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세돈의 역사해석] 통합이냐 분열이냐, 국가 흥망의 교훈 : #15 자만심으로 멸망한 틈새왕국, 남량(G)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6월13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6월13일 10시18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7

본문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33) 여찬의 부인 양씨의 절개(AD401)

 

곁에서 이 사태를 목격한 여찬의 왕후 양씨가 근위병에게 여초를 토벌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전중감 두상이 즉각 중지시키고는 근위병의 무장을 해제했다. 장군 위익다가 들어 와 칼에 찔린 여찬의 목을 베었다. 경악한 양왕후가 이렇게 외쳤다.

 

 “ 사람이 죽었으면 이미 흙이나 돌과 같은 데

   어찌 그 육체를 다시 해치려 하는가?“     

       

위익다는 양왕후에게 욕을 한 뒤 여찬의 목을 들고 돌아다니며 말했다.

 

 “ 여찬은 먼저 돌아가신 황제의 명을 어겼소.

   태자(여소)를 죽이고서 자립했으며 거칠고 포악하였소.

   반화태수 여초는 인심을 따라서 그를 제거하였고

   종묘를 안정시켰으니

   우리 모든 신하들은 함께 즐기고 축하해야 할 것이오.“

 

여찬의 숙부, 즉 여광의 형제인 파서공 여타와 농서공 여위는 모두 고장의 북성에 있었다.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유세했다.

 

 “ 여초가 반역의 난을 일으켰으니

   공은 주상 여광의 동생들로써

   대의에 기탁하여 그를 토벌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찌 성공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계십니까?“

 

여위가 그 말에 자극을 받아 여타와 함께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자 여타의 처 양씨가 나서며 여타에게 말했다. 

 

 “ 여위와 여초는 모두 형제의 아들인데    

   어찌 여초를 버리고 여위를 도와 재앙의 우두머리가 되려고 하십니까?“

 

여타는 곧바로 여위에게 가서 말했다.

 

 “ 여초의 거사는 이미 성공했소.

   무기고를 장악하고 또 모든 정예군사를 손아귀에 넣은 셈이요.

   승산도 없을뿐더러 나는 늙어서 힘이 없소.“

 

여초의 동생 여막이 여위에게 다가와 말했다.

 

 “ 역적 여찬이 형제를 죽였으므로

   여륭과 여초가 인심을 좇아서 그를 토벌했습니다.

   그것은 밝으신 공을 세우려 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명공께서야말로 돌아가신 주공(여광)의 맏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의심한단 말입니까?“

 

여위는 그 말을 믿고 여초와 여륭에게 사람을 보내 신뢰의 뜻을 표한 뒤 홀로 말을 타고 궁궐로 들어갔다. 여초는 즉시 여위를 잡아 죽였다. 그리고는 왕위를 여륭에게 맡겼다. 여륭이 사양했지만 여초가 말했다.

 

 “ 지금 마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기색인데

   어찌 도중에 내린다는 말이요?“ 

 

마침내 여륭이 왕위에 올랐다. 대대적인 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신정(神鼎)으로 고쳤다. 여초는 모든 군사권을 장악하는 도독중외제군사가 되었다. 여찬의 왕후 양씨가 궁궐을 나갈 때 진기한 보석을 훔쳐 나갈까 염려된 여륭 형제가 몸과 짐을 수색하게 했다. 양씨가 말했다.

 

 “ 너희 형제들은 의롭지 못하여 서로 죽였는데

   나 또한 곧 죽을 몸인데

   보석이 무슨 소용이 있어서 숨겨서 나간다고 하느냐!“

 

여초가 옥새가 있는 곳을 물었지만 양씨는 이미 부셔 버렸다고 하면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양씨는 원래 미색이 뛰어났으므로 여초가 탐을 내어 양씨의 아버지 우복야 양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 황후가 만약 자살한다면 그 우환은 

   온 가족에게 끼칠 것이니 그리 아시요! “

 

양환이 여초의 엄포를 양씨에게 전해주자 양씨가 말했다.

 

 “ 대인께서는 딸을 팔아서 저족(여씨)에게 주어    

   부귀를 꾀하시는데 한 번 그리 한 것도 모자라 또다시 그리 하시려 하십니까?“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호를 목후라고 내렸으며 양환은 후환이 두려워 독발이록고에게로 도망갔다. 독발이록고는 그에게 좌사마를 내렸다. 하서왕 독발이록고는 후량의 여륭을 공격하여 크게 이겼으며 2천여 호를 빼앗아 들어왔다. 

