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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를 보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8년12월24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8년12월25일 10시40분

작성자

  • 김동률
  • 서강대학교 교수. 매체경영. 전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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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셨다. 2년 전 꼭 이맘때다.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바쁜 세밑, 왕복 하루가 꼬박 걸리는 지방에까지 조문오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알게 된 지인들이 죄인을 만들었다고 원망했다. 부친상만큼은 알리는 게 도리라고 했다. 

 

그런 원망을 들으면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아버지와 유난히 친했다. 평생 싫은 소리를 안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며느리들에게까지 인기가 좋았다. 그런 아버지도 어머니에게 늘 원망과 한숨의 대상이었다. 나는 안다. 살아오면서 온갖 궂은일은 어머니 몫이었다. 유산 갈등에서도 아버지는 당신 형제에게 대폭 양보했다. 그런 아버지를 “장남이 책임만 지고 권리를 포기했다”며 어머니는 두고두고 원망하셨다. 일평생 샌님처럼 곱게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는 밤은 통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얼마전 들린 고향집, 어머니가 옷을 정리하고 계셨다. 고향집의 옷장에는 어머니가 채곡채곡 쌓아둔 많은 옷들이 있다. 고향을 떠난 지 삼십 년이 넘었지만 유년 시절 옷들은 여전히 서랍장에 재어져 있다. 그저 일년에 몇 차례, 명절 때나 들리는 고향집, 우연히 발견한 서랍장속 유년기 옷들은 한순간 나를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지금 보면 촌스러운, 디자인개념이 아예 없는 옷들이다. 그런 유치한 옷들이지만 여전히 고향집 남루한 서랍에서 숨쉬고 있다.

 

한 때는 삼형제가 법석거렸던 커다란 집, 이제 달랑 늙은 홀어머니만 계신다. 어릴 적 내 방의 천장 구석에는 곰팡이가 피었고 아침마다 교복을 입고 한껏 폼을 내며 비춰보던 거울은 군데군데 벗겨져 흉한 모습이다. 12월이 되면 성탄트리로 사용했던 아기 전나무는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었다. 가을이 되면 황금빛으로 물들던 마당 구석 은행나무는 이제 어른 몸통만큼이나 굵어졌다. 

 

고향 집은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간다. 집과 함께 늙어가는 나무 서랍장에는 빛바랜 빨간 오리털 파커가 하나 있다. 헤진 털이 비집어 나오는, 당장 버릴만한 낡은 옷이다. 어머니는 이 옷만큼은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고이 간직하고 계신다. 옷의 역사는 삽십년, 나는 이 옷이 던지는 의미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대학 초년시절이다. 지금이야 오리털, 거위털 옷이 넘치는 세상이지만 삽십년 전 이 땅에는 오리털로 만든 옷 자체가 없었다. 80년대초 한겨울, 나는 우연히 동대문 시장을 지나가게 되었고 상점 주인으로부터 색다른 옷을 권유 받았다. 오리털 파커였다. 오리털로 옷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은 시절이다. 주인은 보세품임을 유난히 강조하며 미국 부자들이 입는 겨울옷인데 어찌어찌 자신의 가게에 까지 들어 왔다고 했다. 엄청 따뜻해 눈 속에 뒹굴어도 땀이 난다는 등 허풍까지 곁들여 입어 보라고 권한다. 입어 보니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뜻했다. 당장 가진 돈이 없었던 나는 다음 날 오겠다고 약속했다.

 

 이튿날 과외해서 꼬불쳐 놓은 돈을 몽땅 들고 가서 문제의 오리털 파커를 구입해 고향의 어머니에게 부쳤다. 빨간색 오리털 파커는 여성용이었던 것이다. 며칠 뒤 어머니가 덜 떤 음성으로 전화했다. 살아생전 이렇게 따듯한 옷은 처음 보았다는 놀람의 목소리였다. 그날 이후 겨울이 오면 어머니는 늘 아들이 사준 오리털을 입고 나들이 가신다. 친구분들께 자랑하고 싶으신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오리털 파커는 이제 너무 낡았고 형제들이 훨씬 가볍고 좋은 것들을 장만해 드려 집안에 겨울옷이 넘친다. 하지만 헤지고 낡은 오리털 파커는 서랍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그만 버리시라는 내 말에 어머니는 펄쩍 뛴다.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이 곤고한 시절, 과외 삯으로 사서 보내온 그 마음을 기억하고 싶으신 게다. 

 

어느새 세모(歲暮)다. 거리를 지나다가 빨간 오리털 점퍼만 보면 내 이십대의 오리털 파커가 생각난다. 그런 나의 어머니는 이제 여든을 훌쩍 넘기셨고 난생 처음 본 오리털 옷에 신기해하던 그날 청년의 귀밑머리도 희끗희끗해졌다. 거리의 성탄 점멸등이 오늘따라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 메리 크리스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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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12월24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8년12월25일 10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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