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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망한다면 그것은 블랙리스트 때문이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2월07일 15시30분

작성자

  • 김진해
  •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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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과 공직자 정신

 

탄핵이 현실화되는 것 같다. 거기에 따라 대통령 선거 일정이 결정된다. 대선 후보들은 이미 달리고 있다. 그러나 탄핵은 기각될 수도 있다. 그래도 대선만 늦춰질 뿐 선거는 실시된다. 국민들의 관심사는 대선에 쏠려있다. 아니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연일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탄핵과 연관된 특검의 수사상황이며, 대선주자들의 행보다. 이래저래 국민들은 살기도 힘든데 보고 싶지 않은 얼굴들이 자주 등장하여 거짓말을 해대니 피곤할 뿐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사기꾼은 어떻게 사람들을 등쳐먹을 가를 궁리하고 정치인은 어느 줄에 서야 유리 할지를 고민하며 이 눈치 저 눈치 살핀다. 음식점 주인들은 어떻게 해야 손님이 많이 올지를 고민한다. 취업준비생들 역시 어느 회사에 취직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그러나 본질은 자신의 이익과 행복추구이다. 좀 더 확장하면 나의 가족과 자신의 공동체 정도이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삶을 산다. 그러나 이때 충돌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 자신의 이익 즉 사익과 공익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있다. 사익을 버리고 공익을 생각하면 견리사의(見利思義)의 정신이요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 바칠 각오로 임할 때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정신이다. 이를 실천하는 마음의 동력이 양심이다. 양심은 인간의 본성 이며 특히 공직자는 고귀한 양심의 소유자여야 한다. ‘견리사의’의 정신과 양심을 지키는 일이 어렵다면 공직자 되기를 포기해야 한다.

 

인사의 원칙

 

역대 정권에서 양심을 찾기 어려웠다. ‘견리사의 견위수명’의 정신을 가진 공직자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사익 추구와 인사전횡은 비단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청와대 양모 비서관과 당시 문화부 유모 차관과의 갈등을 목도한 바 있다. 대표적인 예였다. 이명박 정부 때는 어땠는가? 역시 영포라인이니 왕차관이니 해서 인사 문제로 떠들썩했다. DJ나 YS정부 때도 큰 소동이 벌어졌었다. 이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이 있다. 아니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사람은 능력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돼야 한다. 인사의 대원칙이다. 집안의 가장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가족들의 삶이 달라진다. 참치잡이 배의 선장에 따라 어획량이 달라지며 최고경영자의 능력에 따라 회사의 성패가 갈린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러니 사람을 선택하고 뽑는 인사의 문제가 어찌 중요하지 않다고 할 것인가.

 

항상 국민들은 실망한다. 인사가 인사권자의 입맛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적과의 전쟁에서 무공을 세우거나 외교적으로 큰 역할을 수행했을 경우 임금은 그에 마땅한 상을 내린다. 관직과 토지와 노비들이리라. 신상필벌이 필요하다. 그러나 신상필벌의 기준이 중요한 것이다. 인사의 기준이 중요한 것처럼. 기껏 만들어 놓은 공명정대한 기준과 원칙과 절차들이 청와대 어느 누구의 한 마디에 좌지우지된다면 어찌 공정한 인사라 할 것이며 정당한 신상필벌이라 할 것인가?

 

문화의 가치


현 정부에서 유독 문제가 불거진 부분이 문화였다. 문화부문 기관장 선임이 순조롭게 진행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국립오페라단, 국립극장, 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게임물등급위원회, 체육인재육성재단, 국민체육진흥공단,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등 유독 문화체육계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문화계만 좌파, 우파를 구분하고 피아를 구분하고 충성심 점검을 하느라 시끄러웠을까?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가 문화를 지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문화는 지배당하지 않는다. 문화의 기본은 자유정신이다. 자유정신의 본질은 뒤집기다. 삐딱한 시선으로 사물을 보고 세상을 조롱하고 권력을 우습게 아는 오만함에 있다. 만일 문화예술이 권력에 순종한다면 그것은 죽은 문화다. 반동과 반골정신이 예술의 본질이다. 정치는 그런 예술의 본질을 싫어한다. 아니 기득권과 지배층은 예술의 본질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순종적인 예술을 좋아한다. 말하자면 기생이 추는 교방춤 같은....

 

나라가 바로서려면 정치는 문화를 경외하고 정치인은 예술가들을 존중하는 자세부터 배워야한다. 한낱 문화예술인을 향연을 위한 광대나 유흥업소의 접대부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들이야말로 속물이며 함량 미달이다. 그런 정치인과 공직자는 추방되어야 한다. 정치인과 공직자의 문화에 대한 소양이 매우 중요하다. 모든 시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릴 적부터 문화와 예절을 가르치지 않는다. 가르치기를 포기해왔다. 잘못된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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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정치다


교양인은 문화적 품격이 기본이다. 시민들을 품위있는 교양인으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정신인 전인교육이 중요하다.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운 성장을 중요시하는 교육이다. 문사철리(文史哲理)의 지식과 예체능의 몸과 신체와 감각을 동시에 성장시켜야한다. 고대 중국의 시서예악(詩書禮樂)의 정점은 악(樂)이다. 학문의 최고의 경지는 예술로 완성된다. 모든 것의 정점은 예술이다.

 

우리의 교육은 초등학교부터 예체능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대입 때문에 예체능 교육이 소홀해져서는 안된다. 머리만 발달한 인간들의 병약한 모습을 보라. 몸과 기교만 발달한 우매한 인간들을 보라. 그들이 건강한 사람들인가. 인간은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생명체로서의 동물이면서 지존인 이유는 예(藝)와 술(術)로 미(美)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생각과 감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동물이 인간이며 이는 하급 동물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성이다.

 

정치는 더 이상 문화예술을 능멸하지 말아야 하며, 대통령의 조건은 문화예술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문화예술의 기관장에 그 분야의 전문가를 기용해야 한다. 그들의 덕목은 전문성, 도덕성이다. 정권의 실세들에게 말한다. 권력의 무상함을 잘 알고 있겠지만 권력을 잡은 동안 문화예술계를 만만하게 보지마라. 탄핵이 인용된다면 문화계의 블랙리스트에 기인한 바가 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향후 어떤 정권도 이따위 치졸한 짓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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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2월07일 15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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