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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좀 생각하고 말합시다: 일구난방(一口難防)을 경계하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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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3월29일 23시1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2시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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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좀 생각하고 말합시다: 일구난방(一口難防)을 경계하며

 요즘 국내경제운용의 혼돈을 보노라면 문득 일구난방(一口難防)이란 말이 떠오른다. 뭇사람의 말이 옳든 그르든 일일이 대꾸하기 어려울 때를 중구난방(衆口難防)이라고 한다면, 힘 있는 한 두 사람의 거침없는 언변에 시장의 뒤틀림을 보기에 나오는 말이다.

 

 나라 경제를 움직이는 원리는 시장이냐 명령이냐로 갈린다. 명령경제는 한때 반짝하다가 비효율과 부패로 몰락하고 현재 지구상에는 초라한 잔상(殘像)들만 남겼다. 동서고금 정부명령이 시장의 수요과 공급을 이긴 적이 없다. 사고 파는 두 쪽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마주쳐야 시장거래가 성립한다. 모든 조건이 같은 복제인간들(clones) 간에는 어떤 거래도 아무 시장도 없다.

 

‘창조경제’가 현 정부의 화두이다. 전에 없던 새로운 것(아이디어, 상품, 기업)을 만들어낸다는 뜻이 ‘창조’라면, 새싹을 틔우기 위해 낡은 것을 솎아내는 구조조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빈터가 생기고, 기술노동과 신용 공급의 여유가 생긴다.

 

 ‘비올 때 우산 걷는’ 일은 금융 ABC이다. 이 일을 게을리하면 득실대는 좀비(zombie)기업에 막혀 신규기업의 진입 숨통이 막힌다. 그 비가 가랑비냐 태풍비냐의 판단은 정부가 아니라 거래은행이 최적임자이다. 부실을 잘라내야 신규자금 공급이 가능하다. 은행돈은 무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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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국자들이 공돈으로 여기는 은행자금은 수많은 불특정 다수의 예금자가 믿고 맡긴 돈이다. 이 돈을 원금손실 없이 굴리는 은행원의 신중함이 업무의 제일수칙이다. 위험기피성향의 은행이 사업(위험선택) 성향의 기업과 맞대면하는 대출시장에서 은행마저 과감하면, 기업부실이 곧 은행부실로, 다시 공적자금투입(납세자 부담)으로 연결된다. 은행의 ‘보신주의’(保身主義)를 탓하는 윗분의 말씀이나, 대출부실 발생 시 무책임을 보장하겠다는 감독당국의 발언에 경악한다. 왜 당국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가? 은행은 귀를 막아야 한다. 기업부실이 금융부실을 도화선으로 국가신용위기를 촉발했던 1997년의 전철(前轍)을 되풀이하려는가?

 

 최근 중앙은행 기준금리 인하 이후, 일반은행 금리가 일제히 내렸다. 은행들이 여유자금 대출선 찾기가 고민꺼리인 요즘 상황에서, 모든 은행들이 일시에 기준금리 변동을 따라 한다는 것을 납득시킬 논리가 무엇인가? 좋게 말해서 종용, 솔직히 말해서 팔 비틀기가 아니고서는 말이다.

 

 ‘창조경제’와 ‘기술금융’, 그리고 ‘구조조정’을 추진하자면 은행이 대출 손실부담을 떠안아 삭혀내야 한다. 은행 수익률이 그래서 중요하다. 최근 국내은행 총자산수익률이 0.38%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 은행들의 평균 2%대 수익률에 비해 5분의 1 수준이다. 이자말고 수수료 수입에 치중하라고 하지만, 정치권 포퓰리즘이 가로막는다. 이래저래 은행들은 설사 당국의 말을 따라 대출적극성을 보이려 한다 해도 대손충당금 쌓기가 크게 제한된다. 자칫하면 은행 국유화 사태가 온다.

 

 해외시장이 ‘블루오션’이란 헛구호가 아직 나돈다. 해외진출 권장 문안으로는 쓸만하겠지만, 국내시장보다 더 경쟁이 심한 더 붉은(redder) 오션이 해외이다. 최근 시티은행, HSBC, BNP 파리바 등 세계적 거대은행들이 왜 해외점포를 축소하고 철수하는가? 먹을 게 적어졌다는 얘기다. 국내은행은 현재보다는 국제화에 적극적이어야 하지만 해외에 우리를 기다리는 푸른 초원은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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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국은 ‘삼성전자 같은 은행’을 타령한다. 반문하겠다. 정부가 CEO 지명해줘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세계적 기업이 나왔던가? 분명한 것은 정부 색깔이 보수, 진보 구분 없이 지배주주가 없는 민간 기업은 모두 정부 또는 관료의 소유물로 알고, CEO 등 주요 보직에 낙하산 부대가 출동했다는 잡음이 없던 적이 있었던가? 결국, 한국금융의 근본문제는 은행을 누가 어떻게 통제하느냐, 내부경영 짜임새에 뿌리가 있다. 은행을 권력의 손에서 해방시키는 뾰족한 대안이 오리무중이다.

 

 최근 ‘금융개혁’이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정권 임기 말이던 97년보다 지금은 임기 중이라 시기적으로는 좋아 보이나, 개혁대상일 수 있는 기관이 주관하게 되면 개혁의 방향과 폭이 왜곡될 개연성이 높다. 금융, 좀 진지하게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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