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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 욕만 하고 말 일이 아니다 --서로를 향해 욕하고 삿대질이나 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4월26일 18시54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5시28분

작성자

  • 김병준
  • 국민대 명예교수, 前 대통령 정책실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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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완종 리스트,’ 욕만 하고 말 일이 아니다

 

‘그가 명예 경영학박사를 받던 날,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렸다 한다. 아버지 같지 않았던 아버지, 그 아버지에게 쫓겨 난 어머니, 어머니 대신 안방을 차지한 계모 밑에 자라다 결국 자신도 쫓겨나듯 집을 나오고, 그 뒤의 끝없는 고생, 그리고 명예박사학위를 받을 정도의 자수성가, 어찌 눈물이 없었겠나.’

 

누구 이야기인가? 고 성완종 경남기업회장의 이야기이다. 어찌어찌 그 불행한 과거를 딛고 돈을 벌었던 사람, 그러나 그 잘나가던 시절에도 스스로를 위해서는 돈 한 푼 함부로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몇 만 원짜리 양복에 제대로 된 가구 하나 없는 방에서 살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서인지 적지 않은 장학금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다.

 

그런 그가 부정한 방법으로 여기저기 돈을 뿌렸다. 뿌리고 싶어 뿌렸겠나. 성공하기 위해서 뿌리고, 살기 위해서 뿌리고, 버티기 위해서 뿌리지 않았겠나. 형편없는 집안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그가 힘을 쓸 수 있는 방법이 그 외에 뭐가 있었겠나. 돈으로 인연도 맺고, 돈으로 사람과 권력도 사고, 돈으로 지연도 살리고, 그렇게 살지 않았겠나.

 

더러운 세상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좋은 집안 출신에 학벌 좋은 사람들이 몸짓 하나에 전화 한 통화로 끝낼 일에 그는 돈 보따리를 싸 날라야 했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나고 자라길 그렇게 자랐으면 그냥 그렇게 살아갈 것이지, 뭘 하겠다고 이 짓까지 하며 사느냐 스스로 자책도 했을 것이다.

 

그러고도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참한 죽음이었다. 그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그의 주검 앞에 고개도 제대로 숙이지 않았다. 그의 구명 요청을 나 몰라라 했고, 그가 죽은 뒤에는 그와의 인연을 부정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뿌리고도, 그래서 국회의원까지 하고도 그는 끝내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 세상에서의 이방인이었다.

 

다시 한 번, 더러운 세상이다. 인연은 왜 맺고 그 인연을 부정하기는 왜 부정해. 무엇이 겁이 나고 무엇이 탐이 나 목숨을 끊은 한 많은 사람과의 인연까지 부정해. 죽은 뒤 어떤 세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세상은 못 갈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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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하면 양쪽 다 딱한 사람들이다. 잘못된 세상의 희생자들이다. 즉 돈이 있어야 정치도 하고 선거도 하는 세상, 또 어떻게 해서라도 권력에 보험이라도 들어 두어야 장사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세상, 바로 이 잘못된 세상이 만든 잘못된 인연이기 때문이다.

 

내 자신 스스로를 고백을 하자면 공직에 있는 동안 아찔한 순간들이 많았다. 돈이 필요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를테면 청와대 정책실장 시절 써야 할 돈이 적지 않았다. 각종의 모임에다가 협의하고 중재할 일도 많았고, 공식적으로 지불하기 어려운 정책 작업들도 많았다.

 

더욱이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라는 점 때문에, 또 대통령선거 때 정책자문단장을 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진 일이 있어 지출은 더욱 많았다. 명절 선물에 화환 보낼 일도 많았고, 금일봉에 밥값을 보내야 할 데도 많았다. 특강과 강연을 가도 강연료를 받기는커녕 식사를 대접하거나 소주 값을 내 놓고 오곤 했다.

