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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라는 멍에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11월29일 17시49분

작성자

  • 최협
  •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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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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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했는데, “최선생한테 컨펌 했나요?”라는 말이 공개된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신성한 권력을 강남의 아줌마와 사적으로 공유해온 국정농단의 실체가 확인된 것이다. 이에 여론이 들끓고, 매 주말이면 사상 초유의 1백만 촛불들의 시위가 이어지며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수백만의 국민들이 분노하며 거리로 나서는 데는 박근혜-최순실게이트로 불릴 수 있는 이번 사건이 국민들에게는 단순한 <헌정질서 문란사건>으로만 비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대통령측근들의 비리가 항상 있어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각계각층의 국민들에게 고루 상처를 준 사례는 없었다. 그 상처가 가리키는 곳은 한국사회의 너무도 근본적인 문제들에 닿아있어 많은 정치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단순한 정치제도상의 개선으로는 치유될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우선, 최순실 가족사에 등장하는 친일의 흔적, 일곱 번의 결혼, 노동 없는 부정축재 등은 국민적 자존심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또한 “돈도 실력이다”라고 부끄러움 없이 말하는 최순실 딸아이의 특혜입학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꿈을 깔아뭉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잘못을 지적하기는커녕 온갖 편법으로 도움을 제공함으로서 부스러기를 챙긴 교수, 관료, 기업인들은 우리사회의 지성과 양심이 얼마나 부끄러운 수준인가를 말해주었다. 이번 사건이 드러내준  우리사회의 음습한 모습들이다.

   문제의 근저에 자리한 뿌리가 곪아있는데도 정치인들은 이번 사건을 견제 받지 않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책임을 전가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300명에 달하는 한국의 국회는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지원시스템, 무소불위의 정보청구권, 국정조사, 청문회, 국회선진화법 등으로 대통령을 견제할 막강한 권력을 이미 보유한 상태이다. 다만 여당은 그 누가 스스로 말했듯이 여왕의 내시임을 자처했고, 야당은 국정조사나 청문회에서 정곡을 찌르는 질문으로 잘못을 바로잡고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막말과 고성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와중에 대통령의 권력남용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으며,  청와대는 권력의 하수인들이, 정부는 영혼 없는 기술자들이 차지했다. 역시 제도보다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며 국민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성숙한 국민들은 평화적 횃불로 민의를 표현하고 있는데 이 위중한 상황에서도 각 정당이나 정파는 국가의 장래를 위한 걱정은 뒷전으로 밀쳐놓고 차기 대선에 유리한 방정식을 찾느라 잔머리를 굴리며 우왕좌왕이다. 헌정질서문란을 헌법의 절차에 따라 진행시키는 탄핵마저도 중구난방이고, 새로운 형태의 정치체제를 염두에 둔 헌법개정논의마저 고개 들면서 안정적 국정의 운영은 한 달째 표류 중이다. 상처받고 성난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길이 무엇인가? 정치인들은 오로지 이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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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에 대해 그 특유의 유머를 섞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제로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치체제라고 일컬어지기도 하지요, 여태까지 시도된 모든 다른 형태의 정치체제를 제외하면 말입니다만.” 

 

 처칠은 완벽한 정치제도는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민주주의도 차선의 제도일 뿐이다. 정치제도를 고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할 진리는 그 어떤 제도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 즉 우리들의 사고와 가치, 그리고 역사인식이 잘못되어 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닫는 일이다. 

 

   당연히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은 철저히 규명되고 관련자들은 단죄되어야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시행착오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하여 문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문화와 가치의 문제를 같이 생각해야하는 이유이다. 토마스 아담스는 이 세상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려고만 할 뿐 자신은 변화하려고 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톨스토이 역시 “모든 사람은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바꾸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간절히 바라건대 이번 사건이 박근혜정부의 단죄에 머물지 않고 우리 모두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가치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우리헌법 1조 2항에 명시되어있듯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어’ 우리 자신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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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11월29일 17시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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