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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大局)을 보아야 민심을 얻는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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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12월14일 22시0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09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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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大局)을 보아야 민심을 얻는다.’
요즘 땅콩처럼 뜨거운 화제는 없다. JFK공항 계류장에서 이동을 시작한 기체를 되돌려 국제적으로 나라 망신시킨 그 땅콩 말이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메뉴얼에 따르지 않은 서비스를 현장에서 즉시 일벌백계하려 했다는 변명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서비스 메뉴얼은 왜 존재하는가? 탑승객의 쾌적·신속·안전한 여행을 위함이 아니던가? 그것이 간식의 포장 또는 탈포장 서비스보다 훨씬 상위의 서비스 개념일 것이다. 한 가지 언행을 보고 열 가지를 짐작하는게 민심이다.
 

 원대한 목표를 세워두고 일상적으로 작은 일들에 성실히 노력하면 성공의 길이 열린다. 그렇다고 세세한 일들에 매몰되면 큰 꿈이 허물어진다. 마치 그림 맞추기의 조각 그림들처럼 큰 밑그림 속에서 제자리를 찾아야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그리고 남아도는 군더더기 작은 조각이 있으면  버려야한다. 큰 것을 위해, 작은 것(하나 하나 아무리 귀중한 것일지라도)은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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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역사와 전통은 바로 알고자하면 로마제국, 특히 로마법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고, 기원전 6세기 집정관 브루터스(L.J.Brutus)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왕정과 공화정 사이 반전하는 정쟁 속에서 공화정을 구하기 위해, 왕정복고 음모에 가담한 친아들들을, 법의 규정대로 극형에 처한다. 프랑스 혁명시기에 화가 다비드(J.-L.David, 1748-1825)는 운구되어 오는 자식들의 시신을 애써 외면하는 부루터스와 실신하는 부인을 묘사한 화폭을 남겨, 오늘날에도 루브르 박물관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부루터스인들 자식 사랑이 없었을까마는, 애국이라는 큰 틀 속에서 자기희생을 선택했고, 그래서 후세의 존경을 얻었다. 카이사르(J.Caesar, 기원전 100~44)는 내 가족은 사람들의 의심조차 받아서도 안된다는 뜻의 말을 남겨, 후세 사람들이 거울로 삼는다.
 

 요즘 세상이 어수선하다. 현 정부 출범이후 줄곧 입소문으로 떠돌던 ‘비선 실세’, ‘문고리’, ‘십상시(十常侍)’라는 말들이 드디어 언론매체에 표면화되었다. ‘찌라시’ 수준의 문건으로 크게 번진 사태추이에 당사자들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다. 소문이 옳든 그르든 간에, 게걸스럽게 입력하고 확대 생산하는 것이 군중 심리역학임을 어찌하랴.
 

 길게 대국을 보아야한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 기원전 1400년 고대 그리스에서는 델피(Delphi)가 세상의 중심지(배꼽)로 알려져 있어, 그곳 신녀(神女)들이 전하는 신탁(神託)은 권위가 대단했다. 어찌 입력되었는지 아무도 알길 없는 애매모호한 말로 공사(公私) 막론하고 그리스인을 좌지우지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3400여년 지난 오늘날 민주국가에서 신탁 유사행태로 의심받는 일은 현명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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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대통령의 애국심, 자기희생정신과 불철주야의 노력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도 거국적 국민사랑이 측근 감싸기보다 상위개념이어야 한다고 여긴다. 국민이 왜 쉽사리 ‘십상시’라는 말에 이토록 흥분하는지, 왜 고위 공직자들조차 무력감을 느끼는지, 왜 ‘창조’라는 말이 헛도는 구호처럼 들리는지, 현 정부의 정치 스타일에 혹시 의심받을 구석이 있었는지, 반성하고 가다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사람은 자기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가 있던 일이어야 그 실천에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선다. 따돌림이 의심되는 꼬투리를 일단 잡고나면, 빈정거림과 저항으로 대응하는 것이 민심 흐름이다. “나를 따르라”는 선봉장 기세는 역력하지만 뒤따르는 대오(隊伍)의 낙오에는 상관하지 않는 듯하다. 그대로 밀어붙일 요량을 할 수도 있다. 그리해서 설사 작은 승리를 얻은들, 국정의 큰 틀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나? 민심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
 

 이대로라면 국정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동양으로 치면 읍참마속(泣斬馬謖), 서양으로 치면 부루터스의 결단을 참고해야 성공하는 정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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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12월14일 22시0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09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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