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통제 민주주의’ 위험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11월16일 20시1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2시03분

작성자

  • 김형준
  • 배제대학교 인문사회대학 석좌교수(정치학),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메타정보

  • 33

본문

 ‘통제 민주주의’ 위험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권에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발 폭탄이 떨어졌다. 헌재가 지난 10월 30일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방식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의 요지는 현행 '3대1'인 선거구별 인구 편차 기준을 '2대1 이하'로 조정하라는 것이다. 선거구간 인구 편차가 너무 커 표의 등가성이 지나치게 침해받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헌재는 ‘1인1표’(one man, one vote) 뿐만 아니라 ‘1표1가치’(one vote, one value)가 평등 선거의 기준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되면 현재 246곳의 선거구 가운데 37곳이 최대 인구를 초과하고 25곳이 최소 인구에 미달해 62곳의 선거구가 조정 대상이 된다. 세부적으로는 수도권이 24곳(경기 16곳, 인천 5곳, 서울 3곳), 충청권(대전 1곳, 충남 3곳)의 경우 상한인구를 초과해 선거구를 조정하거나 신설해야 한다. 반면 경북 6곳, 전북 4곳, 전남 3곳, 강원 2곳은 인구가 미달해 선거구를 다른 곳과 합쳐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치권에 선거구 재획정을 둘러싸고 몇 가지 쟁점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선거구획정위원회 구성과 위상에 관한 것이다. 현재 획정위는 국회에 존재하며 국회의장 자문기구이고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다. 통합선거법에는 볍 문제는 아무리 획정위가 안을 만들더라도 의원들로 구성된 국회 정치개혁 특위에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획정위를 국회가 아닌 중앙선관위에 비정파적이고 독립적인 기구로 구성하고 획정위가 결정한 사항을 국회가 찬․반여부만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의원들이 선거구를 기형적으로 획정하는 게리맨더링을 막을 수 있다. 

 

둘째, 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논의이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표의 등가성을 해소할 장치로 기존의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구제, 도농 복합제 등으로 대체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원혜영 새정치연합 정치혁신실천위원장은 “농촌은 소선거구제를 지키되 선거구가 3곳 이상인 도시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권력구조와 선거구제간에는 조화성이 존재한다. 가령,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소선구제, 내각제 국가에서는 소선거구와 비례대표제의 혼합(독일, 일본 등) 또는 정당명부식 대선거구제(스웬덴 등)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중․대선구제를 채택하는 나라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런 조합은 지극히 기형적이라는 반증이다. 따라서 만약 선거구제를 개편한다면 지역구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전국을 5-7개 권역으로 나누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 다만,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하고, 의석을 배분할 때 인구 비례가 아니라 모든 권역에게 동일하게 의석을 배분할 필요가 있다. 이럴 경우, 지역구는 표의 등가성을 유지하고, 권역별 비례 대표에서는 지역 대표성을 강화시킬 수 있다.  

 

201411162011213td2qtv457.png
 

 

