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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의 경제·실상의 경제, 1997년의 데자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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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6월07일 20시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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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1> 금융위원회 홈 페이지의 ‘카드뉴스’: “우리 가계부채 수준이 위험하다고요?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점차 나아지는 중입니다”.

‘최근 가계부채 동향 및 향후 관리방향’(5월 27일):“앞으로도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금융의 위험요인이 되지 않도록 안정적으로 관리, 연착륙시켜 나가겠습니다”.

 

  <사례 2> 기획재정부 홈 페이지의 2016년 경제전망: “저유가 지속, 소비·투자촉진 등 정책효과 등으로 회복세가 확산되면서 연간 3.1% 성장”과 “경기개선, 청년 등 일자리 창출 노력 등에 힘입어 취업자는 35만명 증가”.

 

  <사례 3> 고용노동부 홈 페이지의 파견법 웹툰: “ 25년간 증권회사를 근무하고 명퇴한 성동삼씨에 대하여 파견법은 “응답하라 2016, 걱정 말아요 아빠!”.

 

 <사례 4> 6월 1일 현대중공업 자구계획(3조 5천억원), 승인 확정, 삼성중공업 자구계획(1조5천억원), 잠정 승인, 현대상선, 8천억원 채무재조정 완료, 대우조선해양(5조원)도 조만간 최종 자구안 제출 예정. 이상과 같이 10조원 규모의 3개 조선사와 현대상선의 자구계획이 확정됨에 따라 그동안 국민들의 주목을 받았던 부실기업 구조조정 문제가 급속하게 정리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이상 네 경우의 정부의 경제 이야기가 ‘허상(虛像)의 경제’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실상(實像)의 경제’를 이야기하는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각 사례의 실제 자료를 살펴보자.

 

  <사례 1>의 실상: 금년 1분기 가계대출 증가액(20.5조원)은 작년 1분기 증가액(14.2조원)보다 44% 증가했다. 특히 1분기 가계부채 증가액 중 은행 대출보다 금리가 현저하게 높은 비은행 대출의 비중이(저축은행 신규대출의 경우, 3배) 작년 1분기 45%에서 금년 72%로 가파르게 높아져 가계의 금리 부담이 증가되고 있을 뿐 아니라 가계부채의 구성이 악화되고 있다. 한편 금융위의 대책은 주택담보 대출이 집중하고 있으나, 금년 4월까지 주택담보대출 증가분의 54%를 차지하는 집단대출에 대해서는 상환능력 심사 강화를 적용하지 않고 있어 집단대출의 증가세는 계속 되고 있다. 더구나 정작 가장 신용위험이 높은 마이너스 대출 등 담보 없는 대출(4월말, 162조원)은 방치되어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기업대출 중 개인사업자 대출은 금년 4월까지 6.7조원이 증가하여 4월말 현재 245.7조원에 달한다. 이래도 ‘위험하지도, 걱정할 수준도 아니며, 나아지고 있다’는 금융위 설명을 믿어도 되는가? 

  <사례 2>의 실상: 4월 현재 전년 동월비 취업자 증가 수는 25만 명에 그쳐 기재부 전망과는 무려 10만명의 간격이 있다. 한편 금년 1분기 GDP 성장률은 2.8%로 전망치 3.1%에 미치지 못했다. 더구나 금년 3% 대 성장률 전망치를 고수하고 있는 기관은 정부가 유일하다. IMF(2.7%), OECD(2.7%)는 물론 한국은행 2.8%, 정부산하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조차도 2.6%로 하향 수정했다. 민간연구기관이나 IB들은 대부분 2% 전반대의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어 정부의 3.1% 성장률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거시경제정책과 재정정책은 성장률 3% 경제를 전제로 운영되고 있다. 한은이 금리를 인하해 주면 또는 수출이 좀 더 호전되면, 3%대 성장률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로 일관하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례 3>의 실상: 파견법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설사 국회를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파견법 덕분에 ‘걱정 말아요 아빠!’가 국민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노동부의 ‘걱정 말아요 아빠!’가 국민들을 설득했다면, 국민들이 노동 3법의 통과를 거부한 야당을 오히려 다수당으로 만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개혁이 필요하지만, 노동부는 국민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상태로는 노동개혁이 진전을 볼 수 없다는 실상을 받아들이고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마땅할 것이다. 

