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7 대선 진단: 북한·외교·안보 분야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1월22일 17시56분

작성자

  • 김태우
  • 前 통일연구원 원장, 前 국방선진화추진위원

메타정보

  • 45

본문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안보위기

 

  닭은 새벽이 되면 천계(天鷄)의 울음소리로 인간세상의 새벽을 열어주는 고마운 동물이다. 정유(丁酉)해를 알리는 붉은 장닭의 울음소리는 들렸지만, 한국의 새벽은 좀처럼 밝아오지 않는다. 선창에 난 구멍으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도 방향타를 잃은 대한민국호는 어둠 속에서 갈 지(之)자 표류를 계속한다. 새 조타수가 되겠다고 자청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들 중에서 나라를 구할 한국판 잔다르크가 나올 수 있을까?

 

 이들은 과연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안보위기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것일까? 이대로 가다가는 국정농단 사건이 안보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걱정하고 있을까? 진실로, 2017년은 나라의 명운을 결정짓는 분수령적인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대통령이 겪고 있는 사태의 시종(始終)을 되돌아보면 안타까 운 대목들이 많다. 옛 성현들의 가르침 중에는 “유능한 지도자도 현능(賢能)을 멀리하면 실정을 하고 평범한 지도자도 용인(用人)을 잘 하면 선정을 펼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논어(論語)는 “유능한 지도자는 마음 속에 숨겨 둔 자신만의 생각(有意), 자신만은 예외라는 고정관점(固化), 자신의 존재만을 과신하는(有我) 등과 결별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어떤 노래의 가사는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고 읍조리고 있다.

 

 박 대통령이 성현들이나 논어의 가르침을 실천했더라면 또는 노래 ‘가시나무’의 가사 한 대목만을 제대로 음미해봤더라면, 오늘의 탄핵사태를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천을 둘러싼 집권당의 패거리 싸움, 그로 인한 유권자의 외면과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 최순실 게이트의 부상, 촛불 시위, 집권당의 분열,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 등 작년 후반부터 이어진 일련의 과정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 수석들이 대통령을 거의 만나지 못하고 비서실장이 일주일에 한 번도 독대하지 못하는 불통 속에서 최순실이라는 괴물이 무럭무럭 자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을 사랑했던 국민은 실망했고, 특히 고(故) 박정희를 존경했던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에 오버랩되는 박정희와 육영수 여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더욱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한다. 필자 역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의 권한정지 이후 벌어지는 대선게임을 보고 있노라면 이대로는 안 된다는 독백을 금할 수 없다. 새로운 조타수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박 대통령의 모든 것을 반대하고 나서는 것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여야(與野)의 잠룡들이 원칙있는 대북정책, 북핵 제재, 개성공단 폐쇄, 통진당 해산, 역사교과서 개정, 사드(THAAD) 배치 결정, 한일 위안부 합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 박근혜 대통령이 추구했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기세이고 때 아닌 전작권 환수나 모병제까지 거론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촛불시위에 나온 국민 모두가 박 대통령이 펼친 모든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아닐진대, 다시 말해 촛불 시위는 기본적으로 최순실 게이트를 규탄하고 대통령의 탄핵을 원하는 사람들의 분노의 표현일 뿐인데, 촛불민심을 빙자하여 박근혜 정부가 펼친 외교안보 정책과 국제합의까지 모조리 폐기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특정한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는데 유리한 인기영합주의에는 부합할지 모르나, 대한민국이 안정과 번영을 위해 가야할 정도(正道)는 거리가 멀다. 

 

  박 대통령이 추구한 원칙있는 대북정책, 북핵 제재, 인권압박, 확고한 안보 정책 등은 엄중한 안보상황과 북한정권의 호전성을 감안할 때 불가피하게 유지‧계승되어야 할 대북 기조들이다. 

 

 역사교과서 개정, 통진당 해산, 전교조 법외노조화 등 국가정체성 확립을 위해 펼친 일련의 정책들은 과거 남성 대통령들이 엄두내지 못했던 것으로서 대통령의 결단이 없었다면 시도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최순실 사태를 빌미로 이런 정책기조들이 일순간 무너진다면, 그렇지 않아도 악재(惡材)들에 둘러싸인 대한민국은 외교적 고립과 안보 파탄 속에 왜소화와 주변부화가 심화되어 외교안보 위상을 상실한 동북아의 소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 

 

북핵 위기와 중국의 이중 플레이  

  

