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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을 묻다: ‘보이지 않는 손’의 무게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8월18일 21시42분
  • 최종수정 2017년01월29일 11시27분

작성자

  • 김학수
  •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메타정보

  • 60

본문

 

 꿈의 시대가 무너지고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소련연방의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었을 때, 우리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상이 지구촌에 실현되리라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로부터 해방된 대부분의 나라들은 반(反)민주적인 독재국가로 재탄생 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쟁과 갈등이 증폭되면서 민주화되던 국가들마저 점차 반민주적으로 회귀하는 추세다.

아울러 지난 2008년의 미국 발 금융위기로 순식간에 번진 세계 경제체제의 붕괴는 그동안 누적되어온 자본주의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노정시킨 대참사였다. 당시 Paul Krugman은 뉴욕타임즈 매거진 기고문에서 경제학의 실패를 이렇게 통탄하였다.

 “인상적으로 보이는 수학의 옷을 입힌 경제분석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것을 마치 진실인 양 간주하는 오류를 범했다(economists, as a group, mistook beauty, clad in impressive-looking mathematics, for truth).”

 

그렇다면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짧은 기간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공시켰다고 칭송 받는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은 지금 어떠한가? 개인의 이익추구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전체의 이익을 실현하고 있는가? 개인의 아이디어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전체의 공동선(共同善)을 실현하고 있는가?

 비록 ‘고전적’이라는 딱지가 붙지만, 상품과 아이디어의 완전 자유시장 그리고 그것에 작동되리라고 가정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윤리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기존의 이념들이 작동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이번 「국가미래연구원」이 522명의 정치•경제•사회 전문가들에서 얻어낸 “시대정신을 묻다”의 조사내용은 그것의 반증이다. 

 

‘시대정신’은 작금의 시대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사회적 걱정거리, 과제들이며, 다른 한편으로 그들을 해소하기 위해 추구해야 할 사회적 가치이기도 한다.

먼저 1순위 걱정거리 측면에서, 경제 관련 전문가 집단(300명)에서든 정치/사회 관련 전문가 집단(222명)에서든 일자리 창출(47.7%; 33.8%)이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지목되었다.

개인과 기업의 이익추구가 극대화 내지 고도화 되면서 일자리는 점점 줄어드는 자본주의의 모순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청년들은 적절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결혼마저 포기하면서, 사회적으로 저출산 고령화(8.2%)와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불평등 완화(8.6%)가 1순위 주요 과제로 함께 등장하고 있다. 

 

다음 1순위 걱정거리로 가장 많이 지목된 것은 공동체 회복(경제 전문가 15.7%; 정치/사회 전문가 22.1%)이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사회적 갈등들을 조절하고 융합하면서 정체(polity), 곧 정치적 공동체를 구축(構築)하는 일이다. 정치는 바로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선거는 한마디로 공동체의 지향점(공동선)들을 향한 경쟁이며, 그 결과로 얻어지는 국민에 의한 권력의 위탁은 어떤 지향점을 중심으로 갈등과 차이들을 극복하면서 공동체(共同體), 즉 국민통합을 성취하라는 명령이다.

 그러나 지난 20대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 보여준 것처럼, 대한민국의 정치는 청와대와 집권여당부터 철저하게 극단적 분열주의를 추구했다. 뿐만 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총선 공약들은 한결같이 국가공동체의 문제들을 통해 국민들을 통합하려는 노력보다 소(小)지역주의적 포퓰리즘에 치우쳐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 민주적 국가 지배구조(8.8%)가 꽤 많이 1순위 주요 과제로 지목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제적 양극화로 치닫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반(反)통합적 분열주의로 치닫는 민주주의의 왜곡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도대체 어떤 핵심가치가 가장 절실한 시대정신인가? 경제 전문가 집단이든 정치/사회 전문가 집단이든 공정(公正, fairness)의 가치(47.7%; 46.4%)가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1순위 핵심가치로 지목되었다.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노력과 능력에 따라 정당한 평가를 받는 공정의 원칙이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모두 왜곡될 수밖에 없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롯데그룹뿐만 아니라 한국의 재벌들은 가족들에게 거대한 불로소득(不勞所得)을 안겨주는 대표적인 불공정(不公正) 경제행위 주체들이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상징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공정의 실종(失踪)’이다. 

