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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는 지금<하> 오아시스 도시 둔황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9월01일 16시54분
  • 최종수정 2017년09월01일 16시56분

작성자

  • 김동률
  • 서강대학교 교수. 매체경영. 전 KDI 연구위원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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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목숨 건 구도자 혜초의 길, 

600개 석굴엔 부처의 미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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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요충지 둔황에는 막고굴이라 불리는 크고 작은 석굴 600여 개가1.6㎞에 걸쳐 산재해 있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거대한 수직절벽을 만들며 생겨난 것들이다. 불가사의한 막고굴에는 사시사철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 김동률]

 

1900년이다. 

자칭 도사 왕원록이 폐허가 된 둔황의 막고굴 중 아늑한 동굴 하나를 골라 기거하고 있었다. 어느 날 동굴벽에서 울림소리가 나는 것에 주목한다. 호기심에 벽을 부수자 숨겨진 또다른 동굴이 나타났다. 수많은 귀한 경전을 보관하고 있던 장경동(경전을 보관한 동굴)이 드러난 순간이다. 우리에게는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의 등장이다. 초등시절부터 뜻도 모른 채 책이름을 달달 외워야 했던 바로 그 책이다. 현재 유네스코와 중국 정부가 엄청난 자금을 부어 보존하고 있는 인류의 보고는 그렇게 세상에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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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값으로 도사에게 건네받은 수많은 경전을 해외로 반출한 사람은 프랑스 학자 폴 펠리오. 그러나 중국인으로 짐작되던 혜초가 한국인임을 밝혀낸 사람은 일본인 사학자 다카쿠스 준치로였다. 실크로드 분야의 권위자인 정수일은 혜초야말로 선구자적인 여행가이자 감수성이 풍부한 승려였다고 강조한다.

 

달 밝은 밤에 고향 길을 쳐다보니

뜬구름이 바람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네(중략)

따뜻한 남쪽땅이라서 기러기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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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둔황 막고굴 내부의 부처상, 천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빛깔이 곱고 영롱하다

 

누가 내 고향 계림으로 날아가 소식 전할까?

『왕오천축국전』에 등장하는 혜초의 시다. 먹먹한 노스탤지어가 넘친다. 마지막에 등장한 ‘계림’은 곧 신라. 이 시로 인해 국적에 대한 논란은 명확하게 정리됐다. 당시 부처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한 인도행 구법(求法) 여행은 곧 죽음을 각오하는 모험이었다. 열사병과 식중독 또는 토착인들에 의해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이 책이 인류의 보물쯤으로 대접받는 이유다.

 

둔황은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요충지. 타클라마칸사막의 언저리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다. 그러나 지금은 석굴로 유명하다. 모래가 노래를 부른다는 의미의 명사산(鳴沙山) 기슭 절벽, 크고 작은 600여 개의 석굴이 1.6km에 걸쳐 있다. 통상 막고굴로 불리는 천불동은 10개의 왕조가 1000여 년의 세월에 걸쳐 갖가지 양식으로 만들었다. 역설적이게도 지형 탓에 모래바람은 오히려 거대한 수직절벽을 만들며 크고 작은 동굴들을 탄생시켰다. 불가사의는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지구촌 사람들이 사시사철 몰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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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둔황의 밤은 낮보다 뜨겁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들끓는 둔황 야시장.

 

박물관서 흉노·선비·몽골 역사는 빠져

 

답사단이 찾은 둔황박물관은 이 지역에 대한 중국 정부의 역사관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한족의 지배역사는 강조됐으나 이 일대를 오랫동안 지배했던 흉노·선비·티베트· 몽골족의 역사는 아예 생략되어 있다. 서북공정이다. 지근거리에 월아천이 있다. 명불허전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그리도 아름다웠다던 오아시스 월아천은 사막바람에 줄어들어 이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섭씨 40도가 넘는 뜨거운 모래바람에 서둘러 사진만 찍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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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새벽시장에서 위안화를 세는 상인. 중국에서는 여전히 우람한 몸매를 드러내는 것이 자랑인 듯하다.