셋째, 의원 정수에 관한 논쟁이다. 전 세계적으로 의원 정수가 사전에 정해지지 않은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우리 헌법에는 “국회의원 정수는 200인으로 한다”고 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선거구획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역구 의석이 줄기도 하고 늘기도 한다. 이번에는 의원 정수를 고정시키고 지역구와 비례 대표간의 비율도 정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 가령, 의원 정수를 300인으로 고정하고, 지역구(200인) 대 비례구(100인) 비율을 2 대 1 또는 지역구(225명) 대 비례구(75명)의 비율을 3 대1로 고정시키는 것이다. 민주정치는 경쟁에 기초한 정치유형이다. 선거구 획정을 포함한 정치 게임의 기본 규칙인 선거 제도의 형평성과 공정성은 민주정치의 승패를 결정한다. 선거제도가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장에서 결정될 때 이것은 마치 “사회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경제생활 전체를 직접 관리하는 통제 경제에 견질 수 있는 통제 민주주의(command democracy)가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정치권은 잊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 어떤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하더라고 여성의 대표성을 훼손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간 전문인으로만 구성된 초당파적 ‘선거구 획정위원회’와 ‘선거제도 개혁 위원회’가 조속히 발족되어야 한다. 특히, 이들 위원회에서는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뿐만 아니라 지방선거의 선거구획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도 이뤄져야한다. 현재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 구성에 관한 것은 통합선거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지방선거의 경우, 이러한 규정이 없는 실정이다. 오직 통합선거법 제26조에 지방의회 의원 선거구의 획정에 관한 규정만이 있을 뿐이고 지방선거 선거구획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선거 연구에서도 선거구획정에 대한 논의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상설·독립적인 선거구획정위를 조속히 발족시키고 학계 전문가들과 충분한 시간과 정보를 갖고 국회의원선거뿐만 아니라 복잡하게 얽혀있는 지방의회 선거구획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한편, 지역구 의원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선거구 획정 주기를 기존과 같이 매4년마다 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갖고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의 경우,   매 10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센서스 자료를 기초로 하여 주별 의원정수와 주선거구를 재조정 한다. 영국에서는 l994년에 제정된 의석재분배법(the Redistriction of Seats Act)에 의해 선거구위원회 (Boundary Commission)가 설립되고 매 3년에서 7년 마다 선거구의 재분배를 위한 포괄적인 획정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1958년 법을 개정하여 선거구획정을 매10년~15년 마다 이루어지도록 했다. 하지만, 1992년에는 의회선거구법(the Parliamentary Constituencies Act)을 개정하여 의석 재분배 기간을 8년 이상 12년 이하로 조정했다.(강휘원,2002: 350-1). 우리나라의 경우, 통계청에서 5년 주기별 인구센서스를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센서스 자료를 기준으로 10년마다 국회의원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거제도 문제에도 관심을 더불어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할 때는 권력구조, 정당체제, 선거 제도간 제도의 조합성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특정 정당에게 유리하게 과도한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왜곡 효과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1411162011544y238y0psy.png
 

이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없다. 보다 완벽한 것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다만, 2016년 총선을 위한 선거구 획정이 헌법 재판소의 판결 정신을 존중하고 인구 대표성과 지역 대표성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 현 시점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여야가 일종의 ‘선거제도 개혁 로드맵’을 합의해서 이를 제시해야 한다. 공직선거법에서 선거구획정위는 선거일 6개월 전에 획정안을 마련해 국회의장에게 제출하게 돼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국회가 총선일 전 언제까지 선거구 획정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따라서 국회는 이런 치명저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개혁 특위를 작동시켜 내년 1월까지 선거구 획정위 구성과 위상에 대한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국회 정치개혁 특위는 최소 내년 3월까지 국회의원 선거제도에 관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를 토대로 선거구 획정위원회는 내년 8월까지 획정위안을 매듭짓고 국회는 즉시 이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만약 국회에서 이견이 있으면 이를 조율해 국회 최종 선거구 획정안을 내년 10월까지 매듭져야 한다. 

 

만약, 여야 대표와 혁신 위원장들이 이런 로드맵을 관철시키기 위한 의지가 없으면 2016년 총선은 과거와 같이 결국 시간에 쫒기면서 선거구 획정은 졸속으로 처리되고, 선구제도 개혁도 여야간에 논쟁만 있고, 실천은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는 총선일(4월15일) 불과 37일 전인 3월9일,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는 총선일(4월9일) 50일 전인 2월22일, 그리고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는 총선일(4월11일)을 44일 앞둔 2월27일에야 최종 선거구 획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선거에 임박해서 선거구가 획정될 경우 기득권을 갖고 있는 집권당, 제1야당, 그리고 현역 의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될 수밖에 없다. 

 

특히 오랜 기간 동안 총선을 준비해 왔던 정치신인의 경우, 선거가 임박해서 선거구가 통합될 경우, 큰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선거법도 선거구 획정안이 최소한 선거 6개월 전까지는 국회에 보고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학계, 언론, 시민단체들은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선거제도 개혁 공론화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33
  • 기사입력 2014년11월16일 20시1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2시03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