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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개헌이 정치권의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불을 댕겼다. 정 의장은 20대 국회 개원사에서 “개헌은 결코 가볍게 꺼낼 사안은 아닙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문제도 아닙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국회의장으로서 20대 국회가 변화된 시대,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헌정사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겠다”고 했다. 

 

 대한민국 대선은 개헌 논의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대선 때가 되면 각종 개헌 논의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지난 1997년 대통령 선거 때는 ‘내각제 개헌’이 공약으로 제시되었고,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야 후보 모두가 ‘임기 안에 국민의 뜻을 모아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집권 후 4년 중임제와 국민의 생존권적 기본권 강화 등을 포함한 여러 과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해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개헌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무성했던 개헌 논의는 새 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차기 대선이 가까이 오면 개헌론이 또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다. 정치권에서는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할 때 몇 가지 논리를 제기한다. 

첫째,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너무 과도하게 집중돼 있어 극단적 정치 대립을 낳는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너무 많이 몰려 있어 행정이 정치를 무시하고, 권력을 잡기 위한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상쟁의 정치가 판을 친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절충한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가 거론된다. 직선제 대통령이 외교, 안보, 국방 등의 업무를 맡고 다수당 대표가 총리를 맡아 내치를 담당하는 모델이다. 이른바 오스트리아나 프랑스 등이 예다. 

둘째, 19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고 5년 단임제로는 책임 정치를 구현할 수 없다. 5년 단임제에서는 대통령의 국정수행이 다음 선거를 통해 평가받지 못하고, 또한 국가적 전략과제나 미래과제들이 일관성과 연속성을 갖고 추진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든다. 대안으로 대통령의 임기를 5년에서 4년으로 줄이고 중임을 가능하도록 하는 ‘4년 중임 대통령제’가 거론된다. 미국이 대표적인 예다. 

셋째,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맞아야 국정 운영이 안정화된다. 현재 대통령 임기(5년)와 국회의원 임기(4년)가 맞지 않아서 정부는 재임 중에 늘 중간 평가 성격의 총선을 치르게 되고 총선결과 여소야대 정국이 되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말인 2007년 1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켜 만성적인 정쟁에서 벗어나자면서 ‘원 포인트 개헌’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에도 대선을 앞두고 수차례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부상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적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개헌을 현실화하기에 우호적이다. 여야 정당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강력한 대권 후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대선에선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들이 겉으로는 개헌의 필요성에 동의하지만 집권 후에 강력한 통치를 위해 개헌 논의에 미온적이었다. 그런데 현재는 여권의 대권 후보가 가시화되지 않고 야권이 분열돼 특정 정당이나 후보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혼돈돼 있어 역설적으로 개헌의 적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개헌 논의를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은 현재 권력인 박근혜 대통령이다.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제기될 때마다 박 대통령은 ‘개헌은 블랙홀’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적극 반대했다. 집권 4년차인 올해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민생·경제 문제가 모두 묻히고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 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원 포인트 개헌을 제기했을 때 “참 나쁜 대통령이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스스로 ‘나쁜 대통령’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현 대통령 임기내 개헌이 성사되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개헌할 상황이 아니라며 일단 선을 긋고 있지만 개헌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행정안전부 장관 출신인 친박의 정종섭 의원은 개헌 논의가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여 마비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했다. 정 의원은 "개헌의 수위를 권력구조 개편으로 한정하고 그동안 연구해 놓은 대안들을 중심으로 합의가 압축되면 의외로 개헌 논의는 조기에 정리될 수도 있다"고 내다 봤다. 

 

연합뉴스가 지난 6월 19일 여야 국회의원 300명을 상대로 파악한 결과, ‘현행 헌법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83.3%(250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소속 정당별로는 국민의 당이 개헌에 찬성하는 비율이 92.1%(38명 중 35명)로 가장 높았고, 더불어민주당이 86.9%(122명 중 106명)로 뒤를 이었다. 새누리당의 찬성 비율도 77.0%(126명 97명)로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블랙홀론’을 거듭 밝힌 점을 감안하면 찬성 응답은 예상을 뛰어넘는 비율이다. 권력구조와 관련해선 46.8%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24.4%가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를 그리고 14.0%가 의원 내각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들도 개헌 필요성에는 동조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조사결과(6월 21~23일), ‘개헌이 필요하다'는 견해에는 46%, ’개헌이 필요치 않다'에는 34%가 공감했고 20%는 의견을 유보했다. 2014년 조사와 비교하면 '개헌 필요'가 4%포인트 증가하고 '불필요'는 12%포인트 감소했다. '개헌 불필요' 의견이 줄면서 여론의 무게 중심이 '개헌 필요' 쪽으로 약간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행 '5년 단임제'와 4년씩 두 번까지 할 수 있는 '4년 중임제' 중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보는지 물은 결과 38%는 '현행 5년 단임제'를 선택했고, 55%가 '4년 중임제', 8%는 의견을 유보했다. 

