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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캐슬과 괴물 학종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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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2월26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2월25일 12시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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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해 예술이 존재하는 것이지 예술을 위해 삶이 존재하는 게 아니지만, 삶의 비극은 예술에게 축복이다. 드라마 <SKY 캐슬>이 주목한 입시 학생부종합전형은 그런 면에서 예술가에게 축복이 될 만한 입시다. 문제가 다양하고 심각하여 풍부한 얘깃거리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 <SKY 캐슬>은 허구다. 온갖 과장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SKY 캐슬>의 과장이 과장으로만 그쳤다면 이렇게까지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SKY 캐슬>은 과장으로 가득한 허구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이었다. 어쩌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었다. 그래서 <SKY 캐슬>은 우리 사회와 우리 교육과 학종이란 입시의 어두운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SKY 캐슬>은 ‘예술은 진리를 드러내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파울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말에 정확히 부합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SKY 캐슬>이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학생부종합전형을 소재로 한 것도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한다. 학종이 아닌 다른 입시, 즉 학생부교과전형이나 수능전형이나 논술전형을 소재로 했다면 <SKY 캐슬>이 그렇게까지 드라마틱(dramatic)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학종을 소재로 한 것이 드라마 흥행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말은 아니다. 상당부분 그것은 간접적 원인이다. 그러나 간접적이라 해도 그것은 결정적인 원인이다. 그것은 코디 김주영 선생(김서형 역)이란 인물이 드라마의 흥행에 기여한 공로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될 일이다. 

 

악마적 매력이긴 하지만 <SKY 캐슬>의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코디 김주영 선생이다. 

 

<SKY 캐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물론 누구나 인정하는 주인공은 한서진(염정아 역)이다. 그러나 나는 드라마의 실질적 주인공을 김주영 선생이라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드라마 전반에 팽팽한 극적 긴장과 재미를 불러온 것은 단연코 김주영이었다. 작가의 세계관과 윤리의식이 가장 강하게 투영된 인물은 누구일까? 우주 엄마 이수임(이태란)일 것이다. 그는 드라마에서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을 구현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악당인 김주영 선생과 가장 극적으로 대립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시청자에게 그는 어떠한 인물이었을까? 시청자에게 이수임은 가장 재미가 없는 인물이었다. 심지어는 가장 재수가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작가의 윤리의식을 대변하는 인물이 시청자의 사랑을 받기는커녕 외면을 받고, 나아가서는 비난까지 받았다. 그런데 왜 시청자들은 이수임을 비난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수임이 등장하기만 하면 드라마가 재미없어지는(또는 재미가 덜해지는) 것도 상당한 이유였을 것이다. 소중한 시간을 내서 드라마를 보는데 이수임만 나오면 드라마가 재미가 없어지네? 이러한 느낌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드라마에 극적인 긴장과 활력을 불어 넣는 데에 이수임이란 인물이 기여한 것은 매우 미미했다. 드라마에 극적 긴장과 재미를 가져다 준 인물은 단연코 김주영 선생이었다. 

 

시청자들이 가장 크게 주목한 인물, 기존의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캐릭터이기에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그래서 결국 흥행 성공의 일등공신이 된 인물…, 코디 김주영 선생은 <SKY 캐슬>이 학종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창조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학종의 존재는 우리 교육의 비극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학종의 존재는 예술가들에게 축복일 수 있다. 물론 입시의 세계를 지옥을 만든 것이 학종만은 아니다. 입시의 세계는 오래전부터 지옥이었다. 그러나 학종은 그러한 입시지옥의 고통을 완화하기는커녕 더 심화시켰다. 학교와 지역에 따라 그 차이와 양상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학종으로 인해 입시의 세계는 여전히, 아니 더 고통스러운 지옥이다.

