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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10월10일 17시08분
  • 최종수정 2016년10월12일 12시08분

작성자

  • 나승철
  • 법률사무소 리만 대표변호사, 前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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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이제 일주일이 약간 넘었다.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지만, 아직도 법조계에서는 위헌 아니냐는 의견이 상당히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소수의견으로 위헌의견이 있었던 만큼 김영란법이 위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영 잘못된 생각은 아닐 것이다. 김영란법에 대한 비판은, 쉽게 얘기해서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 친구한테 술 한 잔 사는 것이 어떻게 범죄가 되느냐’는 것이다. 

 

김영란법 때문에 국민들은 친한 친구들과 저녁 모임을 가질 때에도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가 있는지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게다가 김영란법은 공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일반 국민들, 즉 공무수행사인에게까지 적용되기 때문에 저녁에 만날 친구들 중에 공무원이 없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심지어 은행원도 공무수행사인에 해당되어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우리 사회는 생각 없이 친구들과 밥 먹고 다니다가는 김영란법 때문에 자칫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됐다고 할 수 있다. 결혼을 하게 돼서 친구들에게 밥을 사려고 해도 친구들 중에 김영란법 적용대상자가 있으면 계산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추석 때 선물하는 것도 찜찜하다. 이제 전 국민이 김영란법 해설서를 들고 다니면서 사례를 숙지해야 할 판이다. 헌법재판소 김창종, 조용호 재판관은 이를 두고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조리에 국가가 전면적으로 개입하여 부패행위를 일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부패행위 근절을 이유로 사회의 모든 영역을 국가의 감시망 아래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는 항상 우리가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그 틈을 파고든다. 많은 공직자들이 뇌물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면 ‘그 사람과 내가 안지가 몇 년인데’라는 말을 한다. 최근에 구속된 김모 검사도 뇌물을 준 사람이 고등학교 친구였다고 한다. 진경준 검사장과 넥슨 김정주 회장도 오랜 친구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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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은 항상 선물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아무리 자기 관리가 엄격한 사람이라도 친한 사람이 매번 선물을 주면, 어느덧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선물이 부담스럽더라도 거절하면 실례가 될까봐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하지만 익숙해지는 것은 금방이다. 10만원이 20만원이 되고, 20만원이 100만원이 된다. 그러다가 자신이 처리하는 업무에 그 사람의 이름이 올라오게 되면 마음이 흔들린다. 최대한 공정하게 하려 해도 ‘최소한의 신경’이라도 써줄 수밖에 없다. 그런 ‘최소한의 신경’이 나중에 ‘특혜’가 되는 것이다. 김영란법은 이처럼 관행과 범죄의 경계선상에 있는 공무원들에게 매우 유용한 행동지침을 준다. 김영란법을 이유로 거절하면 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공무원들로부터 짧은 순간에 선물인지 뇌물인지 판단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준다. 

 

반드시 뇌물 같은 범죄가 아니더라도 우리사회에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만은 없는 접대문화가 존재한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담당 공무원이 바뀔 때마다 인사를 하고, 식사를 대접한다. 나중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장차 크게 될 사람은 미리미리 관리해 두자는 것이다. 심지어 민원인들이 담당 공무원과 인사를 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예 ‘대관업무’라는 이름으로 긍정되어 왔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개업해서 성공하려면 영업을 잘해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영업’이라고 불러왔던 것들도 알고 보면 나에게 일감을 줄만한 사람들에게 ‘밥 사고, 술 사는’ 일에 불과하다. ‘인맥관리’와 ‘대관업무’ 그리고 ‘영업’이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일감이 능력 있는 사람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담당자와 친한 사람에게 갈 수밖에 없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실력을 쌓기 보다는 인맥을 쌓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런 사회가 발전하고 성장할 리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딱 그런 모습이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실 김영란법은 우리에게 불편하다. 우리 관습에 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필자조차도 비교적 최근까지 김영란법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국민들을 분노케 했던 공직자들의 비리 사건들을 찬찬히 돌이켜 보면, 김영란법이 우리 사회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 사회가 너무 느슨했었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세계경제포럼이 공개한 국가별 부패지수에서 한국이 OECD 국가 중 9위를 했다고 한다. 김영란법이 필요한 이유이다. 김영란법이 너무 빡빡한 거 아니냐는 불평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김영란법에도 사회상규에 부합하는 경우는 예외로 하는 규정이 있다. 김영란법에 의하더라도 결혼 턱으로 친한 공무원 친구랑 소주에 삼겹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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