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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지배구조, 무엇이 문제인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12월24일 21시26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7시34분

작성자

  • 오성근
  •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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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지배구조, 무엇이 문제인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을 둘러싸고 논란은 무척 많다. 수익률 시비에서부터 기금운용의 방법에 이르기까지 걸핏하면 시비가 걸린다.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기금을 끌어다 쓰겠다고 결정한 것도 그렇고, 기금운용을 진두지휘하는 기금운용본부장의 임면과 관련한 인사 잡음도 심심치 않게 대두된다. 모두가  후진국형 권력 다툼의 전형이다. 

지난 10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임기 7개월여를 앞두고 조기 사퇴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거의 보름간의 진통을 겪었다. 더구나 불과 이틀 후 국민연금이 오랫동안 준비한 대규모 국제회의를 목전에 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마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당연히 참석자들은 사태보도를 접하고 회의개최여부를 문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회의는 무사히 끝난 모양이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초청한 이사장이 갑자기 사직하였으니 아마 참석자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고 짐작된다. 2008년 4월이 떠오른다. 그때 필자도 갑자기 기금운용본부장직을 그만두었다.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워싱턴 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각국대표 300여명에게 국민연금 기금운용지배구조 진행사항 설명 차 출국하기 3일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회의참석자들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굴이 화끈거린다. 원칙과 기본이 바로 서지 못한 때문이다. 이번 일은 이사장의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연임불가조치가 발단이었다. 법해석상 모호한 점이 있었다지만 연임불가를 되돌릴만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신규로 선임할 때는 몰라도 연임판단은 이사장이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것이 상식에도 맞는 일이다. 전례도 있다고 한다. 복지부와 40일 동안이나 협의했다고도 한다. 이사장으로서야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오죽했으면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이사장이 그렇게 결정했을까. 그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을 것이다. 옳고 그르건 경영판단이 존중되지 못하면 조직을 어떻게 이끌어갈 수 있겠는가. 

 

Trust & Power. 프란시스 후쿠야먀의 말이다. 누구라도 신중하게 선발하고 한 번 선발한 사람은 신뢰해야 한다. 믿고 맡긴 후 성과로 평가하면 된다. 부하간부 인사권도 제대로 행사치 못하고서야 어떻게 힘 있게 조직을 이끌 수 있겠는가. 아무리 못마땅했어도 그렇게 물러나게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회의참석자들도 밖으로는 별 말들이 없었겠지만 자기들끼리 숙덕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이 회의를 끝내고 돌아가서 이번 일을 그냥 잊어버리고 말까. 아마 기억에 오래 남아 두고두고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다. 웃음거리가 안 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렇게밖에 달리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까? 우리 스스로 자기 힘을 갉아먹는 이런 한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세계적인 기금규모를 말해본들 무엇하랴. 누워 침 뱉기가 아닐 수 없다.

본부장 연임불가결정도 마찬가지다. 연임을 해봐야 불과 3년이다. 이사장 결정이야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초장기간 지속되는 기금특성을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일은 지배구조문제가 근본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기금운용본부장의 위치가 지배구조상 좀 애매하게 되어있다. 마치 두 의자 사이에 걸터앉아있는 처지라고나 할까. 매우 어색하고 불편한 처지다. 기금운용본부장은 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 복지부장관)의 의결사항을 집행한다. 기금운용본부를 거느리는 이사장은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위원 20명 중 한명에 지나지 않는다. 본부장이 의결사항을 집행하며 기금운용을 하지만 운용결과에 대한 책임은 이사장에게 묻고 있다. 복지부장관에게 묻는 것이 옳은데도 말이다. 이사장으로서야 기금운용에 뒷짐 지고 있을 수만도 없게 되어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이번 일로 관련규정을 고쳐 모순된 사항들을 고친다고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대로 손보았으면 좋겠다. 꼭 이렇게 온통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서야 바로잡아질 수밖에 없을까. 그러나 솔직히 얼마나 고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고 볼 일이다. 기금운용본부가 설치된 것은 1998년으로 1988년 국민연금 출발 10년 후이다. 지금의 기금운용본부장이 여섯 번째다. 그동안 소리 없이 임기를 제대로 마친 사람은 단 1명뿐이다. 불행한 일이다. 이번 일을 끝으로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처럼 기금운용의 최고책임자(CIO) 임기가 매우 짧은데다 그것도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잦은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왜 그럴까? 단순히 시행착오로 보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제대로 된 사람을 선발해 오랫동안 일하게 해야 한다.

