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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 환수 재연기는 불가피했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10월28일 18시51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30분

작성자

  • 김태우
  • 前 통일연구원 원장, 前 국방선진화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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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전작권 환수 재연기는 불가피했다

 

   10월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46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의 안보와 관련한 분수령적인 결정이 이루어졌다. 6.25 전쟁 발발과 함께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고 있었고, 다급한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에 주둔 중인 맥아더 장군에게 급히 달려와서 침략군을 막아달라고 애원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미군에게 넘겨졌다. 종전(終戰) 이후에도 한국군은 취약하기 짝이 없었고, 한국정부는 미군이 계속해서 작전통제권을 맡아주기를 원했다. 

 

 이 체제는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될 때까지 지속되었고, 한미연합사는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실행하는 부대로 정착했다. 이후 한국의 정치경제적 성장과 함께 한국은 1994년에 평시 작전통제권을 되돌려 받았고, 이제 전시작전통제권만 한미연합사를 통해 행사되는 체제만 남아 있다. 한미연합사는 미군 4성 장군이 사령관이고 한국군 4성 장군이 부사령관을 맡고 있으며 휘하 조직들에도 양국군 장교들이 배속되어 있다. 때문에 정확하게 말해 현 상태는 “한미 양국이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을 공동으로 행사하지만 미군이 주도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전작권 환수’라는 표현보다는 ‘전작권 분리’라는 표현이 더 맞다. 

 

 어쨌든 한미 양국은 2015년말부로 전작권을 분리 또는 환수하는 것으로 합의했었고, 그렇게 되면 전작권 행사를 위해 존재해온 한미연합사도 당연히 해체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한미안보협의회에서 양국의 국방장관이 전작권의 환수 시점을 2020년대 중반으로 다시 미루고 연합사도 해체하지 않고 서울에 잔류시키기로 하는 양해각서에 서명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해, 전작권을 예정대로 2015년에 환수하는 것과 환수시기를 미루는 것 사이에는 다양한 장단점들이 교차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완전히 옳고 다른 쪽이 완전히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의 국내외 안보정세와 장단점들의 경중(輕重)을 종합할 때, 이번 결정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전작권 환수란 언젠가 이루어져야 할 일이지만 노무현 정부가 부적합한 여건에서 서둘러서 환수를 추진한 것이 잘못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전작권 분리 시점의 재연기는 안보흐름에 역행하는 결정을 내린 과거 정부의 오류를 바로잡은 불가피한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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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 보건대, 2005~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 전작권의 조기 환수를 추진했던 사람들과 외부의 찬성세력이 펼쳤던 논리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국가자존심을 위해서라도 군사주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연장선에서 찬성자들은 그래야 한국이 미국의 하수인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독자적인 군사외교를 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둘째는 그토록 많은 국방비를 써왔으니 충분한 독자능력을 갖춘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맥락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언제까지 미국 아저씨들의 바지가랭이를 잡고 갈거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셋째는 전작권의 환수에도 불구하고 동맹이 깨지는 것도 아니고 미국의 개입의지가 약화되는 것도 아니며, 한미군이 따로 전작권을 행사하는 체제 하에서도 중간에 군사협조센터(MCC) 같은 것을 두고 협력하면 동일한 지휘의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들이 일정한 설득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었고, 이들이 펼친 ‘자주’ 논리는 적지 않은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주의적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에게는 조기 환수에 반대해야 하는 논리가 설득력에 있어 찬성 논리를 압도했다. 사실이 그렇다. 국가 자존심 논리보다는 전쟁을 억제할 가능성과 전쟁 발발시 승리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현재의 전작권 체제가 북한의 오판을 막고 북핵 위협을 관리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우선은 유지하는 것이 좋다. 국가 자존심이라는 것도 그렇다. 나토(NATO) 체제 하에서도 유사시 미군정성이 사령관을 맡게 되어있지만 이를 국가 자존심과 연관시켜 시비하는 회원국은 없다. 한국의 독자적 군사외교 문제에 대한 논리도 현실과 다르다. 한국이 평시작전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독자적 군사외교를 펼치기 어렵다는 논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군의 능력 문제도 그렇다. 오랜 현대화 직업에도 불구하고 감시정찰(ISR), 지휘통제통신(C4I), 정밀타격(PGM) 등의 분야에 있어서 한미군 사이의 격차는 여전히 엄청나다. 현재 북한의 핵미사일 실전배치에 대비하기 위해 구축하고 있는 미사일방어(MD), 킬체인(kill chain), 맞춤형 억제 등은 모두 이러한 첨단장비와 체계에 의존하는 것인데, 한국이 이 분야에서 미군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전쟁을 억제하는 길이자 국방예산을 아끼는 길이라는데 이설(異說)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전작권을 분리해도 유사시 미국의 개입의지가 약해지지 않는다는 논리는 상식에 맞지 않는다. 현재의 연합사는 한미 양국군을 단일 지휘체계로 묶은 단일부대의 형태로서 전쟁발발시 한국군의 대응과 함께 미군도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체제다 다시 말해, 유사시 미국의 개입을 가장 확실하게 보장하고 있다. 전쟁이 나더라도 양국군 협력체제가 단일지휘체제 만큼 효율성을 발휘한다는 주장은 2인3각으로도 혼자 달리는 것만큼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 

 

  돌이켜 보건대, 노무현 정부의 전작권 조기환수 시도는 안보흐름에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당시 정부의 전망과는 달리 북한은 2006년 제1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비대칭적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이듬해인 2007년 김장수 국방장관을 워싱턴으로 보내 2012년부로 전작권을 환수하는 합의서에 서명하도록 했다. 이 무렵, 1978년 연합사 창설의 주역이었던 류병현 전 합참의장은 자신의 저서 「한미동맹과 작전통제권」에서 “전쟁억제에 가장 효과적인 세계에서 유일한 한미 연합방위체제를 흔드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절규했지만 정부는 노병(老兵)의 충정어린 주장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국책연구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리고 반대의견을 개진하지 말도록 독려하고 있었다. 필자의 경우에도 성급한 전작권의 분리는 득(得)보다 실(失)이 더 많다는 언급을 했다가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안보여건을 재검토한 후 전작권의 환수시기를 2015년으로 연기했지만, 북한의 핵개발이 지속되고 한반도의 안보불안이 커지면서 재연기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분출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의 전작권 환수의 재연기는 당연히 시대적 안보상황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 조치는 내심 전작권 분리와 함께 한미동맹이 약화되기를 손꼽아 기대했던 북한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이겠지만, 이는 핵개발을 강행하면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개성공단 차단 등을 통해 일촉즉발의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 북한이 당연히 지불해야 할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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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현재의 전작권 체제를 당분간 유지하기로 한 것은 불가피한 조치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체제가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한국군은 진실로 독자적 작전능력 배양에 진력해야 한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킬체인(kill-chain)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가 완성되고 군사정찰위성이 확보되는 2023년경을 ‘홀로서기’를 시도할 시기로 밝히고 있지만, 어찌 그 뿐이겠는가. 고가의 첨단장비와 무기를 확보하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은 한국군이 배양해야 할 정신자세이다. 이 기회에 동맹국에 대한 의타심(依他心)을 청산하고 스스로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고 남북관계를 주도하는 능력을 배양하지 못한다면, 이번 전작권 환수의 재연기는 한국군의 역사에 누를 끼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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