 

둔황의 밤은 낮만큼이나 뜨겁다. 각국에서 몰려온 수많은 관광객은 그 옛날 실크로드의 영광을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100위안을 주면 노래를 불러 주는 야시장 청년이 한 곡조 뽑고 있다 “웬 아이 워즈 영, 아이 리슨 투 더 레이디오…”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다. 노래 제목이 둔황의 화려했던 과거와 겹치며 묘한 생각을 갖게 한다. 낯익은 노래는 지친 답사객들에게 잠시 말을 잊게 한다. 일행과 잠시 떨어져 작은 노점에 들렀다. 사막에서 자란 원단 뇌조목(벼락맞은 대추나무)으로 낙관을 새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이장(洗耳莊) 세 글자와 이심전심(以心傳心)을 각각 200위안을 주고 팠다. 사막의 뇌조목은 매끈하고 새까맣다. 나는 늘 ‘이심전심’이란 네 글자가 인간관계의 정점에 있다고 생각해 왔다.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 이보다도 더 좋은 구절이 있겠는가, 세이장은 또 어떠한가? 세상사의 더러운 것들을 들음에 귀를 씻는다는 도연명의 시가 좋아 지금까지 당호로 쓰고 있다.

 

돌아오는 길, 둔황에서 주취안, 장예, 우웨이를 거쳐 란저우까지는 육로, 란저우-시안-서울은 항공편이다. 둔황-란저우 길은 당나라 수도 장안(시안)으로 통하는 유명한 하서주랑(河西走廊)이다. 하서는 황하 서쪽이란 뜻이고 주랑은 긴 회랑이란 뜻이다. 남쪽의 만년설이 덮여 있는 치롄(祁連)산맥과 북쪽의 산과 사막이 이어지는 중간의 평지로 900km에 달한다. 동서문명이 교류하는 실크로드지만 때때로 흉노 등 북방 기마민족의 침공로가 됐다. 천고마비(天高馬肥)를 중국에서는 추고마비(秋高馬肥)라고 한다. 우리는 독서의 계절이란 뜻이지만 중국에서는 북방 기마민족이 살찐 말을 타고 농경민족인 한족의 곡식을 빼앗으러 오는 시기라는 뜻으로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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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거병이 술 나눠 먹어 지명이 ‘酒泉’ 

주취안에 하루를 묵었다. 한무제 시대 요절한 전설적인 장군 곽거병과 관련이 있는 도시다. 한나라는 매년 흉노에게 막대한 재화를 주고 평화를 샀는데, 곽거병이 흉노정벌에 나서 이곳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무제가 술을 하사하자 곽거병은 전 군사와 함께 마신다면서 술을 우물에 부어서 나누어 마셨다. 그래서 ‘술샘’이라는 뜻의 주천(酒泉·주취안)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인근에 만리장성 서쪽끝인 천하제일웅관으로 불리는 가욕관이 있다. 천하제일관이라는 동쪽끝 산해관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 장성의 서쪽끝이다.

 

실크로드 답사의 또 다른 흥미는 먹거리에 있다. 빡빡한 일정과는 달리 저녁은 늘 풍성하다. 책상다리만 빼고 네 발 달린 것은 모두 요리가 가능하다더니, 온갖 요리들이 등장한다. 낙타 육봉밑 고기, 사슴, 노새고기, 개구리, 메추리, 굼벵이 튀김 등등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종류가 많다. 향신료 채소인 상차이의 독특한 맛에 여기저기 비명이 터져 나온다. “하늘에는 용고기, 땅에는 당나귀 고기”를 외치는 주방장의 말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채식주의자임을 자처하는 나는 여행 내내 풍성한 식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부족한 먹거리에 시달렸다.

 

열흘간 답사는 쉽지 않았다. 쾌적·청결·편리함 등은 이번 일정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른 새벽, 얼음 몇 조각 넣은 에스프레소 마시기는 나의 오랜 즐거움이지만 어느 호텔에서도 얼음은 없었다. 얼음 담는 용기는 객실에 있지만 황당하게도 아이스메이커는 없다. 문이 잠기지 않고 샤워기가 고장 나는 등 고급호텔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을 매일 접하면서 잠깐 동안 중국을 생각해 본다. 겉으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무언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 나라가 중국이다.세련되고 빼어난 유럽의 도시와는 달리 끝없는 사막과 모래바람이 반기는 실크로드 답사는 고생길이었다. 옥수수 익어 가는 늦여름 들판이 투명한 햇빛 속에 반짝인다. 가끔 외로운 양치기들이 지팡이를 흔들며 버스 안의 이방인에게 선한 미소를 보내 온다. <끝>

 

김동률 교수는?

서강대 MOT 대학원에서 기업홍보(언론학)를 강의한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박사. KDI연구위원 등을 지냈고 현재 EBS 이사다.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칼럼을 써왔으며 그의 에세이는 고교 교과서에 실렸다. 저서로 『신문경영론: MBA 저널리즘』『철학자들의 언론 강의』(역서) 등이 있다.

<위 글은 중앙선데이 제545(2017.8.20.)호에 게재된 글을 옮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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