 

해외연기금 사정은 어떤가? CIO의 임기가 우리처럼 불안정한 나라는 없다. 초장기간 지속되는 기금특성 때문일 것이다. 필자 재임 시 거의 20년 가까이 일하는 CIO를 만난 적도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교직원연금 CIO였다. 해외연기금의 경우는 5년 정도는 기본이고 평균 10년 정도는 재직하는 것 같다. 임기 2년이고 잘하면 1년 연장되는 지금의 우리 제도는 고쳐야 한다. 그 자리가 무슨 혜택을 받는 자리도 아니지 않은가. 어렵고 고달픈 자리다.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골치 아픈 자리다. 온갖 말들을 듣고 소화해야 하는 자리다. 한 사람이라도 거슬리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조심스러운 자리다. 투자결정 하나하나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다. 마치 무슨 혜택이라도 누리는 것처럼 단기간에 사람을 바꿔치는 그런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금가입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국민연금은 장애연금과 유족연금도 있지만 노령연금이 80%이상으로 대부분이다. 노후에 대비해 매달 붓고 있는 기금가입자 입장에서 보면 기금운용책임자를 그렇게 자주 바꾸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될까? 불안해할 수도 있다. 도대체 일들을 어떻게 하기에 그런 꼴을 보이느냐고 질책하지 않을까? 국민연금은 국가의 기본 인프라이다. 우리는 모두 가지만 제도는 남아 후손들에게 이어진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흔히 선진국 진입이 멀지 않았다고 말들 하지만 기본중의 기본인 이런 일들이 이렇게 처리되고서야 어떻게 선진국이 될 수 있겠는가. 선진국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원칙과 기본이 바로 선 나라다. 원칙과 기본이 흐트러진 선진국을 본 일이 있는가. 원칙과 기본 앞에서는 무자비한 것이 선진국이다.

 

기금운용본부장 임기 2년은 너무 짧다. 2년 만에 그만두게 될 자리가 되어서는 기금운용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없다. 2년 동안의 성과평가로 초장기기금의 운용본부장 실적을 평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도 않는다. 더구나 그가 기금포트폴리오를 온통 새로이 구성하여 출발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는 계주선수처럼 다만 전임자의 포트폴리오를 이어받아 운용해나갈 뿐이다. 본부장 재임기간 중 기금수익률을 극적으로 반전시킬 수는 없다. 물론 본부장 재량에 따른 전술적 자산배분으로 기금수익률을 높일 여지는 없지 않지만 거대기금의 기금운용수익률은 98%이상이 전략적 자산배분에 달려있다는 것이 세계연기금의 과거통계이다. 기금규모 때문이다. 기금운용성과는 투자환경 예측에 근거한 전략적 자산배분 여하에 달려있다.

 

현재 기금운용성과는 벤치마크대비 수익률로 평가한다. 예컨대 벤치마크지수가 연간 마이너스 10%인데 기금수익률이 마이너스 7%라면 3%만큼 잘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것이 기금운용의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벤치마크대비 우수한 성과를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너무 관대한 평가기준은 아닌지 모르겠다. 기금운용위원회에서는 매년 봄 목표수익률이 주어지고 목표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한 자산배분을 한다. 목표수익률을 보다 정교하게 산출 책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기금운용입장에서는 매우 가혹한 기준이겠지만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투자환경이나 기금규모의 증가속도를 감안하면 좀 더 타이트하게 할 필요가 있다. 안정적인 연금지급을 대비한 위험관리는 처음부터 치열하게 해서 나쁠 것이 없다. 

 

기금은 갈수록 커가고 투자환경은 날로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수익률에 대한 관심 또한 어느 때보다도 높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수익을 높이자면 위험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수익성과 안정성, 어느 길이 옳은가. 이는 중대한 문제로 어느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기금운용의 방향이 갈린다. 기금운용의 형이상학이라고나 할까. 누구나 일부러 악한 길을 가려는 사람은 없다. 선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길로 가는 것이다. 선하다고 생각할수록 그 길을 고집한다. 그러나 세상만사 작은 선에는 작은 악이 따르고 큰 선에는 큰 악이 따르기 마련이다. 선악은 나란히 간다. 수익성과 안정성도 마찬가지로 기금운용목적에 합치하는 것은 선이고 반하는 것은 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양분해 볼일이 일이 아니다. 수익성과 안정성은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이 거의 동시에 갈리게 될 초유의 사태다. 기왕지사 벌어진 일이다. 누굴 탓해 무엇 하랴. 헤쳐가야 할 과제가 산적해있다. 이제 그만 혼란을 끝내고 눈앞의 일에 집중해야 한다. 변화는 급작스럽게 오지 않는 법이다. 우리 각자의 수준범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변혁은 천천히 온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 수용범위를 벗어난 개혁은 오히려 갈등과 혼란을 키우기 쉽다. 지난 일을 타산지석 삼아 과도기의 혼돈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모쪼록 하루빨리 그간의 상처가 봉합되어 전화위복 새 출발의 전기가 되기를 빌어본다. 훌륭한 기금운용본부장이 선임되어 탁월한 운용성과를 이루어냄으로써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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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12월24일 21시26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7시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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