 

 공정의 가치가 가장 철저하게 구현되어야 할 영역으로 헌법 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가장 명확하게 작동하고 있는, 판사•검사•변호사 사이의 밀폐된 법조계 장치는 ‘전관예우(前官禮遇)’다. 그것은 법(法)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불공정하게 운용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단적으로 말해서 불공정의 대명사다. 사법고시를 패스 하자마자 재벌가와 혼인을 맺고, 거대한 재산의 상속인으로 등극하며, 판•검사직을 떠나도 불과 1-2년 사이에 수십억에서 수백억의 변호사 수임료를 챙길 수 있는 것도 모두 전관예우 때문이다. 작금에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던 최유정, 홍만표, 진경준, 우병우 등의 법조인들이 누린 불공정 사례들을 들으면서 일상의 국민들은 얼마나 절망하겠는가! 

 

 이런 판국에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할 전문가는 매우 적을 수밖에 없다(11.5%). 절대 다수(77.8%)가 잘못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헌논의도 단순히 권력구조 개편에만 국한하지 말고,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개헌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74.1%),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그런 시대정신 구현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70.5%).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들이 또한 얼마나 심한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여기에 언급이 필요 없을 정도다. 특권은 곧 공정의 잣대가 원천적으로 거부되는 장치를 일컫는다. 20대 국회에서 그들을 내려놓겠다고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소위원회’까지 구성해서 개혁을 하겠다고 하니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결국, 일자리는 사라지고 경제적 양극화만 심화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실패, 국민통합은 아예 염두에도 없고 분열주의와 지역주의적 포퓰리즘만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실패가 가장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는 나라가 21세기 대한민국이다. 따라서 정치와 경제 양면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공멸(共滅)하는, Garret Hardin이 걱정한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 발생하고 있는 현장이 바로 요즈음 젊은이들이 조롱하는 ‘헬(Hell!)조선’이다. 

 

그러나 비극과 희망은 순환적이다. T. S. Eliot이 “황무지(The Wasteland)”에서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설파한 이유가 봄날에 가장 일찍 피어나는 라일락 꽃에서 죽음의 겨울을 넘긴 새 생명의 꿈틀거림을 보았기 때문인 것에 비유될 수 있을까? 비극의 ‘헬조선’을 지나 희망의 라일락 향기를 어디에서 맡을 수 있을까? 앞으로 전개될 20대 대통령 선거는 그런 향기를 뿜어낼 수 있을까? 그런 향기를 발산할 능력으로 무장된 인물들이 나타날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번영을 함께 이룩하는 자본주의의 성공, 정치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 신장은 물론 온갖 갈등들이 용해된 공동체의 국민통합을 함께 실현하는 민주주의의 성공, 이 둘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보이지 않는 손’ 중의 하나는 ‘공정(公正)의 가치’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 후보가 “함께 하면 더 강해진다(Stronger Together)”를 내세웠다면, 우리의 20대 대선 후보들은 “공정해야 더 강해진다!”를 내세워야 되지 않을까!

 

“Fairness,” 이 핵심가치가 구현되는 사회라면 자연스럽게 혁신, 정의, 통합 등도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공정함은 단순히 도덕적 가치 무장으로 성취되는 게 아니라, “함께 엮어가기”의 질곡진 과정에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어떤 공동체 문제를 함께 참여하여 해결해 나가는 지독히 어려운 과정이 완수될 때, 서로 사이의 투명함과 상호 인정, 공동 발전, 상호 배려, 공동 성과와 합당한 평가 등이 일어날 수 있다. 매우 슬프게도 사회과학은 ‘단일의 몸체’가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의 “함께 엮어가기”에 관한 창조적 이론화에 별로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공정(公正)’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의 무게가 더욱 엄중하고도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의 실현을 위한 시련을 이겨내야, 대한민국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다는 생각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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