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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정보공작(disinformation)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2월05일 18시22분

작성자

  • 김학수
  •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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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참으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들 사이의 시간적, 공간적 갭을 줄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기재(機材)가 발달하면, 그들 사이의 갈등도 줄어들고 평화가 오리라고 믿었다. 그 기재를 통해 정직하고 정확한 담론이 교환되면서 우리는 서로 믿을 수 있는 사회(trust society)를 건설하리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그 기대는 완전히 빗나가고 있다. 

 

믿을 수 있는 사회란 남을 쉽게 믿고 싶은 나의 성향(credulity)과 남 또한 충분히 믿어도 될만한 근거(credibility)가 가득하고, 그래서 누가 보더라도 믿음(trust)이 넘치는 공동체가 형성된 경우다. 그런 믿음의 공동체는 구성원들 사이에 오고 가는 정보가 정직하고 정확할 때 가능해진다. 커뮤니케이션의 진정성(眞正性)이 건설적인 공동체 형성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커뮤니케이션 기재가 빠르게 발달하는 정도만큼, 오히려 그것에 담기는 진정성은 급감하는 상황이다. 예컨대, 진정성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전통적인 유력매체의 ‘뉴스’마저 정보공작(disinformation)의 수단으로 비춰지고 있다. 

 

심지어 국가 최고의 ‘뉴스메이커’인 대통령마저 정보공작에 음모론을 주장하는 실정이다. 탄핵 궁지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은 두 번에 걸친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지휘하던 검찰을 향해, 최순실과의 경제공동체 관련해서 “완전히 엮은 것이다”, “엮어도 너무 어거지로 엮은 것이다” 등의 표현으로 ‘혐의’ 이상의 정보공작을 주장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폭로와 비판 관련해서는 “그 동안 진행과정을 추적해보면 오래 전부터 기획된 것이 아니냐는 점을 지울 수 없다”고 음모론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한편 국내 유력매체 뉴스의 진정성을 무참히 무너뜨린 대표적 사건이 송희영 조선일보 전(前) 주필에 대한 배임수재 및 변호사법 위반 관련 검찰 기소다. 본인도 인정하고 성찰하고 있다시피, 독자의 입장에서는 취재원(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초호화판 접대들을 받은 게 문제의 핵심이다. 그런 상황에서 독자는 그가 쓴 뉴스(칼럼)의 정보공작에 놀아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역시 “저를 억지로 끼워 넣고…사생활을 대거 언론에 흘리며…국정농단 세력의 치밀한 기획과 지시에 의해 자행되었다”고, 정보공작과 음모론을 강변하고 있다.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과 조선일보 (前)주필이 이러할진대, 대한민국에서 유통되는 모든 정보는 진정성이 거의 없는, ‘음모’와 ‘정보공작’에 의해 날조된 산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가.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면, 이런 총체적인 불신(不信)의 정보가 전세계에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해킹과 가짜뉴스 유포를 통해 러시아가 트럼프 당선을 도왔다던지, 이제는 그를 옥죄기 위해 증명되지 않은 추한 정보, 즉 ‘콤프로마트(kompromat)’를 흘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또한 언론인을 지구상에서 가장 부정직한 인종(“among the most dishonest human beings on earth”)으로 맹비난하고 있다. 정보의 출처와 전달자 양쪽 모두가 정보공작의 도가니로 몰리는 형국이다. 믿고 판단할 수 있는 기반이 실종된 사회는 분명 민주주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기술의 발달로 비단 권력자만이 아니라 일반인 누구나 정보를 만들어서 배포하는 시대가 되었다. 원론적으로 인간의 아이디어 창작능력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정보의 범위는 한계가 없다. 엄격하게 말해서 픽션처럼 가짜뉴스도 창작력의 산물이다. 문제는 그것이 상대방에게 흠집, 특히 도덕적 추락을 야기할 목적으로 어떤 악의(惡意)를 갖고서 만들어지고 유포될 때다. 따라서 음모와 정보공작은 병존하며, 그렇게 만들어진 불신의 정보가 만연하면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매사 의심의 세계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로 인해 공동체 운영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이런 공작적 정보, 예컨대 가짜뉴스를 걸러내지 못하는 이유로 흔히 인터넷 세상에서 게이터키퍼(gatekeeper)가 사라진 것을 거론한다. 즉, 본인을 제외하고, 자신의 정보를 검토하고 유포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이른바 수문장(守門將)(들)이 축소되거나 없어졌다는 점이다. 본래 게이터키퍼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사회심리학의 태두 중 하나인 Kurt Lewin이다. 그는 음식재료가 가든에서 생산되어 시장을 거쳐 식탁에 오르기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선택을 결정하는 주부의 역할을 게이터키퍼로 명명했다. 이것이 미디어에서 최종 뉴스로 선별되기까지 다단계의 데스크를 거쳐야 하는 저널리즘에 활용되면서 뉴스정보의 진정성 확보가 강조되었다. 그러나 이제 누구나 미디어를 소유할 수 있는 1인 미디어(예, 블로그)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런 다단계 선별과정은 자연스럽게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정성 있는 정보가, 뉴스가 유통되고, 그로 인해서 믿을 수 있는 공동체가 형성되고,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훨씬 더 건설적인, 생산적인 사회를 구축할 수 있겠는가? 이를 위해 두 가지 주어진 조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아이디어와 언어(language)은 서로 완전히 독립적이고 별개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문명사는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의 발명(최근 사례, 컴퓨터 언어)으로 점철되어 있다. 둘째는 아이디어가 언어(말과 글)로 전환되면 곧바로 객관화(objectification)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언어적 표현도 이미 공유될 수 객관성을 갖추는 것이며, 나아가 그것이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처럼 어떤 물성(materiality)을 가진 것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제 결론은 명확한 것처럼 보인다. 더 이상 복수의 게이터키퍼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모든 시민 각자의 언어에 대한 공적, 객관적 책임은 훨씬 더 무거워졌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성(眞正性)을 갖춘 (말과 글의) 언어사용이 얼마나 절실하게 요구되는지 간파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어릴 적부터 그런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음모와 정보공작용 댓글류(類)의 무책임한 언어를 더 장려하고 있지는 않는가? (예, 대선정국). 참으로 새로운 도전에 본질적으로 대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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