  한국을 포위하고 있는 악재들 중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북핵 문제이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고도화는 금년에도 쉼 없이 강행될 것이 분명하고, 조만간 핵무기 실전배치라는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예정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7년도 신년사에서 가장 강한 의지를 담은 부분도 핵·미사일 고도화를 지속하겠다는 부분과 국제 제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부분이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대륙간탄도탄(ICBM)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단계”라고 공개하고 ‘국방력 강화의 획기적 전환’을 강조했으며, “70일 전투와 ‘200일 전투를 통해 반공화국압살책동을 격퇴했다”고 자평하면서 “2017년에도 전민총돌격전으로 맞서 자력자강의 위대한 동력으로 사회주의의 승리적 전진을 다그치자”고 주문했다. 조만간 북한이 수십 개의 원자탄, 증폭분열탄, 수소탄 등을 실전 배치한 중견 핵보유국으로 부상하는 상황임에도, 한국의 대선주자들은 이 문제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중국이 영향력을 발휘하여 북핵을 해결해 줄 가능성 역시 난망(難望)이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가 결의 1695호에서 2321호에 이르는 일곱 개의 대북제제 결의를 채택하는 동안 공식적으로는 유엔의 북핵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뒤로는 북한정권의 생존을 지원하는 이중플레이를 지속해 왔으며, 신냉전 구도 하에서 중국이 이러한 이중적 자세를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시 말해, 중국이 미국과 패권경쟁을 벌이고 중러 전략적 제휴를 통해 미일동맹을 견제하는 동북아의 대결구도 하에서 북한은 중국에게 있어 전략적 가치를 가진 유일한 동맹국이어서 중국이 북한정권과 체제의 생존을 지원하는 이유는 매우 구조적이다. 이렇듯 중북 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핵공모(核共謀)’ 하에서 북한은 중국이 깜박거려주는 청신호를 쳐다보면서 핵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중국의 사드 몽니와 외교적 고립 

 

  중국의 ‘사드 몽니’도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대국 심리에 도취된 중국에게  “북핵을 방조하면서 왜 한국이 방어무기를 배치하는 것을 시비하는가”라는 합리적 항변은 이미 통하지 않는다. 종주국 노스탈자에 젖어버린 중국에게 “일본에 배치된 미군의 레이더에는 침묵하면서 왜 유독 한국의 기본적인 생 존 조치에 반대하는가”라고 반문해봤자 달라질 것이 없다. 지난 30여년 동안의 폭풍성장에 힘입어 경제적‧정치적‧군사적 대국굴기(大國崛起)에 성공한 중국에게 있어 최대 관심은 최대 경쟁국인 미국의 대중(對中) 포위망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며, 대륙에 연결된 반도국가로서 과거 조공국이었던 한국은 가장 만만하게 보이는 ‘악한 고리’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즉 한국을 미국의 대중 포위망으로부터 이탈시키기 위해, 중국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초기에 걸쳐 한국을 극진하게(?) 대접했고, 같은 이유로 미군의 한국내 사드 배치를 막기 위해 한국에게 무차별적 압력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은 외교대화 단절, 학술교류 차단, 한류 스타의 중국 텔레비전 출연 금지, 한국기업에 대한 느닷없는 규제 등 치졸한 압박조치들을 가하는데 이어, 지난 1월 9일에는 폭격기까지 동원하여 한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ADIZ)에서 노골적인 무력시위까지 펼쳤다.   

 

  이런 가운데 한일관계마저 개선의 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일 간에는 역사문제와 영토문제를 포함한 미해결 사안들이 산적해 있지만, 북핵 문제의 악화나 중국의 팽창주의적 대외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상호 협력해야 할 사안들도 적지 않다. 때문에 지금은 양국 모두가 사태의 악화를 초래할 조치들을 자제하면서 다투어야 할 일과 협력해야 할 일을 구분하는 ‘인내와 냉정’이 필요한 시기이며, 특히 역사적 가해자였던 일본은 더욱 그러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방향으로의 노력은 양국 모두에서 미흡한 상태이며, ‘북핵 위협 대처를 위한 한일공조’는 허공을 떠도는 메아리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제안을 언급하는 것은 여전히 ‘친일 매국’으로 매도당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며, 그 과정에서 냉정한 국익계산은 실종되고 있다. 

 

  한러관계도 냉각된 상태다. 푸틴의 집권이후 러시아는 군사적 초강대국 복귀를 위해 절치부심하면서 핵군사력 현대화, 크리미아반도 합병, 시리아 내전 개입 등으로 미국과 새로운 냉전을 벌이고 있으며, 나토(NATO)의 동진(東進)에 반발하여 2016년말 폴란드에 인접한 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에 사거리 400km의 미사일을 배치했다. 

 

 이런 러시아가 중국과의 전략적 제휴(strategic collaboration)를 통해 미일동맹에 대항함은 당연한 일이며, 동시에 러시아가 한국 중시 대한반도 정책을 청산하고 남북한 등거리 정책으로 전환한 것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현재 러시아와 중국은 ‘사드 반대’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러 정상회담(2008년 이명박-메드메데프, 20012년 이명박-푸틴, 2013년 박근혜-푸틴)을 통해 협의해온 협력사업들은 대부분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이렇듯 한국 외교가 시시각각 고립 속으로 빠져들고 있지만, 현재 가열되고 있는 대선 게임에서 이런 문제는 주요 의제로 부상되지 않고 있다. 

