서 그는 간부회의를 열고 다양한 직급의 직원들로부터 보고도 받았다.

 

물론 부작용도 있을 수 있고, ‘쇼’ 아니냐는 비판도 나올 거다. 미국에서도 그랬다. 비판은 감수하면 되고, 부작용은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대통령 전용 회의실을 만들어 대통령이 혼자 숙고할 시간이 필요하거나 보안이 필요한 회의를 할 때는 그곳으로 가면 된다. 현 한국 정치 전체로 보면 실보다는 득이 더 클 것이다. 

어쨌든 ‘한 공간 근무’가 과하거나 시기상조라면, 최소한 ‘한 건물 근무’라는 대통령의 공간 소통의 틀은 이번에는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는 ‘대통령의 시간'이다. 대통령이 누구를 몇 시에 만나는지가 하나하나 국민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그런 틀이 만들어진다면, 소극적으로는 ’제2의 최순실‘에 의한 비선실세 국정농단을 억제할 수 있고, 적극적으로는 장관이나 참모들, 그리고 각계각층 국민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억지로라도 자주 하게 만들 수 있다. 대통령이 매일 무얼 하고 있는지 국민들이 다 안다는 사실 자체가 대통령을 ’압박‘할 테니 말이다. 

 

알려지는 방식도 중요하다. 청와대가 유리한 것을 골라 보도자료로 공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건 일본을 벤치마킹하면 좋겠다. 기자들이 체크해 보도하는 거다. 일본에서는 언론사의 정치부 '총리 당번 기자'들이 총리 집무실 직통 엘리베이터 앞에서 '뻗치기'(무작정 기다리는 것을 의미하는 언론계 은어)를 하며 1년 내내 밤늦게까지 총리의 동선과 출입 인사들을 지켜보고 기사화한다. 매일 매일 총리가 전날 만난 사람들의 명단이 신문에 공개된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상황을 총리가 원할 리 없다. 그래서 가끔 총리실 등 정치권에서 보안문제, 국익 등을 거론하며 “너무한 거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민과 지식인 사회의 압력이 이런 ‘시간 공개의 틀’을 유지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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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정치의 소통의 틀은 근래에 오히려 후퇴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소통의 주요 수단 중 하나인 기자회견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질의응답은 피했다. 국민과의 소통뿐 아니라 자신의 각료나 참모와의 소통도 거의 하지 않았다. 정권 출범 초기 후배 기자들로부터 장관들이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럴 리가...”라며 믿지 못했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은 모두가 놀랐던 그대로다. 장관은 물론 청와대의 수석비서관들조차 근무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대통령과 독대해 토론해보지 못한 사람이 다수였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주류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는 청와대 비서실과 정부 각 부처에 대한 언론의 접근이 상당 부분 차단되었다. 기자들이 청와대 비서실에 찾아가 실무 참모들과 대화하고 취재하던 관행을 금지했고, 이는 정부 부처들에게까지 확산됐다. 필자는 조선일보에서 일하던 1990년대에 담당 부처였던 지금의 기획재정부나 공정위 등의 실국장 방은 물론 실무 과 사무실들을 언제든지 자유롭게 출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때는 간부는 물론 젊은 사무관들과도 정책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편하게 나눴었다. 

 

또 2000년대 초 어느 날 청와대 비서실을 찾아가 비서관들과 행정관들의 사무실에서 자유롭게 대화했던 것도 뚜렷이 기억난다. 그 때는 그랬다. 공무원들은 불편했겠지만, 대통령도 ‘공개’와 ‘개방’, ‘소통’이 달갑지 않고 껄끄러웠겠지만, 그 때는 그게 가능했던 ‘소통의 틀’이 존재했었고, 정치 전체로 보면 실보다 득이 훨씬 컸다.

 

최순실 사태로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하늘을 찌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언론과 씽크탱크, 전문가들은 한국 정치의 바람직한 ‘소통의 틀’을 제시해야 하고, 대선 후보들은 자신의 ‘소통 공약’을 발표해야 한다. 후보들은 대통령이 되면 어떤 ‘소통의 틀’을 만들어 국민이나 언론과 대화하고 참모나 장관들과 토론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약속해야 한다. 

 

다음 대통령 시절부터는 이런 모습을 보고 싶다. 대통령이 집무실이 있는 정부청사나 대로변 건물로 출근하는 모습. 한 건물에서 청와대 참모들과 일하며 수시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모습. 그 건물의 대통령의 집무실로 누가 언제 들어가 대통령을 만나는지 언론사 기자들이 일일이 확인해 세상에 공개하는 모습.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매주 열어 기자들의 질문과 비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국민에게 이야기하는 모습...

지금 우리에게는 무척 생소하지만, ‘선진 정치’는 그런 모습이다. 그렇게 소통하며 애쓰는 대통령을 본다면, 혹여 그가 어려운 국가적 문제에 ‘정답’을 내놓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더라도 국민은 괜찮다며 기다려줄 수 있을 것이다. ‘선진 정치’는 그렇게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에서도 국민을 위로해주고 통합해주는 것이다. 

 

정치에서 ‘소통의 틀’은 정말 중요하다. 틀은 내용을 바꾼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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