 

늘 돈 걱정이었다. 초기에는 집에서 가져다 썼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차츰 부담이 되는 판에 대통령이 이를 눈치 챘다. 어느 날 불쑥 던지는 한 마디, “돈은 어떻게 쓰고 있나요? 궁하면 재주 부리게 되는데, 재주도 없는 사람이 재주 부릴까 겁나네. 내가 쓰게 되어 있는 돈 조금씩 나누어줄테니 가져다 쓰세요.”

 

대통령의 그 뜻이 아니었으면 정말 재주를 부리려 하지 않았을까? 필요하면 언제든 ‘심부름’ 시켜달라는 사람들, ‘형제 같고 친구 같은 사이’에 문제될 게 뭐 있느냐 되묻는 사람들, 그리고 ‘내 돈은 괜찮아’라고 호기 부리는 사람들, 그들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자신 없다. 그래서 함부로 욕을 하지 못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나 그와의 인연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향해 남들처럼 함부로 손가락질 하지 못한다.

 

솔직히 정치권은 더 할 것 아니냐? 평상시 정치활동은 다 제쳐두고 당내 선거만 해도 그렇다. 당대표 선거와 최고위원 선거의 경우 246개 지역구에 평균 100만 원을 쓰면 약 2억 5천만 원, 300만 원이면 약 7억 5천만 원이 된다. 이런 선거가 이 정도일진데 대통령후보 경선은 어떨까? 당에 내는 경선등록 비용부터 3억 원 안팎이다. 더 말할 게 없다. 그냥 상상이나 하자.

 

이 돈은 다 어디서 올까? 당연히 국고보조금으로 보전이 되지 않는, 그래서 각 캠프에서 ‘알아서’ 구해 써야 하는 선거들이다. 후원금을 거두어 쓴다지만 당대표 선거의 경우는 1억 5천만 원, 대통령후보의 경우는 공식선거 비용의 5%, 즉 지난 대선의 경우 약 28억 원이 그 한도이다. 턱도 없는 돈이다. 계산이 성립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몰래 주는 사람과 몰래 받고도 그 인연을 부정하는 사람을 욕할 수만은 없다.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그러니 선거만 끝나면 선거자금 문제가 터진다. 심지어 이 문제에 있어 가장 자신 있어 했던 노무현대통령조차 대선자금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액수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누구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기 힘이 든다는 말이다.

 

머리를 맞대고 고쳐야 한다. 당장에 정당개혁부터 해야 한다. 정당이 정당 같지 않으니까 돈이 더 든다. 이를테면 정책관련 조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까 대통령후보부터 사설 정책조직을 운영해야 하고, 당원이 당원 같지 않으니까 별도의 사조직들이 이런저런 사설 캠프들을 만들어야 한다. 하나 같이 다 돈이 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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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만 생기면 문제를 풀 생각은 하지 않고 그것을 무기 삼아 상대를 찌르기나 하는 병, 이번에도 그 병이 도졌다.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 서로 삿대질만 하고 있다. 한 쪽이 돈 받아먹었다 공격을 하니, 또 다른 한 쪽이 고인이 사면된 것이 어쩌고 하며 물고 늘어진다.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는 애초에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이대로 다음 선거를 치르면 또 다시 돈 문제가 나라를 어지럽힐 것이다. 행정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돈의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으면 사고가 난다. 누가, 어느 쪽이 집권하건 그렇다. 문화도 바뀌고 제도도 바뀌어야 하는 거대한 문제가 우리 앞에 있다는 이야기이다.

 

고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은 성회장의 모습에서, 또 그들과의 인연을 부정하는 비겁한 사람들에게서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똑 바로 봐라. 그 들의 모습 안에 그들을 향해 욕이나 하고, 서로를 향해 삿대질이나 하는 우리의 모습이 있는지 없는지. 

 

 

참고 동영상 : [IFS 3 minutes] 성완종 리스트,욕만 하고 말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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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5시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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