 

트럼프 시대의 한미동맹과 사드(THAAD) 문제  

  

  한미동맹을 미국이 주도하는 일방적인 동맹에서 보다 대등하고 한국이 더 많은 주도적 역할을 하는 동맹으로 전환하는 것은 온 국민의 염원이었고, 지난 수십년 간의 경제성장으로 이 방향으로의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북핵 문제의 부상과 함께 한국안보의 동맹 의존도는 오히려 심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한스 모겐소(Hans Mogenthau)가 지적하듯 핵국의 위협을 받는 비핵국권에게는 ‘패배 또는 굴복’ 이외의 선택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러한 상황에 처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미국이 방위공약과 핵우산(nuclear umbrella) 또는 확대억제(extended deterrence)를 통해 북한의 전쟁도발과 핵공격을 억제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며, 다라서 한미동맹이 무력화되는 경우 한국은 북핵 위협 앞에 일방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한국이 일방적 취약성(unilateral vulnerability) 상태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대응적 핵무장을 통해 스스로 상호 취약성(mutual vulnerability)를 확보해야 하지만, 핵무장을 위해서는 넘어야 하는 장벽이 높고 적시에 핵무장에 성공하여 시간적 공백을 메운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힘을 통한 평화,’ ‘미국으로의 회귀(Pivot to America),' '경제민족주의(Economic Nationalism),' '개입축소 및 실용주의 동맹’ 등을 앞세우고 당선된 트럼프의 동맹정책과 대북기조에는 많은 불확실성과 여백이 남아 있다. 유세기간 동안 및 당선 후 트럼프 당선자의 언행과 인선(人選)을 종합해보면 향후 미국의 안보기조는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통해 중러 전략적 제휴를 약화시키고 중국을 더욱 강하게 견제하는 연러타중(蓮露打中) 또는 통러봉중(通露封中)에 초점이 맟추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한국 및 일본과의 동맹협력도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자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총통과 통화한 것은 중국이 신성시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부정하는, 즉 중국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으로서 트럼프 행정부동안 미중 관계가 험난해질 것임을 예고하기에 충분하다.

 

  북핵과 관련해서는 트럼프의 상충되는 발언들로 인하여 혼선이 남아 있는 상태이나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는 폐기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핵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기조는 대중 압력 강화를 통한 북핵 해결, 북한과의 빅딜, 대북 제재 강화, 선제공격, 레짐 체인지 등 대개 다섯 가지로 예상해 볼 수 있지만, 어느 것 하나도 당장 북핵 해결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기 어럽다.

 

 우선, 현재의 신냉전 대결구도에서 중국이 순순히 미국에 굴복하여 북핵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적으로 통러봉중(通露封中)에 나서게 되면 명목적으로나마 유지되었던 미중 간 북핵공조마저 붕괴될 수 있다.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협상하기를 원하는 북한의 입장은 한국은 물론 미국도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이어서, 미국이 미북 빅딜을 시도할 수는 있어도 원하는 핵해결을 끌어내기는 어렵다.

 