권력 구조와 관련해서는 '현행 대통령 중심제'와 '대통령이 국방, 외교 등 외치를 담당하고 총리가 행정, 즉 내치를 맡아서 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중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보는지 물은 결과 '현행 대통령 중심제' 29%, '분권형 대통령제' 49%로 우리 국민 절반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했고 22%는 의견을 유보했다.

 

 국민과 국회에서 개헌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개헌은 우리 사회가 처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무서운 대통령 한마디에 집권당 원내 대표의 목이 날아가고, 국회에선 소수독재가 정당화되는 국회선진화법이 여전히 작동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상임위원장직을 편법으로 1년씩 쪼개서 맡는 편법이 판을 치고, 진영의 논리에 빠진 여야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데 개헌을 한다고 무엇이 바뀌겠는가. 

 

 그렇다고 개헌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개헌 논의가 생산적이고 국민의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권력구조 개편에만 치중하면서 정치 공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 법칙으로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국가의 정치 조직 구성과 정치 작용 원칙을 정하는 최고의 규범’이다. 헌법은 역사와 정신이 녹아 있는 문서다. 

 따라서 헌법은 정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편의적으로 활용하는 정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개헌이 권력을 나누기 위한 정치 개편의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개헌의 순수성은 사라지고 정쟁만이 판을 치게 된다. 여야의 내부적 이해관계 때문에 향후 개헌 논의는 ‘4년 중임제’보다 ‘이원 집정부제’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런 식의 권력 나눠 먹기 식 개헌 논의는 결국 87년 체제를 극복할 수 없다.

 

 둘째, 개헌 못지않게 뒤틀리고 왜곡된 정치 과정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정치 개혁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특히, 국회와 정당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대통령은 삼권분립 원칙을 지키면서 국회와 야당을 존중하고, 국정 운영을 청와대에서 내각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정당은 의원들이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정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강제적 당론을 폐지하고, 만악(萬惡)의 근원인 공천 제도를 혁신해 계파 정치를 종식시켜야 한다. 

 국회는 갈등 지향적 운영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무엇보다 특정 정당의 동의가 없으면 어떤 법안도 통과하기 어려운 소수 독재의 전형인 국회선진화법을 우선적으로 개정해야 한다.

 

 셋째,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총체적인 개헌이 되어야 한다. 시대정신을 반영하려면 권력구조 개편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 권력구조 개편을 넘어서 기본권과 지방 분권, 선거구제 개편 등으로까지 논의가 확대돼야 한다. 87년 체제이후 약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대는 바뀌었고 생명 존중, 환경 존중 등 국민의 기본권에도 변화가 생겼다. 특히, 평등권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양성평등이란 성별에 의해 차별받지 않고 누구나 보편적 인간으로 권리를 갖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여성들이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차별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또는 남녀가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사회구성원으로 모든 영역에 평등하게 참여하고 동등하게 대접받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2000년에 남녀 동수법을 위해 헌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헌법에 “의원 선거와 선출직에 남녀의 평등한 진출”을 규정했다. 

 분권과 평등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게 선거 제도도 변화되어야 한다. 승자 독식과 지역패권 정당 체제의 원흉인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해야 한다.

 

 넷째, 개헌 논의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진행돼야 한다. 우윤근 국회사무총장은 내년 4월 재보궐 선거 때 국민투표’라는 시간표를 제시했다. 행정자치부 장관 출신인 친박의 정종섭 의원도 “올 연말까지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개헌 논의가 차기 대선과 맞물리면 합리적 논의는 뒷전이 되고 정치적 공방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개헌 종결 시점, 내용과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시한부로 추진하면 결국 개헌 논의는 정치 공학으로 빠지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대선 주자들이 대선 공약으로 개헌을 걸게 하고, 차기 정부에서 개헌을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어떤 방식의 개헌을 채택하든 차기 정부가 개정 헌법을 적용할 경우 새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가령 개헌을 통해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면 새로 원(院) 구성을 해서 총리를 뽑아야 한다. 현재의 국회는 해산이 불가피하다. 또한 4년 중임제를 도입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선출 주기를 맞추려면 새 대통령의 임기를 줄이거나, 20대 국회의원이 임기를 절반 정도 줄여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이런 이유들 때문에 개헌 논의는 앞으로 뜨겁게 달궈질 가능성이 크지만 동상이몽이 되고, 동시에 일장춘몽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개헌과 관련해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국정 혼란과 정치 실패는 헌법 때문이 아니라 운영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분권형 대통령제가 채택되면 권력이 분산돼 그동안 존재하지 않던 협치가 생겨날 것이라는 주장은 순진한 생각이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가 뽑은 총리가 수시로 충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헌에 앞서 정치, 국정운영 정상화가 필요하다. 뒤틀리고 왜곡된 기존의 국회와 정당 운영 구조를 바꾸고, 수직적 당ㆍ청 관계를 바꾸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ifsPOST>

(이 글은 “권력 나눠 먹기 개헌은 실패 한다”는 주간 한국 칼럼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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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6-30 17:59:50 최종수정 2016-07-01 13: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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