 

<사례 4의 실상> 일단 자구계획안의 확정으로 이들 기업들이 안정을 회복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이것이 ‘부실기업 구조조정’ 문제에 대한 정부의 미봉책으로 일단락되는 것은 크게 우려할 필요가 있다. 기업 구조조정 문제의 본질은 우리 경제 만연해 있는‘좀비기업’들이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2015.12)에 따르면, 외감법 대상기업의 15%가 3년 이상 영업수익으로 이자비용을 충당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좀비기업들의 64%가 은행에서는 ‘정상여신’으로 분류되고 있다(산업은행은 대우해양조선조차도 정상여신으로 분류). 따라서 기업 구조조정 문제의 본질은  비단 조선과 해운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성여신’으로 숨겨져 있는 좀비기업들을 차제에 어떻게 정리하여 금융시스템의 건전성 확보와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강화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 구조정 문제를 ‘한숨 돌리기’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금이야 말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야할 시점이다.

 

  대체로 정부는 ‘문제가 없으며, 낙관적이고’, 경제학자들은 ‘문제를 지적하고, 우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우리나라 관료들은 어떤 경우 어떤 사안에 대해에도 낙관론과 해답을 찾아내는데 놀라운 역량을 보여 왔다. 물론 이러한 정부의 입장도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으며, 통상적으로는 경제현상에 대하여 낙관론과 비관론이 양립하여 각자의 역할을 하는 만큼 그 자체가 문제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가 지금과 같은 구조전환기 내지는 장기침체로 인한 ‘위기론’이 대두되는 상황에서는 ‘허상의 경제 이야기’와 ‘실상의 경제 이야기’의 괴리는 국민들에게 심각한 혼란을 줄 뿐만 아니라 정부가 대국회용으로 자주 언급하는 ‘정책의 골든 타임’을 놓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로 주목해야 마땅하다.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20년’ 중 전반부의 실패에 대한 명쾌한 진단을 보인 『10년 디플레』(사이토 세이치로, “일본경제 왜 무너졌나”신한종합연구소 옮김)에서 일본 경제 실패의 이유로 ‘정부의 안이한 경제진단’, ‘강력한 정책결정 시스템의 부재’, ‘계속되는 미봉책’, ‘어떻게 되겠지 증후군’을 들고 있다. 이러한 일본 경제의 실패 이유들을 ‘실상의 경제’로 본다면 지금 한국 경제 상황을 설명하는데 그대로 적용해도 하등에 어긋나지 않아 보인다. 참다못한 일본 언론들은 1997년 연두 기사로 ‘일본이 사라진다’(일본경제신문),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아사히신문)를 들고 나왔다. 이 또한 지금 우리나라 언론의 논조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계속되는 수출 부진은 경제의 숨통을 옥죄고 있고, 부채주도 성장정책이 초래한 기업 구조조정·가계부채·부동산시장의 문제는 ‘허상의 경제’에서는 경제전망을 어둡게 하는 유해한 이야기로 치부되겠지만, ‘실상의 경제’에서는 ‘위기’를 걱정하는 절박감을 느끼게 할 만큼 심각해 보인다. ‘허상의 경제 이야기’와 ‘실상의 경제 이야기’ 중에서 어떤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인가는 독자의 선택이며, 어느 이야기가 진실일 것인가는 시간이 지나가면 밝혀질 일이다. 

 

  하지만 ‘진실 게임’이 아닌 만큼  어느 이야기가 맞았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주목해야 할 것은 ‘허상의 경제 이야기’와 ‘실상의 경제 이야기’간의 괴리가 커져갈수록 정부 정책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고, 그 결과로 정책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 국민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했던 당시 경제부총리는 ‘우리 경제는 펀더멘털이 튼튼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허상의 경제 이야기’로 국민들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를 맞았던 고통스런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정말 우리 경제의 현상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가? ‘허상의 경제 이야기’가 맞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위기를 우려하는 ‘실상의 경제 이야기’가 ‘기우(杞憂)의 경제 이야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마도 우리가 19년 전 1997년 여름에 겪었던 ‘허상의 경제’와 ‘실상의 경제’간의 혼란스런 악몽의 ‘데자뷰’를 지금 다시 겪고 있는 것은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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