 

(34) 후진의 후량 여륭 공격(AD401)

 

정권을 새로 잡기는 했어도 후량 여륭은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명망 있는 사람들을 많이 죽였으므로 민심이 크게 흔들렸고 정치는 권문세가들 손에서 놀아났다. 이런 상황을 초랑이라는 사람이 후진의 요석덕 장군에게 알려 주면서 이 기회를 잡으라고 권했다. 요석덕은 초랑의 편지를 주군 요흥에게 보냈고 요흥은 요석덕을 보내 후량을 정벌하기로 마음먹었다. 요석덕이 요청한 대도 보기병 도합 6만 명이 출병했고 장안에 와 있던 걸복건귀 또한 기병 7천을 가지고 뒤따랐다.

 

요석덕의 대군이 난주에서 황하를 건너자 광무에 진치고 있던 독발이록고는 몸을 피했다. 요석덕군과 후진의 여륭-여초-여막 군대는 고장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후량이 크게 패하고 여막의 목이 잘려 나갔다. 여륭은 후퇴하여 고장(감숙성 무위)으로 들어 간 다음 농성을 벌였다. 후량을 처참하게 깨뜨리는 후진의 막강한 무력에 놀란 주변 여러 국가들은 다투어 후진에게 복속할 뜻을 내비쳤는데 서량의 이고, 북량의 저거몽손은 물론 남량의 독발이록고도 피할 수가 없었다.

 

후량 수도 고장(무위) 주변의 후량 군사들은 대부분 후진 요석덕에게 투항했다. 강기라는 사람은 후량여찬의 중신이었으나 여륭의 쿠테타가 발생하자 양환과 함께 남량의 독발이록고에게 몸을 맡기기로 했다. 강기는 영리하고 박식하여 독발녹단의 사랑을 받았으므로 항상 가까이서 자문을 구하고 있었다. 독발이록고가 동생 독발녹단에게 강기를 경계하라고 말했다.  

 

 “ 강기는 믿음이 가고 훌륭한 재주가 있으나 보고 판단하는 것이 범상치가 않다.

  분명히 여기 오래있지 않을 것이니

  너무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어떻겠느냐? “ 

    

독발녹단이 이렇게 말했다.

 

  “ 신은 포의를 입은 입장에서 

    강기와 교제하고 대우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기는 절대로 저를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독발이록고의 예상대로 얼마 있지 않아서 강기는 기병 수십 명을 이끌고 후진으로 달아나 요석덕에게로 갔다. 군사 3천을 주면 후량의 여륭을 잡아오겠다고 말했다. 요석덕은 그에게 2천 군사를 주어 무위 북쪽 안연 지역을 다스리게 했다.

 

수도 고장에 대한 후진의 포위가 여러 달 계속되자 성내에서는 중원지역 출신들을 중심으로 반란의 낌새가 일어났다. 위익다를 중심으로 한 여륭-여초 형제 암살계획이 탄로가 나기도 했다. 여초가 이렇게 말했다.

 

  “ 지금은 장량이나 진평이라도 어찌 할 수 없는 상황 아닌가.

   어찌 한 자 짜리 편지와 한 명의 사신을 보내

   겸손한 말로 적을 물리치는 것을 아낄 것인가?

   끝내 앉아서 곤궁함을 당한다고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후량 주군 여륭이 결국 사신을 보내 항복을 타진했다. 요석덕은 항복요청을 받아들이고 여륭에게는 진서대장군, 건강공을 내리고 그의 식솔들을 모두 인질로 장안으로 보냈다. 후량이 아직 망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후진에게 복속한 셈이다. 

 

(35) 걸복치반이 도주해 나와 후진에 입조(AD402)

 

남량의 서녕에 영치되어 독발이록고에게 의지해 있던 걸복치반이 몰래 빠져나와 후진의 원천(감숙성 유중)으로 도망갔다. 독발이록고는 서녕에 남아있는 걸복치반의 가족들을 모두 유중으로 돌려보내주었다. 장안에 있던 아버지 걸복건귀가 걸복치반을 설득하여 후진 조정에 들어오라고 권하자 걸복치반은 장안으로 들어가 입조했다. 후진 주군 요흥은 걸복치반에게 흥진(감숙성 임하)태수에 임명했다. 