 

그런데 학종의 장점으로 인해 학종이 예술가에게 축복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런 드라마가 나오지 말란 보장은 없겠지만 큰 흥행을 끌지는 못할 것이다. 학종에 대한 학부모의 반감이 너무 크기에 그런 드라마가 진실성과 현실성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의 판단으론 학종을 찬양하는 드라마가 흥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학종이란 어떤 입시인가? 괴물 같은 입시다. <SKY 캐슬>의 악당 김주영이 괴물이었듯이 말이다. 경향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에 <괴물 학종>이란 제목을 붙인 것은 나름의 타당성이 있다. 괴물 학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괴물 학종>으로 대신할까 한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부정적인 학부모가 현저하게 많은 듯하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 만큼 알기에 그런 것 같다. 왜 그럴까?

 

우선 학종 주창자들의 얘기와는 달리 학종이 주는 시험 부담이 엄청나게 크다. 어쩌면 악명 높았던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넘어선다. 죽음의 트라이앵글 당시 학생들이 준비해야 하는 시험은 최대 세 종류였다. 그러나 학종은 네 종류나 된다. ①내신 ②수능(수능최저학력) ③구술면접고사 ④교과 경시대회 시험이다. 그런데 ④도 시험인가? 그렇다. 경시대회 중 영어, 수학, 국어, 사회, 과학 등의 경시대회는 명백한 시험이다. 물론 네 종류의 시험 중 2~3개만 반영하는 대학도 많다. 하지만 그것은 별다른 위로가 되지 못한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저학년일수록 다수의 대학을 염두에 두고 공부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학종은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입시경쟁의 영역으로 전부 편입시켰다. 그래서 학생의 모든 학교활동(봉사활동, 동아리활동, 독서활동, 진로활동, 학생회활동, 학급활동, 경시대회 등)은 사실상 입시경쟁이 되었다. 심지어는 장애우를 돕는 선한 활동조차도 이젠 입시경쟁이다.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잘할 수 있나? 조금 하고는 많이 한 것처럼, 부실하게 하고는 충실하게 한 것처럼 꾸미는 위선과 거짓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이것만으로도 걱정이 태산인데 학부모의 근심은 학생부 기록으로도 이어진다. 학생이 아무리 활동을 많이 해도 그것이 학생부에 빼어나게 기록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일 수 있다. 그래서 이제 학부모는 아이를 담당한 교사가 학생부 작성을 뛰어나게 잘해주는 사람이기를 기도해야 한다. 어떤 교사여야 할까? 글을 잘 쓰는, 기록에 정성을 다하는 교사면 좋겠는데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아이를 위해 과장된 기록을 서슴없이 하고, 필요하다면 거짓말도 해주는 교사여야 만족할 것 같다. 

 

최대 네 종류의 시험과 수많은 학교활동…, 이것만으로도 입시 부담이 사상 최고인데 학종은 여기에 면접과 자기소개서까지 더한다. 그리고 이것들 모두에 대한 평가가 정성평가로 이뤄진다. 학종 주창자들은 정성평가를 최선의 평가라 예찬하지만 학부모에게는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애매모호한 평가일 뿐이다. 결국은 입시 부담만 증가한다. 물고기의 위치가 불확실할수록 그물을 더 넓게 쳐야 하는 어부처럼 학부모도 입시의 그물을 더 넓게 펼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입시를 돈과 시간이 부족한 학부모가 감당할 수 있을까? 순박한 학부모가 위선적 학부모를 이길 수 있을까? 대답은 자명하다. 대다수 학부모에게 학종은 부자에게 유리한 금수저 전형이고, 얼굴 두껍고 속 시커먼 사람에게 유리한 후흑학 전형일 뿐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학종 주창자들은 학종이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을 불러왔다고 내세운다. 좋은 일이긴 하다. 하지만 학부모는 이제 그런 활동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제 예전의 낭만적 순수성을 잃어버린 입시경쟁으로서의 힘겨운 활동들이다. 또 학종 주창자들은 학종으로 인해 학교 수업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론 아주 작은 변화일 뿐이다. 또 학종의 근본적 한계로 인해 앞으로도 그 변화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작은 변화나마 이루어낸 교사의 고군분투는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지나친 과장과 일반화는 현실을 왜곡한다. 

 

학부모에게 학종은 괴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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