 또한 미국이 대북 제재를 강화할 수는 있어도 중북 간 핵공모(核共謀) 하에서 대북 제재가 북한의 핵포기를 끌어낼 가능성도 거의 없다. 마찬가지로, 대북 선제공격은 주변 동맹국들에게 막대한 부수적 피해나 확전의 위험성을 내포하기 있어서 결행하기가 쉽지 않으며, 미국이 적극적으로 레짐 체인지를 시도하더라도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이어서 당장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처방이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는 적어도 상당기간 동안 한국이 북핵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며, 핵해결까지 국가와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내기 위한 군사적 억제가 중요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정책에도 많은 여백이 남아 있다. 당선 이후 트럼프 당선자 및 주요 안보부서 내정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은 분명하나, 트럼프는 유세기간 동안 나토(NATO), 한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대해 ‘합당한 비용 부담’을 반복적으로 강조했고 “한국이 합당한 방위비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불평은 타당하지 않다.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비의 40%가 상회하는 9,400억 원의 방위비분담금(2016년)을 내고 있는데 이는 GDP 대비 0.068%로서 일본의 0.064%나 독일의 0.016%보다 높다. 또한, 한국은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아프가니스탄 등에 파병하여 혈맹의 역할을 다했으며 유엔의 평화유지군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때문에 트럼프 당선자의 불만은 향후 국방외교를 통해 해소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트럼프 당선자의 발언들과 개인적 성향을 감안할 때, 향후 한국정부가 취하는 자세에 따라 미국 정부의 동맹정책은 한국의 안보기반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급변할 수 있다. 대선에 임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인들은 이런 가능성을 결코 경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드(THAAD)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요격하는 방어무기이며 주한미군 보호와 한국방어를 명분으로 배치될 예정이다. 이론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완벽한 방어무기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사드 배치를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방어무기란 많을수록 안전이 향상되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원칙이 적용되는 무기이며, 사드가 배치되더라도 한국의 방어수준은 북핵의 위협 정도에 비해 턱없이 미흡한 수준일 것이다. 때문에 사드는 방어라는 기능적 측면보다는 동맹의 유지발전을 위한 상징성 측면에서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갈등은 한국경제에 간과할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올 수 있지만, 사드 배치의 번복으로 동맹이 약화되거나 무력화된다면 엄중한 안보위기와 외교적 고립에 미중유의 경제위기까지 겹친 상황에서 안보‧경제‧외교‧통일의 기본 토대가 붕괴할 수 있다. 동맹의 소멸은 한국이 지난 수십년 동안 경제기적을 이루는데 필요한 기본토양인 평화와 안정(peace and stability)의 소멸을 의미할 수 있으며, 1990년 독일통일도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서 성사된 것임을 감안한다면 국민이 염원하는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의 꿈도 더욱 멀어질 것이다. 동맹 소멸시 외국자본의 이탈현상이 시작되고 한국의 증시가 붕괴하는 데에는 수 시간 밖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진실로, 대선 주자들은 사드 문제에 관한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

 

외교‧안보의 정도(正道) 벗어나지 않아야 

 

  자고로, 국가생존 문제는 여야(與野)의 문제도 아니고 이념갈등의 대상도 아니다. 소속정당이나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국가생존을 위한 정석(定石)을 논함에 있어서는 모든 대선 주자들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성패(成敗)와 무관하게 북핵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일을 최우선시해야 하며, 북한의 변화를 선도하고 항구적인 남북상생 구도를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원칙있는 대북정책과 튼튼한 안보’를 이어가야 한다. 북핵을 용인하고 대북지원을 재개하는 것은 당장의 남북경색을 풀기 위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지만, 그러한 상생은 당당하지도 않고 항구적이지도 않기에 인기영합적이라는 평가가 수반된다. 

 

  사드 문제에 있어서는 경중(輕重)과 완급(緩急)을 가려서 발언해야 한다. 사활적인 중요성을 가진 이웃국가인 중국과의 비적대적 우호관계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열성을 다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안보주권’을 침해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일이다. 중국의 사드 몽니는 분명히 그 선을 넘어선 것이다. 한중관계만을 의식하여 한국이 이 선을 양보한다면, 한미동맹과 대일관계에서 더 많은 것을 상실하게 될 것이며 향후 더 큰 국치(國恥)를 예약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중국의 안보주권 침범에 대해 초강력 대응을 보여준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사례를 교훈삼을 필요가 있다. 요컨대, 한국이 동맹을 훼손하면서까지 중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중국이 미국을 대신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는 동맹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때에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며, 한국과 대치하는 북한을 동맹국으로 삼고 있는 중국이 그런 역할을 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다투어야 할 것과 협력해야 할 것을 구분하는 인내와 냉정을 발휘해야 하며, 인기영합을 위해 국제합의를 폐기하자는 식의 선동적인 발언을 남발해서는 안될 것이다. 북핵 위협에 공동대처하기 위한 한일공조는 엄연한 현실적 과제이며, 특히 중국이 북한과의 핵공모를 고수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현 시점에서 동맹의 약화나 무력화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향후 한국정부가 친북(親北)‧공중(恐中)‧혐일(嫌日) 기조로 나간다면, 동맹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급변할 수 있으며, 그것이 한국의 평화와 안정을 훼손하고 외교적 고립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안보 비용과 관련한 트럼프 당선자의 불만과 관련해서는 한국이 이미 충분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음을 알리는 국방외교에 동참하는 것이 대선주자들이 견지해야 할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침몰하는 대한민국호를 구하는 잔다르크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라면 함께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 그것이 국제사회가 존경하는 대한민국, 주변국들이 함부로 넘보지 못하는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선 주자들이 대한민국이 주변부화(marginalization)‧고립화(isolation)‧왜소화(trivialization)되고 있는 현실부터 인식해야 한다. 즉, 내우외환의 안보위기, 외교적 고립, 경제불황, 내부적 갈등과 국론 분열 등으로 시시각각 동북아의 별 볼일 없는 소국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직시하고, 이 흐름을 반전시키는 것이 이 시대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명심해야 한다.(끝)

45
  • 기사입력 2017년01월22일 17시56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