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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군사정보협력협정의 진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12월12일 17시29분
  • 최종수정 2016년12월12일 18시10분

작성자

  • 김태우
  • 前 통일연구원 원장, 前 국방선진화추진위원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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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침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이 체결되었다. 2016년 11월 23일 국방부 청사에서 한민구 국방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가 양국을 대표하여 서명한 것이다. 물론, 이것으로 한일 간 군사정보협력 시대가 활짝 열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일 간에는 여전히 많은 미결사안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있고 서로에 대한 국민감정도 나쁘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북핵 문제의 엄중성이 가중되면서 한국과 일본이 정보협력을 통해 공동의 안보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이 커지고 있다는 점과 그렇다면 정보협력을 포함한 안보협력 문제만큼은 냉정한 안보논리 하에 다른 문제들과 분리하여 다룰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정서가 우선인가, 안보가 우선인가   

 

  한일 양국은 1965년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했다. 기본조약은 합방조약을 무효화했지만 식민통치의 불법성과 일본의 사과를 명시하지 않았으며, 무상 3억 달러 및 유상 2억 달러의 청구권 자금을 제공하기로 합의한 청구권협정도 ‘전쟁에 대한 배상이나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을 명시하지 못하고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청산’이라는 표현에 그쳤다. 대신 일본은 기본조약을 가서명하면서 양국 외무장관 공동성명을 통해 ‘유감과 반성’을 표명했지만, 이후 일본 지도자들의 반복된 망언, 야스쿠니 신사 참배, 우경화 역사교과서 출판 등으로 일본의 사죄는 퇴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한일 양국이 경제교류를 확대하고 서방세계의 일원으로 비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데에는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미국의 권유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그럼에도 이후 한일관계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특히, 아베 정부이후 일본의 우경화, 재무장, 과거사 부인, 전후(戰後)체제 청산 시도, 독도 영유권 시비 등은 끊임없이 한국민의 반일정서를 자극했다.     

  이렇듯 한일관계가 순탄치 않은 중에도 한일 간에 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역시 안보정세 때문이었으며, 특히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북핵이 양국 모두에게 위험한 ‘공통된 위협’으로 인식되면서 군사정보 협력의 필요성이 재부상한 것이다.

 북한은 2009년 4월 대포동 미사일 발사, 5월 제2차 핵실험, 7월 스커드 및 노동 미사일 7발 발사,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등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도발을 계속했다. 이에 양국 국방장관은 2010년 6월 샹그릴라 대화에서 만나 군사비밀보호협정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2011년 1월 양국 국방장관회담에서 ‘실무 협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다음 달인 2월에는 외교국방 2+2 과장급 협의를 통해 문안에 합의하고 2012년 4월 23일에는 가서명을 했으며, 6월 26일에는 국무회에서 가결되었다. 하지만, 이 때 정치권은 국민의 반일(反日)감정을 무시하고 충분하게 알리지 않은 채 추진되었다는 이유로 정부를 질타했고, 비난에 직면한 이명박 정부는 서명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후 한일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고,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관련 발언 이후 일본 국민의 반한(反韓)정서도 크게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도 발생했다. 2012년 7월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과 조세영 외교부 동북아국장이 ‘밀실 추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으며, 필자 역시 유탄(?)을 맞아 통일연구원장직에서 사임해야 했다.

 

 필자는 2012년 8월 23일 통일연구원 홈페이지에 올린 “한일 외교전쟁 조속히 매듭지어야”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고 국군주의 부활을 경계하면서, 그래도 한일관계의 파탄은 막아야 한다는 논리 하에 일본이 독도 및 주변 영해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을 인정하는 대신 한국도 인근 해역의 해상자원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독도 문제를 해결하여 한일관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자고 제안했었다.

 

 제안 내용은 일본이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주변 해역을 공동어로수역으로 정하고 있는 현 상황보다 한국에게 더욱 유리한 것이었지만, 일부 언론은 “일본의 한국 영유권 인정”이라는 전제조건을 거론하지 않은 채 “통일연구원장이 독도자원 공유를 제안했다”는 부분만을 부각시켰고, 당시 통진당의 김선동 의원은 김황식 총리에게 필자에 대한 중징계를 요구했다. 이후 정치권의 시비에 직면하면서 필자는 2012년 10월 원장직을 사임했다. 이렇듯 국민의 반일정서는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추진하는 공직자들에게 언제나 넘기 힘든 장애물이었다.

 

  2016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안보적 의미

 

  이후에도 북한은 핵무력 고도화를 줄기차게 지속하여 2013년에는 제3차 핵실험을 실시하고 두 차례에 걸쳐 ‘우주개발용 광명성3호’라는 미명 하에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했다. 이에 한‧미‧일 심국은 2014년에 ‘3국간 북 핵 및 미사일 위협에 관한 정보공유약정(TISA; Trilateral Information-Sharing Agreement)을 발효시켰다. 이후에도 북핵의 고도화는 지속되었다. 북한은 2016년에만 두 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하고 수차례에 걸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했으며 도합 24차례에 걸쳐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대부분의 미사일들은 일본쪽 해역을 향해 발사되었다.

