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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만 문제가 아니다: 국회법 개정 유감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7월05일 20시1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2시04분

작성자

  • 김병준
  • 국민대 명예교수, 前 대통령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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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대통령만 문제가 아니다: 국회법 개정 유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의 오리지널 버전 앞부분을 읽어보자. “상임위원회는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제출한 대통령ㆍ총리령ㆍ부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ㆍ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

 

그다음 뒷부분도 한번 보자. 역시 오리지널 버전이다.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수정ㆍ변경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당장에 강제성이 있다 없다, 위헌이다 아니다 시끄러워졌다. 그러자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는 이를 수정하였다. 즉 ‘요구’를 ‘요청’으로 바꾸었다. 이른 바 의장과 상임위원회가 가진 의안정리 권한, 즉 본회의 의결이 있은 후에도 ‘서로 저촉되는 조항 자구 수자 등’을 정리할 수 있는 권한을 활용한 것이다.

 

자, 이제 물어보자. 이러한 ‘정리 행위’로 개정안의 의미가 바뀌었나, 안 바뀌었나? 문제는 상임위원회의 ‘요구’가 강제성이 있느냐 없느냐 여부다. 그래서 강제성이 없어졌나? 아니면 강제성이 그대로 남아 있나? 또 아니면 원래 없던 것이라 ‘정리 행위’를 했든 안 했든 달라진 것이 없나?

 

사실 강제성이 있고 없고를 문제 삼고 싶지 않다. 물어봐야 책임을 가지고 대답할 주체도 없다. 여당 다르고 야당 다르다. 또 그 강제성의 위헌여부도 따지고 싶지 않다. 궁극적으로 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답할 문제이다.

 

묻고 싶은 것은 오히려 이러한 ‘정리’ 행위로 개정안의 의미가 바뀌었나, 아니냐이다. 정리 행위 이전에 국회 스스로 묻고 또 물었어야 할 질문이다. 

 

왜 이 질문이 중요한가? 이유는 간단하다. 의미가 바뀌었으면 그것은 국회법이 규정한 ‘정리’ 행위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국회가 국회의장과 상임위원회에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에 의미 있는 수정을 할 수 있도록 하겠는가? 의미가 바뀌었다면 당연히 번안사안, 즉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 다시 의결해야 하는 사안이 된다. 결과적으로 국회의장과 상임위원회, 그리고 여야 원대대표들은 국회법을 위반한 범법자가 된다.

 

의미가 바뀌지 않았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국민과 대통령 그리고 행정부를 우롱한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즉 의미 없는 것을 마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속인 것이 된다.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국회는 답해야 한다. 의미가 바뀌었나, 바뀌지 않았나? 스스로 집합적인 답을 할 수 없다면 국회는 이미 국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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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를 피하기 위해 중간에 한 마디 하고 가자.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이 옳다는 말이 아니다. 거부권행사는 그 나름 많은 문제가 있다. 한마디로 대통령답지 못했다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사람의 판단이다. 다만 이 문제는 언론이 이미 글을 준 상태라 여기서는 그냥 넘어갈 뿐이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짧은 글인 만큼 하나만 더 지적하기로 하자. 다름 아니라 상임위원회가 국회를 대신하여 ‘요청’하고, 이 요청을 받은 중앙행정기관장은 이 ‘요청’을 ‘처리하게’ 되어 있는 부분이다.

 

우선 정서적으로 상임위원회가 이런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기업이나 협회 등 이익집단 차원에서 생각해 보라. 국회의원 과반수를 ‘구워삶기는’ 힘들어도 상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몇 명 ‘잡는’ 것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국회가 상임위원회 중심이 되면서 입법로비가 판을 치고 있든 판이다.

 

그래서 이런 조직에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개입하고 ‘처리하게 하는’ 포괄적인 권한은 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권한을 위임하더라도 명시적으로 어떠어떠한 부분에 어디까지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정해서 해야 한다. 즉 개별위임에 명시위임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삼권분립이 잘 지켜지는 나라로, 또 의회의 권한이 비교적 큰 나라로 알려진 미국만 해도 행정부에 이미 위임한 사안에 대해 국회가 다시 개입하여 행정부의 행위를 수정하거나 무력화 시킬 때는 법률에 명시적 규정을 만들어 했다. 소위 입법비토(legislative veto)인데, 이마저도 1983년 연방대법원에 의해 위헌으로 판결이 났다. 경우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이번의 경우와 관련하여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렇게 물을 수 있다. 현행 국회법도 대통령이나 부령 등이 입법취지나 내용에 어긋났을 때에는 상임위원회가 중앙행정기관에 통보하고 그 처리계획을 보고받게 되어 있지 않느냐? 지금도 상임위원회를 주체로 하고 있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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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 지금의 국회법은 상임위원회로 하여금 일종의 권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권고야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의 내용은 상당히 다르다. 국회가 ‘요청’하면 이 요청을 받은 중앙행정기관장은 이를 ‘처리’한 후 상임위원회에 보고하게 되어 있다. ‘처리하고’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한다. 대통령 편을 들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어떻게 국가를 이렇게 운영할 수 있을까하는 한숨만 나온다. 그러나 그 이전에 국회가 좀 더 국회다웠으면 하는 마음에 적어보는 글이다.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도 하지 않고, 일을 할 능력도 없는 국회가 권한만 강화해서 어쩌자는 것인지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나라는 분권적 체제 아래, 또 연방체제 아래 국회는 지방의회와 상호보완적 체제를 운영하기도 하고, 또 상호 경쟁도 한다. 우리는 뭔가? 국회 스스로 말도 안 되는 입법과 정당운영을 통해 지방분권과 지방의회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서 모든 입법권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걱정이 없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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