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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좌빨…”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2월20일 12시10분

작성자

  • 황희만
  •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 前 MBC 부사장,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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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란 말이 나온 적이 있다. KB국민은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자생활 할 때의 일이다. 신조어 ‘KB’로 실소(失笑)를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신조어 ‘KB’ 탄생은 이렇다.

5.18이후 소위 군사정부 시절이다. 군 고위 인사가 리셉션 행사를 했다. 당시에는 군인들이 실세였다. 그래서 사회 유력인사들이 군 고위인사와 친분을 맺으려하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 검찰의 한 간부는 군 고위 장성의 부인 생일까지 달력에 적어놓고 챙겼다. 이 사람은 

그런 처세술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나중에는 국회의원 배지(badge)도 달았다.

 

리셉션 행사가 시작되기 전 행사주최 고위 장성의 보좌관이 참석자 명단을 미리 만든 것을 기자들이 넘겨보았다. 이 보좌관은 민간 참석자들의 인적사항을 상관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참석인사 밑에 별도의 표시를 했다. TK, YS, DJ, JP. 이런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3김이 생존해 있던 시대여서 이 정도는 기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대구경북 출신, 부산경남 출신, 전라도 출신 그리고 충청출신 인사라는 것을 그렇게 표시 했구나 금방 눈치 챘다. 그런데 어느 이름에는 KB라고 표시 돼있었다. 기자들이 도저히 이 암호(?)를 해독할 수 없었다. 군 관계자에게 KB가 무슨 표시냐고 슬쩍 물어보았다.  

 

강원도 출신 표시라고 한다. 그런대 왜 ‘KB’가 강원도 약자가 되냐고 되물었다. 감자바위 이니셜(initial)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말을 듣고 강원도출신인 집 사람한테 당신은 KB라고 했더니 무슨 말인지 몰라 했다. 이러이러한 뜻의 이니셜이라고 말하자 어떻게 이렇게 강원도를 비하하냐며 기분 나빠했다. 강원도인사들의 감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군인들은 자기들이 알기 쉬우면 되니까 자기들끼리는 그렇게 통용하고 있었다. 군인들에겐 간단명료한 것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는 갑은 을의 감정을 헤아려 볼 필요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전라도 좌빨.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는 인사들 중에는 전라도를 쉽게 분류하는 말로 ‘전라도 좌빨’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라도는 ‘좌익 빨갱이’라는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렇게 보면 모든 게 간단하게 설명된다는 것일 게다.

 

전라도를 이렇게 ‘좌빨’로 정의하고 나면 5.18을 폄훼해도 잘못이나 별 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인식이 자리 잡고 있으면 지만원이라는 사람이 말도 안 되는 “광수”얘기를 해도 “그러면 그렇지, 그랬을 거야” 하면서 들어 주는 것이다. 마치 이성이 마비된 세상처럼 돼 가고 있다. 

 

피해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피해자들의 아픔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어쩌면 진지하게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지만원이라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제는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마저도 별 문제의식 없이 말을 쏟아내며 5.18에 대해 시비를 걸고도 “내가 무얼 잘못했느냐”고 반발하며 대 든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오히려 ‘좌빨’에 결연히 대처하자고 맞서고 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을 모으면 권력을 잡는데 유리하다고 계산 하는 모양이다.

 

우리사회에서는 언제부턴가 프레임(frame) 전쟁이 일고 있다. 복잡하게 들여다보고 진의를 파악하려는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잘 이용해 한 마디로 쉽게 단정해서 상대방을 공격한다. 코끼리는 보지 말라는 것이다. 거대한 코끼리의 복잡한 구조를 일일이 굽어다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들어 상대를 그 속에 집어넣은 다음 논쟁을 벌여 상대를 압도하자는 전략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쉽게 대중을 선동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프레임 전쟁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것이 포퓰리즘(populism)을 낳을 수 있겠고 민주정치의 한계(限界)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런 프레임이 지역으로 갈려 극심한 지역감정을 만들어 내고 있고 정치인들은 또 표를 얻기 위해 이런 지역 프레임의 등을 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전라도가 ‘좌빨’이면 경상도는 또 쉽게 ‘수구 보수 꼴통’으로 분류되는 현실이다.

전라도에서는 보수정당이라 일컬어지는 한국당이 설 자리가 없고, 경상도에서는 특히 대구경북에서는 민주당이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이런 형국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이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5.18폄훼발언과 관련해 사과하고, “이러지 말자”고 나서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자유한국당에도 사리를 분별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한 증거이다. 

 

그럼에도 사태는 진전되기보다는 확대되는 양상이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5.18 폄훼시비에 

가담하였다. 정치권이 더욱 시끄러워 질 것 같다.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처리하려는 생리가 있다. 한쪽이 악재면 한쪽은 호재다. 자유한국당 전체를 

싸잡아 지만원류의 사람들로 프레임을 씌우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치권이 특정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해도 좋다. 그러나 지역으로 나누어 편을 가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북이 하나가 되자고 하고 있는 마당에 지역을 갈라 정치하려는 속 좁은 생각을 제발 이제는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 호남 진보, 영남 보수로 가르지 말자. 호남에서도 보수가 활동할 수 있고 영남토박이들 사이에서는 또 진보가 손가락질 당하지 않는 세상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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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2월20일 12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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