 

후진의 후량 정벌 이후 서진, 북량 및 남량의 조정이 모두 복속하기로 했으므로 후진 조정에서는 남량의 독발녹단을 거기장군 및 광무공으로 삼고 저거몽손은 진서장군 및 서해후 그리고 서량의 이고에게는 안서장군 및 고창후라는 직책을 내렸다. 하서회랑 삼국이 모두 후진의 복속국이 되었지만 남량 주군의 작위가 공인 것을 보면 북량이나 서량보다는 남량의 위치가 더 높았음을 알 수 있다. 

 

(36) 후량과 남량의 전투(AD403)

 

여륭이 인질을 보내 후진에게 항복하자 후진 주력부대는 뒤로 물러났다. 후진의 장수 강기의 2천 군대가 무위를 지키고 있었다. 이때를 틈타 여초가 강기를 습격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여초는 다시 후진 장수 초랑을 공격하자 초랑은 조카 초숭을 독발이록고에게 인질로 보내고 항복의 뜻을 전달했다.  

 

[그림] 하-독발녹단-후진 영토(AD403경)


09adfc267974bc70cd63e36429091230_1560388
 

북량의 저거몽손이 군사를 이끌고 고장을 공격하니 여륭은 급히 독발이록고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독발이록고는 기병 1만 명을 동생 독발녹단에게 주어 파견했는데 여륭이 지원군이 오기도 전에 저거몽손의 군대를 이길 수가 있었다. 패전한 저거몽손이 여륭에게 쌀 1만 여곡을 주고 화해를 요청했으므로 여륭은 얼른 그 제의를 받고 화전했다. 여륭이 이미 전쟁을 끝냈다고 하자 독발녹단은 중산기상시 장융의 제안을 받아들여 위안을 점거하고서 후진과 내통하는 초랑을 토벌하려고 했다. 화가 난 독발녹단이 초랑을 공격하려하자 측근 독발구연이 말렸다. 조금 있으면 양식이 떨어진 초랑이 저절로 성을 버리고 나올 것이니 서두를 것 없다는 것이었다. 초랑은 독발녹단의 대군에 항거할 기력이 없자 면박하고 투항했다. 독발녹단은 그를 용서하고 수도 서녕으로 송환했다.  

여초가 다시 공격해 올 것을 짐작한 독발녹단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습격을 기다렸다가 반격하여 여초의 장수 왕집의 군사를 격멸시켰다. 여륭은 여초가 곳곳에서 패하자 독발녹단에게 화평의 뜻을 전달해왔다. 독발녹단은 독발구연을 화평 맹약의 사자로 보냈다. 독발구연은 매복군사가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여륭의 궁성으로 들어가자마자 담벼락을 부수고 들어갔는데 정말로 복병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복병의 습격을 받고 독발구연이 자신의 말과 수하들을 많이 잃었지만 심복부하 곽조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구할 수가 있었다. 

 

독발녹단이 화가 나서 곳곳의 후량의 거점 현미(감숙성 영창현 동쪽)을 공격하여 후량의 태수 맹의를 체포했다. 독발녹단이 맹의를 심하게 꾸짖자 맹의가 이렇게 답했다.

 

 “ 저 맹의는 여씨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습니다. 

   밝으신 공께서 군사를 일으켜 횃불을 들고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퇴각하고 말았다면 돌아가서 죄를 얻을 것이 두려워 끝까지 싸웠습니다.“

 

독발녹단이 그의 충성심을 보고 예우하여 2천호를 붙여 주고 좌사마에 임명하려 하자 사양하며 말했다.

 

 “ 여씨가 장차 멸망하면 

   독발씨가 조정의 황하 우측(하서지역)을 점령할 것입니다.

   저같이 능력 없는 자가 현미성을 감당하지도 못했는데

   다시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된다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

   만약 밝으신 공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서 

   고장(감숙성 무위, 후량의 도읍)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거기서 주륙되더라도 깨끗한 명예는 썩지 않을 것입니다.“ 

 

독발녹단은 그의 충성심과 공명심에 크게 감동을 받아 그의 소망대로 고장으로 돌려보냈다. <계속>

 

09adfc267974bc70cd63e36429091230_1560388
 

 

7
  • 기사입력 2019년06월13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6월13일 10시18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