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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의 고향 대구의 속앓이, 그리고 분노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11월29일 17시48분
  • 최종수정 2016년11월29일 19시19분

작성자

  • 이상근
  • 서강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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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대구 외곽에서 자란 필자는 석문산성에 자주 올라가곤 했다. 석문산성은 곽재우장군이 낙동강을 따라 달성과 고령의 내륙지방으로 쳐들어오는 왜병을 막기 위해 축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초등학교 때는 1907년 2월 대구에서 발단이 되어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300만 원을 갚아 주권을 회복하고자 주권수호운동을 기념하는 국채보상운동공원, 그리고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 대구항쟁의 기념비가 앞에 서 있는 명덕로타리를 건너면서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대구는 보수의 본류로 자리매김하였다. 의리와 고집이 대구의 아이콘이 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1992년 이후 25년째 GRDP(지역내총생산)이 전국 최하위를 기록할 만큼 처참하였다. 대구에는 아직도 대기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국가산업단지 하나조차도 없다.

 

위정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철저하게 지역민을 이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이번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은 이러한 의심을 확인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며칠 전부터 고교친구들의 카톡방에서는 여러 문자들이 오고 갔다. 서울에 있는 친구들은 토요일 광화문에 가자고 하고 대구에 있는 친구들은 아이들과 대구의 촛불집회에 나간다고들 한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무릇 위정자들은 백성을 위해 자신을 버릴 줄 알아야 하거늘 사익을 추구하는 순간 백성들은 돌아서고 말 것이다. 최근 대통령과 최태민-최순실 일가의 행적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최태민 일가에 정국이 농락당했다는 여론이 노년층까지 확산되면서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에서도 지난 26일에는 5만 명 시민들이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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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꼴통’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의리를 중시하던 대구 사람들이 왜 거리로 나선 것일까? 그간의 대구 경북 언론에 나온 TK의 민심을 종합해 보면, 무엇보다도 먼저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왜 대통령이 자격도 없는 최순실에게 월권 행위를 하게 방치했느냐’는 불만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정은 비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을 받은 자만이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물론 조언 그룹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조언에만 머물려야 하며 이권에 개입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엄우율기 관이대인(嚴于律己 寬以待人)하지 못한 대통령 자체에 대한 실망감이다. 최근 검찰 주변에서 보도되는 기사들을 접하면서 국민들은 ‘자신에게 엄격하지 못하고’ 매사에 신중한 모습을 보인 박 대통령이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역량이 부족한 것이었는지 고개를 갸우뚱 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지난 40년간 최태민과의 관계, 최순실 일가와의 부적절한 사실들이 진실로 드러나자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철회가 야당 지지로 이어질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최근 지역 경기가 전국최하위임에도 불구하고 야당들이 지역 예산을 앞 다투어 삭감하는 발언을 일삼는 것을 보는 시민들의 생각은 박대통령에 대한 지지철회이지 야당지지의 입장은 아직 아닌 듯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분노를 느끼게 하난 것은 바로 입시부정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필자도 올해는 고3 학부형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 되어야 하는 것은 경쟁의 스타트라인에 부정출발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옛날 과거(科擧)제도에서 특혜채용을 인정한 음서제도(蔭敍制度)로 변경되는 왕조는 곧 멸망의 길을 걸었다. 국가라는 시스템은 국민의 지지로 만들어진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 구성원간의 신뢰가 깨지는 순간 그 시스템의 존재가치는 없어지는 것이다.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장시호의 연세대 특혜 입학 혐의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쏟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본디 경상감영(慶尙監營)이 있었던 대구는 야도(野都)였다. 1960년 이승만정권의 3.15 부정선거 당시, 대구는 정권이 가장 무서워하던 강력한 야당도시였다. 5.16 쿠데타를 일으키고 난 이후, 1963년 박정희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지금까지 대구 민심의 다수는 보수로 돌아섰었다. 그 와중에도 지역 출신인사들은 인혁당 사건에 많이 참여하였고, 대표적인 노동 운동가인 전태일 열사의 고향으로 야당 DNA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사건 이후, 대구 민심은 다시 일제 치하 일제해방운동, 이승만 독재 시절의 강력한 야당도시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대통령의 지지도는 물론 새누리당 역시 지지율이 대구에서도 급감하고 있다. 막대기만 꽂아도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가 대구 경북에서 당선될 수 있다는 신화는 이제 깨졌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이 역설적으로 “대구발전의 계기가 되지 않을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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