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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감상법: 한국정치를 내다보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3월27일 18시30분
  • 최종수정 2017년01월29일 11시24분

작성자

  • 김학수
  •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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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현재 공화당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정통 공화당 지도자들은 특단의 조치를 취해서라도 그를 대통령 후보에서 낙마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공언한다. 특히 외국인의 눈에는 어떻게 저런 인물이 미국 같은 가장 문명화된 나라에서 대선후보가 될 수 있는지 퍽 의아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좋든 싫든 트럼프 대세론(大勢論)은 민주정치의 특징을 가장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는 '공동체 문제'의 점검 활동 

 

정치를 권력의 쟁취수단으로 보는 것은 다분히 권력 중심의 정치학적인 관점이다. 특히 권력을 희소자원(돈, 지위)의 배분권을 확보하는 것, 그래서 죽기 살기로 권력을 쟁취하는 게 정치라고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저급한 개념 정의로 보인다. 불행히도 우리 주변에는 그런 목표를 우선으로 여기는 정치꾼들이 즐비하다. 그렇다면 가장 바람직한 정치의 정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공동체문제의 해결과정’이다. 그 해결과정이 민주적으로 진행될 때, 그 결과로 얻어지는 권력, 곧 희소자원의 배분권 확보는 정치인에게 주어지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종의 ‘결과물’이라고 하겠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인의 자격은 공동체문제의 민주적 해결과정에 얼마나 헌신해왔고,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그런 정치인을 식별하는 수단이 바로 선거다. 그래서 정치의 꽃은 선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트럼프는 지금까지 오직 사익(私益), 그것도 제조업보다는 부동산 투기 및 카지노 사업을 통한 이익 추구에만 일생을 바쳤다. 공동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신한, 즉 공익을 위해 투신한 경험이 전혀 없다. 오죽하면 자세한 납세실적 자료공개마저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에 선거가 가져오는 사회적 기능이 잘 드러나고 있다. 

 

선거는 궁극적으로 정당한 권력을 행사할 정치인을 생산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해결해야 할 당면한 공동체문제들을 선제적(先制的)으로 걸러주는 것이라 하겠다. 4년(미국) 내지 5년(한국)마다 대통령 선거를 실시할 때, 그 기간에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새로운’ 어떤 문제들이 존재하는지 또는 다가오고 있는지를 제시해주고, 그들을 해결할 방안들을 공약화(公約化) 하는 것이 선거활동의 핵심이다. 한마디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신체검사처럼, 공동체에 대한 총체적 문제 점검활동이 바로 선거다. 따라서 그런 신검(身檢) 제도를 갖추지 못했거나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비민주적 정치체제(예, 북한)는 닥쳐오는 위협을 감지하는 데 소홀하고, 그로 인하여 생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미국 트럼프 열풍, 빈부격차 심화 탓

 

트럼프를 통한 미국 대통령선거의 열풍 또한 미국의 새로운 공동체문제를 드러나게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것은 트럼프의 주된 지지층 발로(發露)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트럼프에게 열광하는 지지층은 가난한 백인 노동자들이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 이래 소위 신(新)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의해서 빈부(貧富) 간(間)의 소득격차가 지나칠 정도로 광대하게 벌어졌다. 예컨대, 노벨상 수상자이며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인 Paul Krugman의 최근 칼럼(“Is Vast Inequailty Necessary?” 1월 26일)에 따르면, 순전히 소위 ‘금수저’를 들고 태어났거나 높아진 지위를 이용하여 판몰이하는 거대한 불노소득마저 마치 노력의 대가(代價)로 생긴 것처럼 착각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고, 그로 인하여 미국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평등 구조에서 소득격차의 손실을 가장 크게 본 계층이 중간층 및 노동자층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어느 나라에서든 경제적 불평등 구조가 심화되면 가장 먼저 비난 및 희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민족(異民族) 내지 자국 내 소수인종이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소수인종과 불법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이 일자리를 빼앗아가기 때문에 다수의 가난한 백인들이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불만을 갖게 되었다. 그런 참에 트럼프가 멕시코 이민자, 무슬림, 심지어 여성 등으로 대표되는 소수인종 비하발언 내지 차별정책을 내걸자 가난한 백인 노동자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험한 일을 도맡아 하는 그들 이민자들 때문에 오히려 미국 경제가 돌아가고 있다는 긍정적 기여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인종차별주의는 쉽게 극단주의로 치닫고, 드디어 트럼프 유세장에서 폭력적인 난투극이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트럼프 열광에서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극심한 소득불평등의 문제, 그로 인하여 파생되고 있는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주의, 나아가 폭력적인 극단주의 조짐까지 엿볼 수 있다. 

 

한국의 불길한 미래상 보는 듯

 

4월 13일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우리도 곧바로 19대 대통령 선거에 돌입할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신드럼이 우리나라에도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미국과 매우 비슷한 환경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격차는 OECD 국가 중 이스라엘, 미국, 터키 다음으로 네 번째로 크다. 그런 와중에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대인 12.5%에 이르고 있다. 재벌의 역(逆)기능 요인들에 대한 과감한 개혁은 물론 각종 불로소득을 찾아내고 환수하는 정책들을 서둘러 마련하지 않으면, 무너진 한국의 중산층과 일자리가 없는 청년층이 극도로 분노한 군중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한편 국내 외국인 거주자는 날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다문화가정 82만 명, 외국인 거주자 170만 명, 도합 약 250만 명의 외국인이 한국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그들 대부분이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힘든 노동현장에서 땀을 쏟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실업률이 보다 높아질 경우 외국인 노동자 배척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조사자료에 따르면, 19세 이상 한국 성인의 31.8%가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응답하였다. 반면에 미국은 13.7%, 중국은 12.2%, 스웨덴은 3.5%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은 나이가 많을수록 그런 외국인 기피감정을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트럼프와 같은 정치적 선동가가 나타나 외국인 배척을 정치적으로 암시하거나 내세운다면, 실업(失業)과 저소득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의 상당한 계층이 열광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인종적 차별주의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오랜 세월 단일 민족, 단일 역사와 단일 언어를 자랑하면서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아주 높은 동질성(homogeneity)을 견지해온 한국인들은 다인종 사회에 익숙한 미국인들보다 인종적 배타주의에 더 쉽게 휩쓸릴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그런 배타주의가 극단주의로 치닫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럴 경우에 백범 김구 선생이 그토록 열망했던 도덕국가의 이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성별 및 인종 간의 편견, 소득 격차, ​임금차별 해소  적극 나서야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트럼프 열풍에서 내가 내다보는 것은 한국의 불길한 미래상이다. 우리 사회도 머지않아 계층 간 또는 인종 간 갈등과 폭력에 휩싸이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런 예감은 결코 소설이 아니라 다가오는 현실일 수 있다. 그러므로 서둘러 빈부 간의 격차, 성별 및 인종 간의 편견과 소득 격차, 대기업 근로자와 중소기업 근로자 간의 임금 격차 등의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Krugman에 따르면, 스웨덴처럼 고율(高率)의 차등적 조세정책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최대한 낮추고 사회안전망을 견고하게 구축할수록 혁신적인 벤처기업들이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것은 누구나 안심하고 얼마든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창업(創業)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어느 정당이 이런 문제들의 해결에 앞장서는지 눈여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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