 6월 22일에는 무수단을 고각(高角)으로 발사하여 500km만을 비행하도록 함으로써 중거리 미사일로도 한국의 수도권을 강타할 수 있음을 과시했다.

 

이렇듯 북핵의 위협이 시시각각 엄중해지는 상황에서 한일 양국은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재추진하게 되었고, 2016년 11월 23일 마침내 서명에 이르게 되었다. 

  서명 직후인 중국의 2016년 11월 24일자 영자신문 Global Times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군사동맹(military alliance)를 위한 조약(treaty)"으로 과장 보도하고 비난을 쏟아냈지만, 군사정보보호협정은 기본적으로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조약’과는 격이 다르며 동맹조약은 더욱 아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상대국으로부터 받는 군사정보를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고 전달‧보관‧관리‧폐기하는 절차를 합의한 것으로서 Ⅰ급 비밀을 제외한 Ⅱ급 비밀 이하의 군사비밀만을 교환 대상으로 하고 있다. 말하자면, 교환할 정보들을 특정한 것이 아니라 정보교환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한국은 이미 32개 국과 정부 간 또는 국방부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한 상태이며, 당연히 중국과의 협정도 모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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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한일 양국은 군사정보보호협정에 서명함으로써 북핵 대처에 있어 유의미한 상호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 미국을 거쳐야만 한일 간의 정보공유가 가능한 ‘한미일 3국간 정보공유협정’의 한계를 넘어 일본과 직접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한국이 가진 인간정보(Humint) 또는 한국이 먼저 탐지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을 제공하는 대신 일본으로부터 우수한 기계정보들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은 5기의 정보수집위성을 운용하고 있으며, 6척의 이지스함, 1,00km이상의 탐지거리를 가진 지상 레이더 4기, 조기경보기17대, 해상초계기 77대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잠수함 정보와 감청능력(SIGINT)에 있어서는 최강국이다. 북한의 SLBM이 향후 한국에게 최대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잠수함 활동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은 한국의 지대한 안보과제이다.

 

 셋째, 중복 정보를 통해 정보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즉, 위성감시 횟수가 많을수록 영상정보의 질은 개선되며, 정보교환을 통해 정보 사각지대를 줄일 수도 있다. 요컨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북한의 핵·미사일 정보들을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게 함으로써 한국 안보에 기여하고, 아울러 한국군이 북핵 억제를 위해 구축 중인 선제(Kill-Chain), 방어(KAMD 및 THAAD) 그리고 응징체계(KMPR)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한일 정보협력, 냉정한 안보논리로 바라봐야   

 

  한일 간에는 과거사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일본의 집단 자위권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 국내의 반일정서, 일본 내의 혐한(嫌韓)정서 등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들은 결코 하루 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한국으로서는 당연히 다툴 것은 다투고 주장할 것은 주장해야 한다.

 

그럼에도, 서로의 안보이익에 도움이 되는 사안이 있다면 안보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를 위해서는 안보협력 사안들을 다투어야 하는 사안들과는 분리해서 다루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이는 인내(忍耐)를 필요로 하는 과정이며, 당연히 가해자였던 일본이 더 많은 인내를 발휘해야 마땅하다.

 

  물론, 국민 다수가 느끼는 반일정서는 대단히 중요한 변수이며, 이를 무시하고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때문에 정부로서는 한일 간의 안보협력을 추구할 때에는 국민에게 성실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충분한 찬반 논의를 거치는 것도 필요하며, 찬반 논의가 악의적으로 왜곡‧과장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수행함은 지식인들의 책무일 것이다.

 

 이번 협정을 서명하는 과정에서도 “한일 군사정보협력협정에 서명하면 일본의 자위대가 한반도에 마음대로 진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동맹국인 미국도 한국에 군대를 전개할 때에 한국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데 얻어야 하는 현실에서 이런 주장은 황당한 자기비하(自己卑下)일 뿐이다. 지금까지 중국과 러시아가 북핵을 다룸에 있어 공식적으로는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비공식적으로는 북한정권의 생존을 지원해왔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한일 군사정보협력협정이 북‧중‧러 대 한‧미‧일이라는 냉전적 대결을 부추긴다”는 것도 원인과 대응을 뒤바꾼 주장이다. 일본과의 협력을 거론하면 일단 ‘친일(親日)’로 몰고 보는 식의 저급한 논쟁도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서명과 이후의 운용이 양국이 공히 냉정한 안보논리로 안보협력을 다루어나가는 시금석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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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12월12일 18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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